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70

기사입력 2007.07.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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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성 위해 ‘救荒撮要’와 ‘벽 瘟方諺解’를 合編한 儒醫

    조선 후기 인조년간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가의 비극이 이어진 어지러운 시기이기도 하지만 몇몇 뛰어난 학자들이 배출되어 학문이 번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宋時烈, 宋浚吉, 金堉, 金集 등이 이 시기에 활동한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시대를 빛낸 인물들이다. 특히 宋時烈·宋浚吉은 학문으로 뿐만 아니라 醫學에도 조예가 깊어 醫學으로 이름을 떨친 인물들이었다.

    이 시기 학자들 가운데 金堉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유명한 학자 金尙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1605년 사마시에 합격한 다음 成均館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1624년에는 증광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면서 예조참의, 우부승지,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하게 되었다.

    그는 국가경제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서 놀라운 經濟革新策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大同法이 그것이다. 大同法은 부의 균등한 분배가 실현되어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 첫째 목표이며, 아울러 국가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다.

    백성을 위한 정책에 골몰하던 김육은 1639년에 ‘救荒벽 瘟方’을 편찬하는데, 이 책은 ‘救荒撮要’와 ‘벽 瘟方諺解’를 합친 것이다. ‘救荒撮要’는 1554년 명종 때 기근을 대비해서 진휼청에서 편찬한 서적이고 ‘벽 瘟方諺解’는 金安國이 편찬한 의서이다. 이 두 종류의 醫書를 合編하려는 것은 기근과 전염병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나타나는 것이기에 합편하여 활용도를 높이는 것이 더욱 현실적으로 유용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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