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112

기사입력 2008.10.21 10:54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B0112008102139253-1.jpg

    화가로 이름을 떨친 儒醫

    조선 순종에서 헌종년간에 醫官으로 활동하면서 각종 공로로 관직이 정3품 僉知中樞府事까지 이른 金景球는 특이한 인물이다. 醫官이었음에도 시와 그림에 능하여 당대에 예술가의 한사람으로 대우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능력으로 대나무를 잘 그렸다는 李基福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金景球의 집안은 醫業으로 이어진 유서깊은 집안으로서 아버지 金聲夏는 관직이 惠民署主簿에 이르기까지 하였고, 처외조부 玄啓義는 典醫監直長이었다고 한다. ‘日省錄’에 “金景球舊醫子孫可合收用者”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金景球의 집안이 의원집안으로서 이름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기록이다.

    ‘日省錄’에는 金景球의 진료기록이 많이 나오는데, 특히 그가 脈을 잘보아 특별히 차출되어 脈을 살피는 장면도 나온다. 그는 항상 노련한 의원으로 여겨져 중요한 진찰에 동원되었고 그 때마다 그의 진단이 존중되었다.

    金景球에 대한 역사속 이미지는 醫官으로서 보다 화가로서 더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그가 뛰어난 화가였기 때문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의 유작 西園餘意圖는 西園雅集의 한 장면을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南宗畵法으로 그려진 세련된 필치로 유명하다. 金景球를 보면서 우리는 조선시대에 醫官들이 단순히 의술에 대한 능력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 아니라 예술활동으로도 지성계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점에서 金景球는, 허준, 이제마 영정 뿐 아니라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는 각종 한의학 관련 그림들을 그려내어 한의학의 인프라를 끌려 올렸던 최광수 화백을 떠올리게 한다.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