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18)

기사입력 2008.07.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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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개항기 한국의 한의학을 빛낸 三大醫家를 꼽는다면 黃度淵(1807~1884), 李濟馬(1836~1900), 李圭晙(1855~1923)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 세 인물은 조선시대까지 이어온 한국 한의학의 전통을 계승하여 현대 한의학으로 이어져 올 수 있게 한 學術大家들이다. 공통적으로 儒醫인 이들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들로서 자신의 독창적인 의학적 학문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儒醫란 儒學的 소양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 醫學을 한 경우를 말하니, 의학연구를 하여 저술을 낸 경우, 실제 임상을 하여 爲民活動을 한 경우, 醫師의 신분으로 학문적 공적이나거나 뛰어난 치료술을 인정받아 신분이 상승된 경우 등 다양하다.
    세 인물들은 모두 학문을 업으로 하는 집안 출신으로서 의학을 하여 당대에 이름을 떨친 경우에 속한다.

    黃度淵은 서울 무교동에서 의원을 경영하면서 명성을 떨쳤던 인물로 ‘附方便覽’, ‘醫宗損益’, ‘醫宗損益附餘’, ‘醫方活套’ 등의 醫書를 간행하였다. 특히 77세가 된 1884년에 그의 아들 黃泌秀에게 명하여 汪임庵의 ‘本草備要’, ‘醫方集解’를 合編한 法을 모방하여 ‘醫方活套’와 ‘損益本草’를 합하고 다시 여기에 ‘用藥綱領’과 ‘救急’, ‘禁忌’ 등 10여종을 보충하여 ‘方藥合編’이라는 서적을 짓도록 한 것은 韓國醫學史를 빛낸 위대한 업적이다.

    李濟馬는 평생동안 연구한 의학내용을 ‘闡幽抄’, ‘濟衆新編’, ‘廣濟說’, ‘格致藁’,‘東醫壽世保元’ 등 저술에 쏟아내어 그의 독창적인 四象體質醫學理論을 완성하였다. 이 학설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인체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새로운 인체관을 제시한 것으로 韓國醫學史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이었다.

    李圭晙은 儒學的 원리를 의학이론에 적용시켜 독창적인 扶陽學說을 창립하였다. 그의 저술 ‘黃帝素問節要’(일명, ‘素問大要’)와 ‘醫鑑重磨’에는 그의 醫論들과 處方들로 가득차 있다. 그가 주장한 扶陽論은 陽氣를 기르는 것이 인체의 생명활동을 영위하는데 기초라는 주장이 근간이다. 그는 火가 氣가 되어 知覺運動, 呼吸, 笑語 등 일체의 활동을 비롯하여 피부를 윤택하게 하고 풍한을 방어하는 등의 생리작용을 하여 一身을 주류하지 않는 곳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들 세 醫家들은 儒醫라는 공통점뿐 아니라 몇 가지 측면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들의 학설들이 한국 한의학의 내재적 맥락 속에서 잉태되어 나왔다는 점이다. 黃度淵의 “浩繁함을 버리고 簡明함을 就한다”는 것은 ‘東醫寶鑑’이 나온 후 ‘醫門寶鑑’, ‘濟衆新編’ 등으로 대표되는 서적에서 지속적으로 추진된 흐름 속에 있는 논설이었고, 李濟馬의 體質理論은 조선 성리학의 자연관이 바탕에 깔려 있으며, 李圭晙의 扶陽學說은 기왕의 宋儒의 학설을 바탕에 깔고 있는 金元四大家類의 學說에 대한 반대로부터 비롯한 조선의학 내재적 신학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 이들의 학설들이 독창적이라는 점이다. 黃度淵의 작업은 동시대 중국, 일본 등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독창적 응용력으로 가득차 있고, 李濟馬의 학설은 세계의학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창성이 있으며, 李圭晙의 학설은 독창성을 바탕으로 기존학설에 대한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이들의 학설들은 현대에까지 깊이 영향을 미쳐 현대 한의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마 한국의 한의사 가운데 黃度淵의 책을 보지 않고 처방을 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처방분야에서 黃度淵의 기여는 크다. 李濟馬의 四象體質醫學說은 현대 한국의 한의학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 한국을 대표하는 의설로 세계에서 이름이 높다.

    李圭晙의 학설은 현재 부산을 거점으로 하는 素問學會를 중심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렇듯 개항기 한의학의 이론적 틀을 완성하기 위해 분투한 이들의 노력은 일제의 한의학 말살정책으로도 꺾이지 않고 현대에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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