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8)

기사입력 2008.05.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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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멜렌도로프 집에 당도해 보니 중상자의 상태는 피범벅이 된 끔찍한 상태였다. 나의 당당한(영웅적인) 치료에 대해 敵意를 품고 있는(반대하는) 14人의 조선인 의사들(漢醫)이 옆에서 지켜보았다(I found the patient in a horrible condition all blood and gore and attened by fourteen Corean doctors who made great objection to my heroic measures).”

    위의 문장은 필자가 나름대로 새로 번역한 1884년 12월5일자의 그 전날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와중에 민영익을 치료하게 된 알렌이 쓴 ‘알렌의 日記’의 기록이다.

    어찌 보면 이 기록은 당시 조선의 한의사들이 서양인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을 최초로 목격한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기에 깊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피를 흘리고 있는 환자를 서양식 치료술로 봉합하여 치료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것이 이후에 알렌의 서양식 의료기관의 설립하게 된 당위적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존의 연구 가운데, 이 때 한의사들이 민영익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였고, 그 사이에 알렌이 왕진 요청을 받아 와서 민영익을 조선의 의술과 구별되는 서양의술로 치료해내어 민영익의 신뢰를 받게 되고 왕실과도 친밀하게 되어 후에 민영익을 통해 병원설립안이 제출되어 濟衆院이라는 서양식 의료기관이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연구도 보인다. 이러한 주장은 이 장면에 나오는 한의사들의 무능함을 뒷배경으로 삼고 있다할 것이다.

    이 장면에서 이상하게 여겨지는 점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알렌이 조선인 한의사의 수가 14인이라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독한 환자의 진료에도 급급한 상황에서 14인이란 것을 어떻게 정확하게 헤아리고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다. 두 번째로 “나의 당당한(영웅적인) 치료에 대해 敵意를 품고 있는(반대하는) 14人의 조선인 의사들(漢醫)이 옆에서 지켜보았다”라고 하였듯이 한의사들이 알렌의 치료에 대해 전혀 학구적인 자세로 배우려는 입장이 아니라 매우 비판적인 입장에서 응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상황을 필자 나름대로 아래에서 판단해 보고자 한다. 먼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판단은 필자 개인의 판단이므로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좋은 의견이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민영익이 다쳐서 멜렌도르프의 집으로 옮겨지게 된 과정에서 몇 명의 조선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몇몇 조선인 한의사들에게 기별되어 여기까지 한의사들이 오게 되었다. 여기에는 한의사들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민영익을 아는 사람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고 한의사들이 민영익만을 위해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적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이 멜렌도르프 집앞에 당도했을 때 멜렌도르프의 명령을 받고 문밖에서 지키고 서있는 군인들에 의해서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게 되었다. 왜냐하면 멜렌도르프의 입장에서 조선인들이 함부로 들어오는 것은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멜렌도르프가 보기에는 어떤 조선인이던 간에 이들은 민영익을 암살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사람일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또한 알렌에게 오라고 기별한 상태이므로 알렌이 민영익을 치료해줄 것으로 기대되므로 어느 누구도 민영익을 보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윽고 알렌이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빠른 걸음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에 몇몇 한의사들과 지인들은 이에 항의하였고 이를 본 알렌은 이들이 들어와서 보아도 좋다는 전갈을 전하였다.

    이들이 자신이 치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앞으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렌은 민영익이 누워있는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14명 정도의 입실을 허가하였고 이래서 알렌은 14인이라는 숫자를 정확하게 기억하게 된 것이다. 이 14인이 모두 조선인 한의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 모두를 한의사로 생각하게 된 데에는 알렌 자신이 자기의 치료술을 과장하기 위한 마음이 작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들어온 한의사들은 민영익에게 구사되는 알렌의 서양의술에 대해 그다지 좋은 시선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알렌이 “나의 당당한(영웅적인) 치료에 대해 敵意를 품고 있는(반대하는) 14人의 조선인 의사들(漢醫)이 옆에서 지켜보았다”라고 적게 된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미 상처를 縫合하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구사하고 있었다. ‘鄕藥集成方’에는 桑白皮로 만든 실로 縫合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고, ‘東醫寶鑑’에도 桑白皮나 白麻로 만든 실로 縫合하는 것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들은 외상에 의한 상처를 치료하는 전범으로 계속 활용되어 왔다.

    조선인 한의사들이 보기에 알렌의 치료법은 자신들의 치료법과 비교하여 그다지 뛰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되었고 이것이 알렌에게 느낌으로 전달되게 된 것이다. 조선인 한의사들을 분노케 한 것은 자신들을 배제시키고 낫선 서양인에게 민영익을 맡긴 것 때문이었지 서양의학의 뛰어난 테크닉에 대한 열등감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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