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31

기사입력 2009.03.31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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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其復.

    ‘치(致)’는 ‘이를 치’자로 ‘도달한다’는 뜻이고, ‘극(極)’은 ‘지극할 극’자로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다. 무엇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가? ‘빔[虛]’을 위해 최선을 다하란 말이다. 그럼 무엇을 비운다는 말인가? 마음을 비우라는 말이다. 철저하게 마음을 비운 것이 ‘치허극(致虛極)’이다.

    ‘수(守)’는 ‘지킬 수’자로 착실하게 지킨다는 말이다. 무엇을 착실하게 지키란 말인가?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어지럽지 않게 고요함을 지키라는 것이다.
    ‘독(篤)’은 ‘도타울 독’자로 온 정성을 다함을 뜻한다. 온 정성을 다하여 고요함을 착실하게 지키란 말이 ‘수정독(守靜篤)’이다. 철저히 마음을 비우고 정성을 다해 마음을 고요하게 하면 온 세상의 만물이 한데 어울려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 돌아감을 볼 수 있다.

    ‘만물병작(萬物竝作)’은 온 세상의 만물이 한데 어울린다는 말이다. 봄이면 봄의 기운인 목기(木氣)를 받아 뭇 생명들이 잠에서 깨어나듯 기지개를 펴고 여기저기서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들은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이 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잠을 잔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어울려 현재 작동하고 있는 것만을 보지, 이것이 그 언젠가는 시들어 갈 것이라는 것은 보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이 흔들려 고요하지 못하기 때문이요, 무엇인가 이생각 저생각 번뇌 망상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전제로 한다.

    ‘남’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까맣게 잊고 살아가고 있다. 노자가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고자 한 뜻이 여기에 있다.

    뿌리로 돌아간다는 것. 지금 아무리 번성기를 누리고 있다 하더라도 그 언젠가는 본래의 제 자리로 돌아가는 것, 그것이 뿌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철저히 비우고, 고요함을 착실히 지킬 때만이 볼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의 마음이 비어있을 때 나그네의 돌아가는 심정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여기서 ‘빔[虛]’이란 ‘없음(無)’이 아니다. 있(有)으나 오관(五官 ; 눈·코·귀·혀·손)의 한계로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따라서 ‘빔’은 절대적 있음(有)으로 꽉 차있는 것이다. 노자는 이를 도(道)라 하였고, 석가는 ‘공(佛)’이라 하였으며, 예수는 ‘아버지’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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