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21

기사입력 2008.11.0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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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愛民治國, 能無知乎. 天門開闔, 能爲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生之, 畜之. 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 다스리는 일에 사심 없이 할 수 있겠느냐?”고 한 것은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사사로운 마음이 아닌 하늘의 마음[天心]으로 하라는 뜻이다. “천문개합(天門開闔)하되 능위자호(能爲雌乎)아?”. 여기서 ‘천문(天門)’이란 오관(五官)을 말한다. 이목구비신(耳目口鼻身)을 말하는데 한 생각이 들[闔]면 드는 대로, 나가[開]면 나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야 한다.

    그래야 혼백(魂魄)이 통일되고 암컷[雌]과 같이 여성적인 수동성을 유지하며 부동(不動)의 마음을 갖게 된다.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명백사달(明白四達)하되 능무지호(能無知乎)아?”는 사방을 환히 밝히면서 스스로 아는 바가 없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여기서 ‘무지(無知)’란 안다 모른다 하고 상대적인 세계에서 말하는 무지가 아니라, 안다 모른다를 함께 초월하는 상태에서 아는 것이다. 곧 ‘무지(無知)의 지(知)’이다.

    거울이 맑을 때 뭐가 나타났다고 해서, 그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하지 않는다. 안다고 말하지 않고 또 뭐가 없어졌다고 해서 없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사방에 빛을 비추는데, 그렇게 사방을 조광하면 서로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사방을 밝게 비추되, 스스로 자기가 그러고 있다고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오른손이 하는 바를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자선을 베푼다는 마음마저도 없이 하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이를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 하였다.

    ‘생지축지(生之蓄之)’에서 ‘지(之)는 만물, 그 만물을 나게 하고 기르는 것을 그윽한 덕[玄德], 즉 자연의 덕을 말한다. 덕(德)이란 도(道)의 다른 모습이다.

    도(道)를 체( )라고 하면 덕(德)은 그 용(用)이다. 도의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러니 도와 덕은 언제나 하나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도에 입각해서 나라를 다스리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은 도와 마찬가지로 여인처럼, 어머니처럼 만물을 낳고 만물을 그 품안에서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을 소유하려 하거나 거기에 기대려 하거나 군림하거나 좌지우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生而不有, 爲而不恃, 長而不宰).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능력내지 영향력이 바로 현덕(玄德), 신비롭고 그윽한 힘이라는 것이다.

    ‘도덕경’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위한 지침서라고 주장하는 것이 이 장을 두고 한 말이다. 수련을 통해 어린아이 같은 부드러움, 어머니 같은 포용성, 티 없는 마음, 맑은 형안 등이 생겼으면 이런 것을 혼자만 즐기고 듣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백성을 사랑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훌륭한 지도자의 자질로 활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을 위해 봉사할 때 일반적으로 중요시하는 업적위주로서의 행동이 아니라 ‘함이 없는 함’, 보통의 함을 넘어선 함, 즉 ‘무위(無爲)의 위(爲)’로 실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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