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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통폐합이 아니라, 한의약 산업지원 기능의 확장이 필요합니다한국한의산업진흥협회 회장 강희정 [한의신문] 한의학은 과거의 유산에 머물러 있는 학문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문화유산이면서, 진단·처방·약재·의료기기·건강관리 기술이 결합된 기술유산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의료자산이 될 수도 있고,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고부가가치 산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시점에 한국한의약진흥원의 통폐합이나 기능 축소가 거론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2019년 현재의 명칭과 체제로 출범한 이후 한의약 정책개발, 연구개발, 산업화, 한약재·한약제제 지원, 기업지원과 해외진출 등 한의약 분야의 전문 업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한의약산업을 이해하고 산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정부 지원기관이기도 합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지난 몇 년간 한의약 정책과 연구개발, 기업지원, 해외진출 기반 조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산업계와 현장을 연결하는 전문 지원기관으로서의 기반도 꾸준히 구축해 왔습니다. 다만 급변하는 산업환경과 AI·디지털 전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업기획 역량과 기업 맞춤형 지원, 연구성과의 제품화와 사업화 연계 기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산업현장의 다양한 수요가 정책과 사업에 보다 신속하게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혁신도 함께 요구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가 있다고 해서 전담기관을 없애거나 다른 기관에 흡수하는 것이 해답은 아닙니다. 오히려 변화하는 산업환경에 맞게 기능을 보완하고 역량을 강화해 한의약산업을 전담하는 전문기관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도로가 막힌다고 도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도로를 넓히거나 신호체계를 변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관 통폐합이 아니라 “한의약 산업지원 기능의 강화와 확장”입니다. 세계는 전통의학을 미래산업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는 전통의학 전담조직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산업화, 디지털 전환, 표준화와 해외진출을 국가전략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 역시 「전통의학 글로벌 전략 2025~2034」를 통해 근거 강화, 표준화, 보건의료체계 연계와 디지털 기술 활용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전통의학의 데이터와 기술표준을 선점하려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한 전담 지원기관을 약화시킨다면, 한의학이 가진 지식과 산업적 가치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줄 수 있습니다. 한의약산업은 한약재와 한약제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의료기기, 디지털 헬스, AI 건강관리, 식품, 뷰티, 관광과 웰니스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국민건강에 기여하는 동시에 수출, 일자리, 지역산업과 고부가가치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분야입니다. 세계적인 K-Culture 열풍을 일시적인 콘텐츠 소비에 그치지 않고 제품과 서비스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한의학을 K-웰니스의 핵심 자산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AI 전환은 한의학을 새롭게 분석하고 검증할 기회입니다 한의학은 하나의 증상이나 수치만으로 사람의 상태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증상, 생활습관, 신체상태, 정서적 변화, 맥·설·복진 정보와 치료 반응을 종합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을 분석합니다. 이러한 복합적 특성은 기존의 단순 통계나 제한적인 분석기술만으로 설명하고 검증하기 어려웠습니다. 한의학이 실제 임상에서 활용하는 다차원적인 관계와 시간에 따른 변화를 기존 연구방법으로 충분히 다루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AI 전환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습니다. 임상정보, 생체신호, 의료영상, 설문, 처방과 치료 반응을 함께 분석하면 기존에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한의학적 패턴을 데이터로 구조화할 수 있습니다. 맥진·설진과 같은 진단기술의 객관화, 한약 처방과 약재 연구,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고령자와 만성질환자의 예방관리, 다국어 한의약 지식서비스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AI가 한의학의 효과를 저절로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분석하기 어려웠던 복합적인 임상정보를 연구 가능한 데이터로 전환하고, 과학적 검증의 범위와 정밀도를 높이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 한의약 전담기관의 역할을 축소할 때가 아니라 확대해야 할 때입니다. 