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7

기사입력 2008.12.2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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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年 서울에서 世界鍼灸學術大會가 개최되기까지

    1964년 10월 裵元植(1914~2006)은 日本 東京으로 건너가 다음해에 개최 예정인 제1차 國際鍼灸學會의 大會 組織部長인 木下晴都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木下氏는 그동안의 학술대회 진행 상황을 설명하면서 南北韓 통틀어 유일하게 金鳳漢에게만 초청장을 보냈다는 말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裵元植은 경악하여 金鳳漢만 초대된 데에 대해 항의하고 韓國側 韓醫師들을 초청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이에 木下氏는 몇일 후 이사회에 가서 한국 한의사들을 초청할 것을 결정하여 와서 裵元植에게 초청장을 보낼 것을 약속하였다.

    이 때 초청장을 받은 한의사협회에서는 다음해인 1965년 10월18일 제1회 대회에 權度元, 秦泰俊 그리고 裵元植 3인을 대표로 일본에 파견하였다. 이 대회에서 國際鍼灸學會를 世界鍼灸學術大會라고 改稱하고 4년마다 개최하기로 결정하였고 프랑스 파리를 차기 대회지로 의결하였다.

    1969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차 大會에는 崔鎭昌, 李貞圭, 李昌彬 3인이 대표로 파견되었다. 이 대회에서 차기 대회를 유럽측에서는 아르헨티나를 추천하였고 일본에서는 홍콩을 추천하였는데, 홍콩측 대표가 이때 참석하지 않아서 후보인 한국이 개최지로 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1973년 개최 예정인 제3차 國際鍼灸學術大會를 韓國에서 유치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 대회는 대한한의사협회와 경희대가 공동으로 주최하게 된다.

    당시 慶熙大學校 韓醫學科 鍼灸科 主任敎授였던 崔容泰는 1974년 나온 『月刊 漢醫藥』 창간호에서 “우리는 鍼灸學의 봄이 날로 고조되여 가는 시각을 잘 이용하여 우리 한국에서 처음으로 침구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는 것은 한의학계의 커다란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한국의 자랑이라 하겠다”고 감회를 전하고 있다.

    崔容泰의 분석에 따르면 이때 한국 발표자 중 2/3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고전의 침구학설에 대한 우수성을 연구발표하고 있고, 1/3은 침치료를 어떻게 객관성을 띄워 과학적 입증을 하여 보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1973년 9월25일 10시에 드디어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역사적 행사가 시작되었다. 제3회 세계침구학술대회의 서막을 연 것이다. 이 대회에는 세계 25개국의 학자들이 700여명이 모였다.

    당시 대회장이었던 朴勝九는 卷頭辭로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鍼灸療法은 東洋醫學으로서 數千年의 悠久한 傳統을 가져왔으며 특히 우리 韓國에서는 民族醫學으로서 긴 歷史를 通해 大衆의 信賴 속에서 治療效果를 發揮하였든 것이다. 第一次를 日本國에서 開催發足하여 다시 第二次를 佛蘭西 파리에서 盛大히 開催한 事實을 慶賀하는 바입니다. 이 大會를 繼續하여 第三次 世界鍼灸學術大會를 韓國에서 開催함을 여러 各國代表들과 같이 無限한 同慶의 기쁨을 禁하지 못하는 바이다.

    今般 國際鍼灸大會에 二十四個의 外國으로부터 參席해주신 二百餘名과 國內 漢醫師 四百餘名中 貴重한 發表文을 抄錄함에 있어 全文을 다 收錄하지 못하고 制限된 紙面에 結論程度로 抄錄하게 된 것을 우선 謝過드리며 本抄錄에 揭載된 貴重한 發表內容은 參加하신 여러분들과 같이 將來 硏究를 거듭할 機會를 마련할까 합니다.”

    이 때 발표된 논문은 100여편이 넘는데, 내용은 鍼灸學 뿐 아니라 藥物療法까지 총망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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