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正1品 崇錄大夫까지 올라간 醫官出身 儒醫
1658년(효종 9년)에 경기도 고양군에 하나의 비석이 세워진다. 新院洞德明橋碑라는 이름의 이 비석은 한양과 북부 지방을 연결하는 關西路 구간 중 신원동 曲陵川 위에 다리를 놓으면서 그 자세한 사항을 기록한 것이다. 이 비에는 건립자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특이한 것은 이 다리를 놓는데 기여한 760여명의 주민들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 비문에는 이 다리를 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고양 군수인 柳後聖이라는 이름 석자가 기록되어 있다. 柳後聖은 본래 醫官出身으로 인조, 효종, 현종 년간에 궁중에서 御醫로 활동한 인물이었다. 뛰어난 醫術로 수차례 관직이 상승하였고 이 비석이 세워질 무렵에는 고양 군수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공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1646년(인조 24년) 典醫로 근무한 기록이 나오며 1658년 고양군수에 취임한 후에도 수시로 임금이 질병이 있을 때마다 불려와서 침을 놓기도 하였다. 효종이 죽은 후에는 임금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유배를 떠나기도 하였지만, 얼마 후 복권되어 御醫로 內醫院에서 근무하였다. 1662년(현종 3)에는 大王大妃의 병이 완쾌시켜 정1품 輔國崇祿大夫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공로로 높은 품계에 올라가게 될 뿐 아니라 정치적인 능력까지 발휘하여 지방에 군수 등으로 발령받아 정치적으로도 크게 성공하였다. 주변에서 許浚의 예를 들어가면서까지 여러 차례 醫官出身이 崇錄大夫까지 올라가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건의하였지만, 현종은 이를 듣지 않고 柳後聖을 崇錄大夫로 임명하였다. 그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