한의약 데이터의 용어와 수집기준을 표준화하고, 데이터 품질과 개인정보를 관리하며, 의료기관·대학·연구기관·기업이 함께 연구하고 실증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개별 기업이나 연구기관의 노력만으로는 이러한 국가적 기반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이 한의약 AI 기술을 독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산업계와 연구기관이 안정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제품화할 수 있도록 공공 인프라와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전문기관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지부 총괄, 진흥원 실행지원, 범부처 공동투자가 필요합니다. 한의약산업은 보건복지부의 정책과 예산만으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AI와 데이터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창업과 사업화는 중소벤처기업부, 수출과 표준화는 산업통상자원부, 약용작물과 원료산업은 농림축산식품부, K-Culture와 웰니스 확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과 연결돼야 합니다. 따라서 한의약육성발전계획은 보건복지부가 총괄하고,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산업화·기술개발·AI·데이터·세계화 과제의 실행을 지원하며, 관계부처가 각자의 소관 분야에서 정책과 예산을 연계하는 한의산업 거버넌스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첫째, 한국한의약진흥원을 제5차 한의약육성발전 종합계획의 산업·AI·세계화 과제를 지원하는 핵심 전문기관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둘째, 한의약 임상·산업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안전하게 활용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AI·데이터 기반을 구축해야 합니다. 셋째, 관계부처의 AI·창업·수출·농업·문화 분야 지원사업을 한의약산업과 연결하는 범부처 협력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넷째, 연구개발에서 제품화, 임상·실증, 인허가, 보험, 투자와 수출까지 이어지는 전주기 기업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다섯째, 사업 건수와 예산 집행률이 아니라 제품 출시, 매출, 수출, 고용, 투자유치와 규제개선 성과를 중심으로 사업을 평가해야 합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것은 현재의 조직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한 부분은 과감히 개혁하되, 대한민국의 한의약산업을 책임질 전문기관의 기능과 역량은 강화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의학은 한의계만의 자산이 아닙니다. 국민 모두가 물려받은 문화유산이자 기술자산입니다. 이 소버린 보건자산을 AI 기반 미래산업과 세계적인 K-웰니스로 발전시킬 것인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채 세계시장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넘겨줄 것인지 이제 선택해야 합니다. 기관 통폐합이 아니라 한의약 산업지원 기능의 확장이 필요합니다. 복지부가 정책을 총괄하고,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산업화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며, 관계부처가 함께 투자하는 국가 한의산업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금 세대가 물려받은 한의학을 미래세대의 건강과 일자리,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키는 길입니다. ※ 한국한의산업진흥협회(KOMPAS)는 한약재, 한약·제약, 원외탕전, 한의 의료기기, 정보통신·디지털 헬스 등 한의산업 전 분야의 기업이 참여하는 최초의 종합 한의산업협회로, 협회는 한의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기업지원, 정책·규제 개선, 연구개발, 표준화, 수출 확대와 산업계 권익보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
“대만 전통의학 경험하고 상호 교류한 시간”2018년 대만에서 열린 동양의약학술대회에 참여하였다가 高晧宇 중의사를 알게 됐다. 그는 타이중에 소재한 중국의약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타이베이의 ‘Mackay memorial hospital’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경력이 지긋하신 노교수님과 노의사들 사이에서 젊은 두 의사는 금방 친구가 됐다. 서로의 발표를 잘 들었다며 격려해주고 간단히 질문을 하다 대화가 길어지자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근처 식당에서 뉴러우판, 총삥 등 대만식으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으나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았고 코로나19로 인해 8년이 지난 뒤 2026년 재회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그는 타이베이 시내에 중의원을 개원했고 그의 병원에서 만나 점심을 먹으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대화를 하기로 했다. 그의 병원은 난징동루에 난징산민 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로 버스정류장 앞에 병원이 있어서 찾아가는 것은 매우 쉬웠다. 