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124

기사입력 2009.04.21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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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內醫院都提調로 仁穆大妃의 병을 치료한 儒醫

    內醫院都提調는 醫藥에 밝은 고관 가운데 겸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宮中의 御藥을 담당하는 內醫院의 중요성 때문이다. 『承政院日記』의 인조년간 기록에 한명의 內醫院都提調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尹昉으로 文官이다.

    尹昉은 영의정 尹斗壽의 아들이며 李珥의 門人이다. 尹斗壽(1533~1601)는 1555년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한 후에 이조정랑, 의정부검상, 사헌부장령, 성균관사성, 사복시정 등을 역임하였다.

    이렇듯 고관이었던 부친의 영향을 받아 학문에 정진하여 1582년(선조 15) 진사가 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로 인조 때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그는 醫藥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文官으로서 藥房都提調의 자리에서 提調 崔鳴吉, 右副承旨 李景奭 등과 함께 醫藥을 논하였다.

    특히, 인조년간에 內醫院都提調를 하면서 慈殿(임금의 어머니)인 仁穆大妃의 肺傷證, 頭痛, 痰盛咳嗽胸煩 등의 증상에 각종 처방을 투약한 기록은 그의 의학에 대한 깊은 학식을 가늠하게 해준다. 그는 仁穆大妃의 肺傷證에 대하여 淸金降火湯, 頭痛에 대해 川芎茶調散, 痰盛咳嗽胸煩에 대해 淸金降火合解表二陳湯을 처방하고 있다. 또한 인조의 寒熱往來의 질환에 대해 小柴胡湯加減方을 투약하고 침구치료에 의해 생겨난 문제점을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소부터 仁穆大妃와 인조가 지니고 있었던 질환을 잘 파악하고 있었고 특히 차를 마시거나 침구를 시술받아 생겨난 문제점까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렇듯 문관 출신으로서 의학에 깊은 학식을 가지고 있었던 尹昉은 조선 중기 儒醫의 전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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