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博覽强記한 학식으로 이름을 떨친 儒醫
성종대왕실록에는 한명의 명재상이 서거한 것을 애도하고 있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명재상은 바로 韓繼禧라는 인물로서, 학문이 뛰어나고 성품이 훌륭하여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본래 개국공신의 집안에서 태어나 총명한 두뇌를 가지고 학문에 힘써 집현전에 발탁되어 학자로서 활동도 하였고, 세조년간에는 세자에게 經學을 강의하는 중책을 맡기도 하였다.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서 嘉善大夫 工曹參判, 嘉靖大夫 吏曹參判 겸 世子右副賓客을 역임하고 후에는 資憲大夫 吏曹判書에 승진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崇政大夫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韓繼禧의 이력에서 특이한 점은 임금의 병에 여러 차례 醫官들과 함께 차출되어 치료에 임한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세조년간에는 任元濬, 金尙珍 등 醫官들과 세조의 질병을 진찰하여 치료를 議論한 기록이 있고, 성종년간에도 任元濬, 曺智敬 등과 함께 성종의 종기를 진단하고 치료한 기록도 있다.
韓繼禧는 의학을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깊이있게 연구하여 醫書의 편찬에도 깊이 간여하게 되었다. 중국 명나라 陳會의 ‘神應經’을 간행할 때 그 서문을 쓴 것이다. 게다가 세종 때 완성된 후에 간행되지 못하였던 ‘醫方類聚’를 任元濬, 權등과 함께 30질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공적으로 한국의 한의학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의학으로 자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듯 학자이며 관리였던 그가 한국의학사에서 기여한 공로는 후세에 인몰되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