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사로 개화파 지도자들을 키운 ‘白衣政丞’
劉鴻基는 한의사로 개화파의 정신적 바탕을 만든 인물로 꼽는다. 호가 大致로 일반적으로 ‘劉大致’라는 호칭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劉鴻基는 개항 이전에 이미 개화에 대한 확고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웃에 살고 있는 吳慶錫과 함께 개화와 관련된 서적인 ‘海國圖志’, ‘瀛環志略’, ‘博物新編’ 등 서적들을 탐독하면서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가 1860년대에는 이미 국제적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860년대부터 양반자제들을 제자로 맞이하여 개화사상을 가르쳤는데, 이 때 지도받은 학생으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백춘배, 정병하, 이종원 등이 있었다. 그의 지도를 받은 개화파는 1884년에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3일 천하’로 끝나고 말아 그도 집을 나가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최근 서울시사연구소 연구원인 박은숙은 ‘한국인물사연구’ 제4호에서 ‘유대치의 신분과 정세인식’이라는 글에서 양반 출신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박은숙은 이에 대해 전남 장성군 북이면 송산리에서 발견된 강릉 유씨 유홍규(劉洪奎·1814∼1884)의 묘비명에 유홍규가 백의정승으로 불린 유대치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데 이 묘비가 1924년 이전부터 있었다는 주민 증언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11년 발행된 강릉 유씨 족보에 ‘유홍규가 대치로 개명했으며 개화당을 지도한 백의정승’이라는 가필된 기록도 발견됐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면 그는 한의업에 종사하는 양반 출신 儒醫로서 수많은 개화파 지도자들을 양성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