나중에 高 중의사가 알려주기로는 대로변에 은행들이 쭉 위치한 곳이라고 했다. 병원에 들어가니 밝은 조명에 흰색으로 통일된 느낌의 인테리어가 젊은 의사의 선택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접수대의 직원이 저에게 중국어로 응대했으나 영어로 원장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한국인이라고 대답했고 ‘Ah, Korean?’이라고 이해한 뒤 원장실로 전달하러 갔다. 11시 30분경 점심시간이 가까웠지만 훈증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 침 치료를 받는 환자, 진찰과 상담을 받는 환자로 병원은 활기찬 분위기였다. 진료실에서 高 중의사가 잠시 나와 밝게 맞아주며 환자가 있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못 본 사이에 체중이 조금 줄어든 듯 보였지만 의사 가운을 입고 원장으로서 일하는 모습은 처음 본 터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기실 TV에는 그가 직접 찍은 건강 정보에 대한 유튜브 영상이 나오고 있었고 TV 한 쪽에 대기자 명단과 대기 번호를 확인할 수 있어서 한약 냄새가 나는 것을 제외하면 흡사 양방 병원에 있는 듯한 느낌도 잠시 들었다. 오전 진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진료시간표를 보니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진료하고 있어서 한국의 365 야간진료 분위기와 비슷함을 느꼈다. 진료가 일찍 끝나는 화요일은 오후에 Mackay memorial hospital에서 여전히 주 1회 진료하고 있었다. 오전 진료시간이 끝나고 치료 받던 환자들이 모두 귀가하자 비로소 高 중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제가 환자 군이 무척 젊다고 하니, 高 중의사가 비오는 날씨 탓에 노인 분들이 외출을 삼가 하신 것이라 대답하는 것이 한국의 도심 한의원과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직원 2명을 소개해 주었는데, 1명은 약재실을 담당하고 있었고 1명은 접수대와 치료실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중의원 내부를 함께 살펴봤다. 진료실 2개, 치료실, 탕전실, 약재실로 구성돼 있었고 20평 중반 남짓해 보였다. 진료실은 의사와 환자가 밀착해 진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었다. 치료실은 침상이 4개 있었고 TENS, IR, 전기침자극기가 구비돼 있었다. 치료실 한 켠에는 훈증요법을 위한 공간이 있다. 대기실에서 高 중의사를 기다리는 동안 여러 환자가 통증 부위에 훈증 요법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부인과 질환에 훈증요법을 많이 사용하지만 다른 증상에는 적용하는 경우가 적은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 외 일련의 치료 과정을 들으니 한국과 거의 흡사했는데, 침 1개당 침관 1개가 포장돼 있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高 중의사는 한국의 전자뜸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직접 쑥뜸을 이용한 것과의 차이, 환자의 반응 등 여러 질문을 했는데, 한국에서도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지금은 전자뜸 사용이 보편화됐다고 설명해 주니 매우 놀라워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의 치료에 대해 다른 점을 알려달라고 해 한국에서는 약침 치료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탕전실로 이동했는데, 한국과 비슷한 약탕기와 포장기가 1대씩 작동하고 있었다. 놀랐던 점은 냉장고에 상비약이 거의 30여종 준비돼 있었던 사실이었다. 모든 환자에게 산제와 탕제의 한약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약재실은 약국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복합제제들이 3면의 약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약장 밑 선반에서 에페드린(마황 추출물), 강황가루(건강기능식품) 등도 보여주며 구비해놓고 필요시 사용한다고 알려줬다. 그 중 눈에 띄었던 것은 한국에서는 모든 한약재들이 제약회사를 통해 관리, 유통되면서 한약 포장면에 해당 정보가 모두 기입되고 있는 것과 달리, 대만에서는 단순 포장 수준의 관리, 유통만 이뤄지고 있던 사실이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추가로 질문하니 대만에서도 중국의 약재 관리, 유통체계를 도입해 적용하려는 중이라 일부 중국 제약회사를 통해 약재를 구입하면 한약 정보가 모두 표기돼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하에 창고가 있다고 해 살펴보았는데, 유튜브 영상을 촬영하는 스튜디오와 각종 물품 보관이 가능한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나 또한 소모품은 대량 구입해 창고에 쌓아두고 사용했던 기억이 나서 역시 한국과 대만의 상황이 서로 비슷하다고 느꼈다. 중의원을 둘러보고 근처 일식당으로 옮겨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눴다. 그가 코로나 직후 결혼한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아이가 생겼다고 알려주었다. 개원을 축하하려고 만났는데, 아버지가 된 것까지 거듭 축하했다. 