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南一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천하의 아픈 사람 구하려 벼슬을 버리다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시대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킨 시기이다. 특히 일본의 발호와 위정자들의 안이한 판단에 의해 국가가 난국에 처해있었던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일제시대는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갈등의 시기였다.
이러한 즈음에 자신의 벼슬을 버리고 뜻을 濟民에 두어 醫學硏究에 정진한 儒醫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으니 金宇善은 그러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생몰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기록을 통해 金宇善은 1928년 무렵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1914년에 『儒醫笑變術』이라는 책을 내는데, 이 책의 제목인 ‘儒醫笑變術’이란 “儒醫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여 그 집안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바꿔주는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金宇善은 自序에서 “儒學者가 변신하여 醫師가 되니 이는 정말로 웃음살 일이로다.
비록 그러하지만 儒學者는 道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醫師는 病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그 치료하는 기술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醫師를 病工이라 하였으니 병을 치료하여 낫게 하여 그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을 변화시켜 웃는 얼굴로 만드니 이것은 웃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본래 儒學者였지만, 醫師가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자신의 업무에 즐거움을 느끼는 儒醫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儒醫가 되고자 한 사람들은 항상 宋나라 때 范文正公(范仲淹)의 기도를 마음에 둔다. 그는 일찍이 사당에서 “제가 재상이 되어서 천하의 사람을 구제하게 해주시거나 아니면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천하의 아픈 사람들을 구제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 나중에 재상이 되어서도 이러한 그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의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어 의학에 입문하는 儒學者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金宇善이 儒醫가 된 것도 이러한 천하의 아픈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한 뜻을 펼치고자 함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金宇善은 1898년에 고종에게 均田制를 실시할 것을 상소하였다. 그러나 時勢를 파악하지 못한 상소로 판단하는 처분을 내렸다. 金宇善은 이 무렵에 이러한 時局을 통탄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듯하다.
그의 아들 金在容의 跋文에는 정국이 어수선하여 벼슬을 내던지고 대동강을 건너 고향에 돌아와서 의학에 정진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 그는 대동강 이북의 어느 지방에서 관리를 하던 중 일본 침략 등으로 어수선한 시국을 개탄하여 고향인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梨泰院里(현재의 서울 梨泰院洞)로 돌아와 의학에 정진하게 되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儒醫笑變術』는 1928년에 『醫家秘訣』이라는 이름의 제목으로 바뀌어 출간된다. 이 책은 經驗方을 모은 책으로 儒醫로서의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쓰여졌다기보다는 가정처방집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 이 책은 아마도 儒醫의 전통을 잇고 있는 서적 가운데 거의 마지막쯤에 해당하는 것인 듯하다.
천하의 아픈 사람 구하려 벼슬을 버리다
구한말에서부터 일제시대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좌절시킨 시기이다. 특히 일본의 발호와 위정자들의 안이한 판단에 의해 국가가 난국에 처해있었던 구한말에서부터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일제시대는 지식인들에게 정신적 갈등의 시기였다.
이러한 즈음에 자신의 벼슬을 버리고 뜻을 濟民에 두어 醫學硏究에 정진한 儒醫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으니 金宇善은 그러한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생몰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기록을 통해 金宇善은 1928년 무렵 이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1914년에 『儒醫笑變術』이라는 책을 내는데, 이 책의 제목인 ‘儒醫笑變術’이란 “儒醫가 환자의 병을 치료하여 그 집안사람들을 웃는 얼굴로 바꿔주는 기술”이라는 의미이다. 金宇善은 自序에서 “儒學者가 변신하여 醫師가 되니 이는 정말로 웃음살 일이로다.
비록 그러하지만 儒學者는 道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醫師는 病을 다스리는 사람이니, 그 치료하는 기술은 서로 비슷하다. 그러므로 醫師를 病工이라 하였으니 병을 치료하여 낫게 하여 그 집안사람들로 하여금 근심을 변화시켜 웃는 얼굴로 만드니 이것은 웃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본래 儒學者였지만, 醫師가 되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자신의 업무에 즐거움을 느끼는 儒醫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儒醫가 되고자 한 사람들은 항상 宋나라 때 范文正公(范仲淹)의 기도를 마음에 둔다. 그는 일찍이 사당에서 “제가 재상이 되어서 천하의 사람을 구제하게 해주시거나 아니면 훌륭한 의사가 되어서 천하의 아픈 사람들을 구제하게 해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 나중에 재상이 되어서도 이러한 그의 마음은 사람들에게 의학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어 의학에 입문하는 儒學者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金宇善이 儒醫가 된 것도 이러한 천하의 아픈 사람을 구제해주고자 한 뜻을 펼치고자 함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金宇善은 1898년에 고종에게 均田制를 실시할 것을 상소하였다. 그러나 時勢를 파악하지 못한 상소로 판단하는 처분을 내렸다. 金宇善은 이 무렵에 이러한 時局을 통탄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온 듯하다.
그의 아들 金在容의 跋文에는 정국이 어수선하여 벼슬을 내던지고 대동강을 건너 고향에 돌아와서 의학에 정진하게 되었다는 내용의 기록이 있다. 그는 대동강 이북의 어느 지방에서 관리를 하던 중 일본 침략 등으로 어수선한 시국을 개탄하여 고향인 京畿道 高陽郡 漢芝面 梨泰院里(현재의 서울 梨泰院洞)로 돌아와 의학에 정진하게 되었다는 것을 추정해볼 수 있다.
『儒醫笑變術』는 1928년에 『醫家秘訣』이라는 이름의 제목으로 바뀌어 출간된다. 이 책은 經驗方을 모은 책으로 儒醫로서의 접근법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쓰여졌다기보다는 가정처방집으로써의 성격이 강하다. 이 책은 아마도 儒醫의 전통을 잇고 있는 서적 가운데 거의 마지막쯤에 해당하는 것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