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110

기사입력 2008.09.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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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醫官出身으로 권력의 핵심에서 역사를 바꾼 儒醫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된 무양서원은 고려시대 醫官이었던 崔思全(1077~1139)과 그의 후손 崔允德, 崔溥, 柳希春과 羅德憲 등을 배향한 서원으로서 1927년 탐진최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대대로 醫家의 집안에서 태어나 국가적 변혁의 중심에서 변화를 이끈 崔思全은 고려 초기에 손꼽히는 역사 속의 인물이다. 지금의 전라도 강진인 耽津縣에서 태어나 할아버지는 尙藥直長인 崔哲이었고, 의술에 뛰어난 아버지는 崔靖이었다. 醫家의 집안에서 태어난 崔思全은 이러한 집안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의학에 정통하였기에 나이 15세 되던 해에 宣宗이 궁으로 불러들이게 되었고 이 때 崔思全이라는 이름도 하사받게 되었다.

    崔思全이 역사의 변화를 일으킨 사건이 있다. 당시 권신인 이자겸이 仁宗을 궁궐 밖으로 쫓아낸 것이었다. 이에 仁宗은 이자겸에게 임금의 자리를 주고 물러나려고 하자 崔思全이 이를 국구만류하고 이자겸의 심복이었던 拓俊京을 설득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도록 한 것이었다. 참으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이 공로로 그는 兵部尙書에 推忠衛社功臣이 되었고, 다음해에는 吏部尙書, 知都省事로 守司空, 左僕射가 더해졌고, 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고, 나중에 守太尉, 柱國, 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東文選’에는 “仁宗賜崔思全甲第一區詔”라는 글이 실려 있는데, 이것은 仁宗이 崔思全의 공적을 고맙게 생각하여 집을 하사하면서 조칙한 문장이다.

    1139년(인종 17) 63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죽은 후에 城南 薔薇山에 묻혔다. 崔思全은 탐진최씨의 시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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