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2

기사입력 2008.11.1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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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有)’는 형태가 있는 구조물을 가리키는 것이고, ‘무(無)’는 아무런 형태가 없는 빈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유(有)’와 ‘무(無)’는 단독으로 존재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함께 존재하므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즉 다양성의 통일성을 이룬다. 바퀴살이 모여 만들어진 수레바퀴나 찰흙으로 빚은 그릇이나 벽을 뚫어 만든 방은 저마다 그 모양새가 다르지만 그 모든 것들이 빔[空]을 지니고 있어서 쓸모가 있는 것이다. 모양새가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이요, 모두가 빔[空]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통일성이다.

    ‘유(有)’는 이롭게 하는 도구가 되고, ‘무(無)’는 그것을 쓸모 있게 하는 바탕이 된다. 유(有)는 모든 사물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요, 무(無)는 빔[空]으로 모든 사물의 보편성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하느님아버지를 모시고 있는데, 하느님아버지는 한분이시고 한결같은 분이시지만 그 한분 아버지를 모시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제각기 모양새가 다르잖은가? 불교에서는 이를 ‘공(空)’과 ‘색(色)’으로 말했다. 겉으로는 다르지만 속으로는 다 같다.

    그런데 우리는 겉만 보고 속은 들여다보지 못해 서로 다르다고 괄시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한다. 종교인 사이에도 마찬가지다. 자기 종교만 옳고 남의 종교는 사탄이라 하여 물리칠 대상으로 여긴다.

    그래선 안 된다. 그렇다고 종교간의 일치를 위한다고 하여 불교나 기독교나 유교 따위를 혼합하여 제3의 종교를 만들고자 한다면 이 또한 안 될 말이다.

    그건 인위(人爲)요, 작위(作爲)다. 불교는 불교대로, 기독교는 기독교대로, 유교는 유교대로 특성이 있다. 이 특수성을 어떤 한 사람이 인위적으로 뭉그러트려 하나로 만들 수는 없다. 방은 방대로, 그릇은 그릇대로, 바퀴는 바퀴대로 쓸모가 있다. 그것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도 사심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일반 사람들은 그 유(有)인 형태에만 사로잡혀 있다. 빔(空)인 하느님아버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단 말이다. 바로 그 형태가 있어서 쓸모가 있게끔 되는 바탕은 하느님아버지의 비어있음에 있다. 그러니까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사람은 그 비어있음인 공(空)에 있다. 그게 없다면 바퀴살 서른개가 소용없고 방이 무슨 소용 있으며 그릇 또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사람도 자기 생각이나 고집으로 가득 차 있으면 쓸모가 없다. 그런데 요즘은 그 쓸모없는 사람들이 전부 앞장서 일을 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꾸만 꼬일 수밖에.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물에 빠진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비워놓고 살아야 한다. 그냥 비워 놓는 것이 아니라 텅 비워 놓아야 한다. 제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빈 가슴으로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 딱 한사람,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 부르고 춤추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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