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116

기사입력 2008.12.17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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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博覽强記의 醫書硏究者

    李肯翊(173 6~1806)의 『練藜室記述』에는 한명의 학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공이 젊었을 때 매양 남에게 책을 빌려 와서 성균관에 왕래하면서 날마다 한 장씩 찢어서 소매 속에 넣고 오되 만일 잊어버린 곳이 있으면 곧 꺼내 보고 다 외면 곧 내버리니 한 질을 외고 나면 한 질이 다 없어졌다.

    신숙주가 임금에게서 하사받은 『古文選』을 갖고 있었는데 사랑해서 손에서 놓지 않았는데, 공이 간절히 빌려달라고 청하여 빌려 주었다. 그런 지 한 달이 넘어서 그의 집에 가보니 그 책이 쪽마다 찢겨서 벽에 발려 있고 더러워져서 글씨를 분간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답하기를, ‘내가 누워서 외노라고 그렇게 되었다오’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 인물은 金守溫이라는 인물이다. 金守溫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아버지는 영의정이었던 金訓이었다.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한 후 특명으로 집현전학사가 되었고, 훈련주부, 승문원교리, 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諸子百家, 六經에 해박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金守溫은 평소에 가지고 있는 好學을 의학에 발휘하여 『醫方類聚』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그가 醫書의 편찬에 참여하게 된 데에는 당시 의학부흥책에 힘입어 의학연구를 투철하게 한 결과로서 의학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평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이름 있었던 成三問, 申叔舟, 李石亨 등은 최고의 학자들이었는데, 金守溫은 이들과 함께 학문적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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