
韓醫學史를 새로 꾸며보자
1957년 대학교수 자격받은 세명의 한의사
“五千年의 悠久한 漢醫學史上에서 前代未聞한 새로운 歷史를 起源하는 權威있는 學者들이 續出되는 것은 東洋醫學이 國際醫學化할 象徵이라고 보겠다. 지난 十月十六日 文敎部에서 開催된 敎授資格檢定委員會에서는 朴性洙氏(大韓漢醫師會長), 金長憲氏(東洋醫藥大學敎授), 洪性初氏(東洋醫藥大學 敎授) 諸氏에게 各各 漢醫學大學 敎授資格을 認定하였다. 三氏는 讀書는 起家之本이라는 말과 같이 六十平生을 漢醫學界發展을 爲하여 初志一貫하게 精力을 기우려 學究生活을 繼續하여 오던 나머지 成功의 뜻을 이룩하였다 하는 것은 果然 醫學界에 一大 曙光인 것이며 至寶的 慧星이라고 하겠다.”
위의 기사는 1957년 10월16일자 『東方醫藥』제3권 4호에 나온 한의과대학 교수 자격을 취득한 3인의 한의사에 대한 기사이다.
이때 교수자격을 획득한 인물은 朴性洙·金長憲·洪性初 3인의 한의사로서, 교수자격 전달식은 11월5일 정오에 東洋醫藥大學校庭에서 한의학계의 원로, 각계 기관장, 來賓客 다수와 동양의약대학생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날 기념식은 학과장 梁忠植의 개회사에 이어 논문통과 경과보고, 대학교수자격증 수여, 기념품 증정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내빈 가운데 한의계의 거성 金永勳(1882~1974)이 간곡한 부탁의 말을 축사로 하였다고 전한다.
세명의 교수자격 수여자 가운데 朴性洙(1897~1989)는 實業界에서 多年間 活躍한 한의사로서 1950년 現在 朝鮮貿易合資會社 社長, 東光興業株式會社 監査役, 東邦林業株式會社 取締役, 東亞藥草株式會社 取締役, 水山鑛山 經營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한의약 관련 경력으로서 東洋醫學會 經理局長, 漢醫藥新建設同盟 副委員長, 京畿道漢藥組合 副組合長 등이며, 교육관련 경력으로 養正中學, 景福中學, 溪洞國民校 等의 後援會 會長, 京畿道成人敎育會 理事 등이 있다. 게다가 漢醫師國家檢定試驗委員, 社團法人 大韓漢醫會 會長, 儒道會 서울市會 會長, 成均館大學 財團理事, 朝鮮貿藥合資會社 社長 등을 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가 이때 대학교수자격검정위원회에 제출한 논문은 「漢醫學上으로 본 內科學(中風)」이었다.
金長憲(1897~?)은 임일규의 연구(2006년 3월20일자 한의신문. 한의학개척자)에 따르면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여 유명한 한의사인 조부의 뜻에 따라 17세에 한의학에 입문한 후 李希煥·金命駿 두분의 선생을 모시고 한의학을 학습하여 1926년에 의생시험에 합격하였고, 한국전쟁 후 월남하여 동양의학대학의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洪性初(1897~1972)는 임일규의 연구(2006년 4월24일자 한의신문. 한의학개척자)에 따르면 경기도 가평 출생으로 부친의 위장질환으로 인하여 한의학에 입문하여 당시 명성이 높았던 李昇翊에게 지도를 받아 한의학 공부에 매진하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 초반에 東洋大學館을 1회로 졸업한 후 이 대학에 교육자로 몸담아 오면서 교수가 되었다. 이때 대학교수자격검정위원회에 제출한 논문은 「古代衛生學」이었다.
이들이 이때 한의과대학 교수의 자격을 획득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첫째, 이들이 이후로 한의과대학의 인재를 체계적으로 교육시켜 학문후속세대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든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전 시기까지 특히 일제시대에 한의학교육을 합법적으로 하기에 각종 제한이 있어서 인재 육성에 많은 장애가 있었지만, 이후로 한의학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둘째, 이들이 한의과대학의 교수로서 국가로부터 공인됨에 따라 한의학에 대한 공신력이 더욱 증대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학문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육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인데, 국가에서 공인받은 교수가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게 됨에 따라 학문적 공식력은 커지게 된 셈이다.
셋째,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된 학자적 권위는 학생들의 학습태도, 연구에 대한 열의의 제고로 이어져 학문적 인프라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넷째, 교수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논문 제출은 한의학의 연구방법론에 대한 새로운 방향성을 열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한의학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학자적 요건인 학술논문의 작성과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널리 인식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