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광 중
대구한의대 한방산업대학원장겸 한의과대학장
정보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 필요한 많은 정보와 접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정보로 인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보란 다양성의 관점에서 설정되고 수집되다 보니 상충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일상의 용어 중 상충되는 정보의 속성을 나타내주는 말의 하나가 ‘적당히’일 것이다. ‘적당히’라는 말은 좋은 뜻, 나쁜 뜻으로 두루 쓰이는데 나쁜 의미로는 ‘적당히 생활해서는 안된다’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된다’ ‘적당히 처리해서는 안된다’ 등이 있고 좋은 의미로는 ‘적당히 먹어라’ ‘적당히 운동하라’ ‘적당히 행동하라’ 등이 있다.
원래 ‘적당히’라는 말은 ‘適當’이라는 한자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해당하는 상황에 맞게 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쓰이는 ‘적당히’의 의미는 분명히 하지 않고 대충 처리한다는 의미와, 하기는 하되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여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상황에 따라 분명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적당히’라는 말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것일까.
사람의 삶의 제반문제는 개인적인 상황과 더불어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파생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삶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개인적인 상황보다 사회적인 관계를 보다 강조하는 획일화된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지금 세상은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다원화로 특징되는 현대사회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사회적인 관계보다 개인적인 상황을 더 강조하는 탈산업사회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획일적’ 사고가 중심이 됐던 사고방식에서 개별적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사고체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기존의 획일화된 사고로는 다원화시대에 나타나는 상충되는 삶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로 인한 혼란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건강을 다루는 데서 그러한 혼란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술을 많이 먹어도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운동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양면적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획일적 방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의미로서의 ‘적당히 먹어라’ ‘적당히 운동하라’ 등의 ‘적당히’라는 입장에서 이를 해결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표현처럼 보이나 사실은 가장 애매하고 불합리한 표현이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 것으로 볼 때는 어떤 사람은 술을 먹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술을 안먹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안하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하고 바람직한 것 아닌가.
이제 우리는 다원화시대를 맞아 다양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한자문화권에 의해 만들어진 ‘적당히’라는 말이 갖는 참모습을 찾아야 할 때다. 이는 여태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하다. 세상은 변하는데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문제해결에 나서려 해서는 안된다.
‘적당히’라는 말이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잘못된 일방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진정 ‘적당히’의 의미를 되찾는 날, 우리는 미래의 새로운 한의학시대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
대구한의대 한방산업대학원장겸 한의과대학장
정보화시대를 맞아 우리는 필연적으로 삶에 필요한 많은 정보와 접하며 살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결정할 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정보로 인해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정보란 다양성의 관점에서 설정되고 수집되다 보니 상충될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일상의 용어 중 상충되는 정보의 속성을 나타내주는 말의 하나가 ‘적당히’일 것이다. ‘적당히’라는 말은 좋은 뜻, 나쁜 뜻으로 두루 쓰이는데 나쁜 의미로는 ‘적당히 생활해서는 안된다’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된다’ ‘적당히 처리해서는 안된다’ 등이 있고 좋은 의미로는 ‘적당히 먹어라’ ‘적당히 운동하라’ ‘적당히 행동하라’ 등이 있다.
원래 ‘적당히’라는 말은 ‘適當’이라는 한자의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해당하는 상황에 맞게 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쓰이는 ‘적당히’의 의미는 분명히 하지 않고 대충 처리한다는 의미와, 하기는 하되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쓰여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되고 있다. 결국 이들은 상황에 따라 분명하게 대처해 나간다는 본래의 의미를 제대로 갖지 못하고 변질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적당히’라는 말이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것일까.
사람의 삶의 제반문제는 개인적인 상황과 더불어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파생된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는 삶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개인적인 상황보다 사회적인 관계를 보다 강조하는 획일화된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상태다. 지금 세상은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다원화로 특징되는 현대사회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사회적인 관계보다 개인적인 상황을 더 강조하는 탈산업사회의 경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의 ‘획일적’ 사고가 중심이 됐던 사고방식에서 개별적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사고체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기존의 획일화된 사고로는 다원화시대에 나타나는 상충되는 삶의 제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정보로 인한 혼란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건강을 다루는 데서 그러한 혼란의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술을 많이 먹어도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부담을 느끼는 경우가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운동을 많이 할수록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운동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양면적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획일적 방법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의미로서의 ‘적당히 먹어라’ ‘적당히 운동하라’ 등의 ‘적당히’라는 입장에서 이를 해결하고 있다. 이 말은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표현처럼 보이나 사실은 가장 애매하고 불합리한 표현이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해야 하는 것으로 볼 때는 어떤 사람은 술을 먹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술을 안먹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안하는 것이 좋고 어떤 사람은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하고 바람직한 것 아닌가.
이제 우리는 다원화시대를 맞아 다양성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는 한자문화권에 의해 만들어진 ‘적당히’라는 말이 갖는 참모습을 찾아야 할 때다. 이는 여태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하다. 세상은 변하는데도 기존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은 상태로 문제해결에 나서려 해서는 안된다.
‘적당히’라는 말이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갖고 있던 잘못된 일방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진정 ‘적당히’의 의미를 되찾는 날, 우리는 미래의 새로운 한의학시대에 서 있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