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뛰어난 의술과 학식, 인격으로 東班에 제수된 儒醫
1582년 醫科에 합격한 후에 궁중에서 御醫로 이름을 떨친 鄭禮男은 許浚, 楊禮壽, 許任 등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시대의 명의로 膾炙된 인물이었다.
醫官으로 활동하면서 미천한 신분 출신임에도 선조의 깊은 신임을 받아 東班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1596년 왕세자를 치료한 공으로 東班職인 尙衣院 主簿가 된 것이 그것으로 東班에 제수된 후로 諸臣들의 비난을 계속 받았지만 그 때마다 선조의 비호로 그 위치를 지켜나갔다.
그가 학술적으로도 인정받고 있었다는 것은 당시 최대의 프로젝트였던 ‘東醫寶鑑’의 편찬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점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楊禮壽, 許浚, 鄭鵲, 李命源, 鄭禮男 등과 함께 선조의 명령에 따라 1596년부터 ‘東醫寶鑑’의 편찬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것은 그에게 있어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에는 御醫로서 그동안의 공적을 인정하여 通政大夫 僉知中樞府事가 되었다.
그의 저술로 ‘西疇遺稿’가 있는데, 그 序文이 ‘東州集’에 남아 있다. ‘東州集’은 李敏求가 지은 시문집으로서 여기에 실린 序文만으로 鄭禮男의 사상적 경향을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뛰어난 문장을 구사한 지식인이었음에는 틀림없다할 것이다. 선조?광해군이 鄭禮男의 뛰어난 의술과 학식, 인격에 감복하여 그를 동반으로 신분을 상승시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