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救急醫學 전통의 중심에 있는 儒醫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救急醫學이 중요한 의학의 한 부분으로 다루어져 왔다. 鄭順德의 연구에 의하면(허준의 ‘諺解救急方’에 관한 연구, 2003, 한국의사학회지) 고려시대에는 위급한 질병에만 국한된 내용이 아니라 전반적인 여러 질환에 대해서 임상적으로 우수한 處方을 선별하는 형식으로 향약의 연구와 병행하여 간편하고 신속하게 處方을 응용하고자 이와 같은 救急醫書들이 편찬되었다고 한다. 이에 속하는 醫書들로 ‘濟衆立效方’, ‘新集御醫撮要方’, ‘鄕藥救急方’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로 넘어 오면서 救急醫書는 지속적인 국가의 관심사였다. ‘救急方’(1466년), ‘救急簡易方’(1489년), ‘救急易解方’(1499년), ‘村家救急方’(1538년) 등이 세조 때부터 중종 때까지 연달아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尹壕라는 인물이 1489년 간행한 ‘新撰救急簡易方’(‘救急簡易方’을 말함)은 儒醫의 손에 의해 간행된 것에 의미가 있다.
尹壕는 첨지중추부사 三山의 아들로, 성종비인 貞顯王后의 아버지였던 당대의 실력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무기로 권력을 탐하지 않고 검약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공조참판으로 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1488년 영돈령부사에 이르고 이듬해 司僕寺提調를 겸하기도 하였다. 1494년에는 우의정으로서 耆老所에 들어가 궤장을 하사받기도 하였다. 1489년 尹壕는 內醫院提調로 있으면서 ‘新撰救急簡易方’을 완성하여 성종에게 바치면서 이 책을 모든 고을에 두루 반포하기는 어려우니, 모든 도의 監司로 하여금 본도에서 開刊하여 界首官이 찍어내도록 건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