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일의 儒醫列傳 49

기사입력 2007.02.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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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官職의 뜻을 접고 濟世救民 ‘외길’로

    18세기 후반에는 평안도와 함경도에 기근과 전염병이 유행하였는데, 당시 함경도 관찰사로 있던 이병모는 濟世救民할 목적으로 의서 편찬을 구상하여 주변에 명의를 수소문하던 중에 尹圃巖이라는 사람의 소개로 李景華라는 儒醫를 알게 된다. 이 때 李景華는 이미 백발이었고, 李景華 자신이 쓴 발문에도 의학에 뜻을 둔지 50여년이나 지났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경화는 평안도 성천 출신의 의학자로서 어려서는 관직에 뜻을 두고 유학을 공부하였으나 서북인들은 관직의 진출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이후로 줄곧 의학에 전념하였다. 고향에서 의술을 베풀던 중에 1790년 당시 함경도 관찰사였던 李秉模의 주선으로 ‘廣濟秘 ’ 4권을 저술하였다.

    경희대 차웅석의 연구에 따르면 기존의 사전류의 자료에는 ‘廣濟秘 ’의 저자인 이경화를 숙종 때 충청도에서 송시열의 제자로 활약했던 이경화로 여기고 있으나 숙종 때의 이경화는 1629년에 출생하여 1706년에 작고하였으므로 ‘광제비급’(1790년 간행)의 저자인 이경화와는 동명이인이라고 한다. 앞으로 바로잡혀야 할 것으로 본다.

    ‘廣濟秘 ’의 저술 의도는 구급질환에 응용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책의 목차도 구급질환이 먼저 나오고 다음으로 雜病, 婦人, 小兒의 내용이 실려 있다. 전체적으로 ‘東醫寶鑑’, ‘壽世保元’, ‘本草綱目’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인용하고 있는 책은 ‘東醫寶鑑’이다.

    ‘동의보감’이 저술된지 100여년이 지난 후 민간에서 활동한 李景華를 통해 지방에서 활동하는 儒醫들이 ‘동의보감’을 얼마나 임상에 충실히 활용하고 있었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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