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18

기사입력 2008.09.2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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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持而盈之, 不如不己. 而銳之, 不可長保.


    학식이고 재물이고 재주던 그 어떤 것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 잘났다고 하는 것, 다 안다고 하는 것은 그만두는 것이 옳다. 여기서 ‘지(持)’는 무엇을 소유하려는 소유욕을 뜻하고, ‘영(盈)’은 가득 채운다는 뜻으로 ‘지이영지(持而盈之 )’는 소유욕으로 가득 채우려는 마음을 말한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그만두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바람직한 것이라도 지나치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또 너무 날카롭게 벼르고 갈면 오래 보존할 수 없다. 여기서 ‘취( )’는 ‘불릴 취’자로 금속을 불에 달구어 두드리고 벼르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취이예지( 而銳之), 불가장보(不可長保)’에는 너무 벼르고 갈아서 날카로우면 오랫동안 보존할 수 없다는 뜻과 너무 지나치게 갈면 날이 넘어 도리어 무디어 진다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전자는 모난 돌이 정(釘)에 맞는다던지 송곳처럼 예리한 물건은 주머니에 넣어도 밖으로 삐죽 나와 찔릴 수 있기 때문에 항시 위험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래도록 간직할 수 없다는 뜻이고, 후자는 칼을 벼려서 계속 갈고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날카로워지다가 정도가 지나치면 날이 도리어 무디어 진다는 뜻이다. 이른바 ‘수확체감의 법칙’이라고나 할까? 논에 비료를 줄 때 비료의 양에 따라 수확량이 올라가다가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비료의 양을 늘려도 수확량이 계속해서 비료증가량만큼 늘지 않고 상대적으로 그 효과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여기서 ‘영(盈)’이나 ‘예(銳)’는 모두 극단(極端)을 뜻하는 말인데, 이처럼 극도에 달하면 오래가지 못한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이를 테면 소나기가 하루 종일 쏟아지는 일이 없고, 회오리바람이 하루 종일 부는 법은 없다. 극도에 이르면 변(變)하게 되어있다. 물극필변(物極必變)이니 궁즉통(窮則通)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자연의 이러한 현상을 나타낸 말들이다.

    여기서 ‘변(變)’한다던지, ‘통(通)’한다던지 하는 말은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으로서의 축(軸)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축을 ‘전환점(turning point)’으로 한 변화는 진보적 발전이 아니라 ‘되돌아 옴’이다. 만사는 그저 한쪽으로만 무한이 뻗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 가다가 어느 정도에 이르면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인생의 오르막 내리막길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이 있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그만큼 여유 있는 자세로 살 수 있는 자산이 된다.

    꼭대기에 올랐다고 너무 기뻐하거나 바닥에 내려왔다고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잠보장경’) 또한 마찬가지 말이다. 끝까지 오르지 못했다고 안달하거나 끝까지 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인생의 기복에 그저 의연할 따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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