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89

기사입력 2008.01.0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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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을 통해 성리학의 이치를 꿰뚫은 儒醫

    조선시대 性理學者들이 醫學을 연구한 것은 먼저 학술적으로 의학과 성리학이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었으며, 둘째로 性理學이 백성들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帝王으로서의 임무라는 帝王之學的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心身修養을 통해 道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였던 性理學者들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데 醫學的 修養論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張顯光은 임진·병자 양난을 겪으면서 치열한 삶을 살다간 조선 중기의 전형적 지식이었다. 학문적 능력을 인정받아 선조가 수차례 벼슬을 권유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벼슬길을 마다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理는 道의 經·氣는 道의 緯라는 理氣經緯說을 주장하여 道가 理氣를 통일하는 본원으로 보고 理氣는 道의 양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退溪 李滉의 門人인 張顯光은 이러한 학문적 특성으로 인하여 金應相, 鄭克後, 柳袗 등과 함께 퇴계학파의 四小門派의 한 갈래를 이루었다.

    그는 특별히 易學에 뛰어나 ‘易學圖說’이라는 책을 짓는데, 이 책은 易學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정리하고 여기에 자신의 견해를 첨부한 것이다. 이 책의 旁行篇안에는 醫家章이 들어 있어서 자신의 의학사상을 정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는 평소 의학에 대해 가졌던 견해를 醫家先天圖, 後天坎離圖, 天地人物氣候相應圖, 臟腑分配之圖, 手足陰陽合屬起至之圖 등으로 圖式하여 설명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평소에 醫學을 많이 연구하여 이를 통해 자신의 학문을 정립하여 왔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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