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廣濟秘급’과 ‘濟衆新編’ 출판의 산증인
조선시대에 두 醫書의 서문을 쓴 인물이 있다. 李秉模가 그이다. 李秉模는 영조년간에 증광문과에 급제한 후로 경기도암행어사, 이조좌랑, 대사간, 이조참의, 국조보감찬집당상, 우부승지, 동래부사, 규장각직제학, 형조판서, 호조판서, 홍문관제학, 함경도관찰사, 평안도관찰사,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 제반 관직을 두루 거친 당대 최고 권력의 핵심의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이 시기 함경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그 주변에서 기근과 전염병이 유행하여 백성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목도하고는 濟世救民할 목적의 의서 편찬을 구상하던 중 수소문 중에 尹圃巖이라는 사람의 소개로 李景華를 알게 된다.
李景華는 당시 함경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백발이 성성한 醫師로서 임상능력뿐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뛰어나 醫書를 만들어낼 능력이 충분하였다. 李秉模의 아낌없는 지원 속에 3개월만에 ‘廣濟秘급’이라는 책이 나오게 되었다. 李秉模는 이 책의 서문을 지어 이 의서의 정신과 목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서문에서 “眞濟衆之寶筏壽民之秘급也”라는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중앙으로 복귀하여 우의정, 영의정이 된 후로 御醫 康命吉이 1799년에 ‘濟衆新編’을 만들어낼 때에도 그 서문을 지어 그 책의 의의와 전말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이렇듯 李秉模는 정조시기에 나온 두 권의 역사에 남는 醫書의 서문을 짓기도 하였고 內醫院의 提擧로 활동하기도 할 만큼 그는 당시 한의계의 중요한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