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열의 노자이야기 16

기사입력 2008.08.2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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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上善若水)’는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는 말이다. 물은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어느 곳에라도 있으면서 남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것까지도 감히 행하여 만물을 이롭게 한다. 남을 이롭게 한다는 것은 수고스럽고, 힘들고 한 모든 것을 마다하지 않고 행한다는 말이다. 즉 자기의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물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물에는 주(主)와 객(客)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아상(我相)이 없단 말이다. 물한테는 고유의 형태가 없다. 모난 그릇에 담기면 모난 모양을 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양을 하고, 뜨거운 곳에서는 증기가 되고 추운 곳에서는 얼음이 되고, 물은 ‘자기(ego)’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에 도움이 되는 짓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힘들어하고 고달파한다. 또한 물은 언제나 ‘자기자리’가 없이 낮은 자리에 있으면서 다투지 않고 남을 도와준다. 다툰다는 것은 자기를 내세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니 어찌 다툼이 있겠는가? 결국 노자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물이라고 하는 현상이라 할까 실체라고 할까 하는 것을 가지고 도(道)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故)로 기어도(幾於道)’라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도(道)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그러므로 도다’라고 바로 하지 않고 ‘도에 가깝다’고 했을까? 도의 실체는 말[言語]로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도다’라고 말하면 이미 이것은 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도를 도라고 말하면 이는 실체의 도가 아니다(道可道, 非常道)’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것은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 되고 자기의 판단을 뚜렷이 내세워야지 자기를 낮추고 흐리멍텅한 소리를 하면 바보 취급을 받아 학생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학자는 교단에서 물러나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러니까, 도란 사람들한테 업신여김을 당하고 비웃음을 당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가 아니란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은 자꾸만 높은 데로 올라가라고만 가르치고 있다.

    교회에서도 선생들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 이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뱀의 머리가 될지언정 용의 꼬리는 되지 않게 해달라고 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은 노자처럼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길인데도. 그러니 예수나 노자는 높은 곳으로만 오르려는 사람들 쪽에서 보면 바보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자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똑똑하지만 나만 혼자 어리벙벙하다(俗人察察 我獨悶悶)’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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