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과 뜸으로 조선의학을 빛낸 儒醫
許任은 임진왜란 직후에 이름을 떨친 御醫로서, 본관은 河陽이며, 樂工인 許億福의 아들이었다. 그는 鍼灸에 능하여 선조 때 10년간, 광해군 때 수년간 鍼醫로서 임금을 치료, 1612년(광해군 4년) 許浚(1539~1615)과 함께 醫官錄에 기록되고 3등 공신에 책록되기도 하였다. 그는 鍼灸治療를 통해 선조와 광해군 등 두 임금에게 신임을 받아 1616년(광해군 8년) 永平縣令, 이듬해 楊州牧使·富平府使, 1622년(광해군 14년) 南陽府使 등에 임명되었다.
그는 1644년(인조 22년)에 ‘鍼灸經驗方’을 저술하여 간행하였다. 이 책의 발문에서 李景奭(1595~1671)은 다음과 같이 許任을 평가하고 있다. “許太醫는 평소 神의 기술을 가진 자로 일컬어져 평생 구하고 살린 것이 손으로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간 죽은 사람도 일으키는 효험을 많이 거두어 명성을 일세에 날렸으며 鍼家들이 추대하여 머리로 삼는다.”
이 뒤에서는 藥餌를 구하기 어려운 일반 백성들을 위해 침과 뜸이 절실히 요구되기에, 이와 같이 요점을 잘 간추려 놓은 ‘鍼灸經驗方’ 같은 서적은 좋은 인도자가 될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許任은 이 책의 自序에서 “오랜동안 鍼灸의 門戶를 열심히 탐구하여 이제는 노쇠한 자신이 일생동안 한 勞心의 결정이며, 올바른 鍼灸의 법이 전해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와 이 책을 짓는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針灸經驗方’은 실용성을 염두에 두어 이론에 해당하는 부분을 요체가 되는 것을 중심으로 간기하고 혈자리와 치료법을 나열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제일 첫 門인 ‘訛穴’에서는 당시 세속에서 잘못된 방법으로 혈자리를 취하는 것을 바로 잡아 놓았고, 自序에서는 ‘黃帝內經’에 기록된 補瀉法을 자신의 치료 경험과 잘 조화시켜 새로운 補瀉法을 만들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