개원비용, 직원관리, 기대소득 등 개원의들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니 한국의 개원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제가 교수 임용이 된 것에 대해서도 축하하며 학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병원이 점심시간이 1시간 30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시간이 흘러가 그는 오후 진료를 해야 될 시간이 돼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에 또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대만 중의원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됐을 뿐만 아니라 대만의 젊은 중의사의 생각에 대해서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아 한국과 대만이 상호교류를 통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최근 K-MEX에 타이베이중의사협회가 참여했고 하계방학 동안 상지대학교에 자제대학교 중의학과 학생들이 교환연수 프로그램을 위해 방문했다. 자제대학 吳炫璋 교수님으로부터 실제로 대만에서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을 방문하고 대만 내 중의학 교육이 사립대학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던 것을 국립대학교의 참여 필요성을 강력히 피력해 2024년 국립양명교통대학교, 2025년 국립중흥대학교에 중의학과가 신설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앞으로도 개인, 단체 교류가 양국 간의 전통의학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여성의 부름에 답하는 한의학을 만나다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 심규찬(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본과 4학년) [한의신문] 지난 6월 21일, SETE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6 유관학회 연합세미나에 척추신경추나의학회 서포터즈로서 참석했다. ‘한의학이여, 여성의 부름에 답하라’라는 주제 아래 대한스포츠한의학회, 대한침구의학회, 임상약침학회, 척추신경추나의학회가 함께한 자리였다. 서포터즈로 현장을 지키며 강의를 듣는 동안, 네 학회가 스포츠의학, 침구, 약침, 추나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해 결국 '여성 건강'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모이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여성 건강이라고 하면 보통 월경·임신·출산·갱년기처럼 익숙한 몇 가지 주제를 먼저 떠올린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도 대체로 그 언저리에 머문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 여성 환자를 만난다는 것은 생애주기, 호르몬 변화, 운동 수행, 피부와 체형, 골반과 내장기, 심리와 환경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훨씬 입체적인 일이다. 이번 세미나는 바로 그 점을 네 개의 강의로 보여 주었다. 여성 스포츠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첫 강의는 대한스포츠한의학회 함유정 이사님의 여성 스포츠인 관리 강의였다. 핵심은 여성 운동선수를 '남성과 다르다'는 비교의 틀로만 볼 것이 아니라, 여성 자체를 독립적인 연구·관리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 기억에 남은 것은 여성 운동선수 3징후에서 RED-S(스포츠 상대적 에너지 결핍)로 모델이 확장되어 온 흐름이었다. 과거 이상섭식·무월경·골다공증 세 축이 이제는 에너지 상태·생식 기능·골 건강을 중심으로 면역, 심혈관, 심리, 회복, 경기력까지 연결해 보는 방향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생리가 불규칙하다"는 현상 뒤에 에너지 부족과 회복 지연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관점, 생리 주기만으로 훈련을 기계적으로 조절하기보다 개인의 컨디션에 맞춘 개별화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같은 병명도 환자에 따라 다르게 접근하는 한의학의 시선과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었다. 침과 실, 그리고 한의학적 원리 두 번째는 대한침구의학회 박연철 이사님의 강의였다. "침과 실이 만드는 아름다움"이라는 제목만 보면 미용·매선 중심일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침구 치료의 한의학적 원리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술기를 하더라도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해야 효과가 좋다"는 메시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매선·약침·침처럼 기술의 형태는 달라도, 그 바탕에는 환자의 상태를 어떻게 파악하고 어느 방향으로 조절할지에 대한 원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한 부위만 보지 않고 상하·좌우·전후, 표리 관계와 장부·경락의 연결까지 함께 살피는 설명을 들으며, 학교에서 선처럼 외우던 경락이 임상에서는 3차원의 조절 네트워크로 작동해야 한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좋은 술기를 익히는 것만큼, 그 술기를 어디에 왜 어떤 원리로 쓰는지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미용 약침, 한의학의 새로운 임상 영역 세 번째는 임상약침학회 성혜령 원장님의 미용약침 강의였다. 스킨부스터 같은 시술이 무엇인지, PN, PDRN 같은 성분이 실제 임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모르는 학생이 많은데, 이번 강의가 바로 그 지점을 짚어 주어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강의에서는 피부미용 약침이 피부의 재생 환경과 장벽, 염증, 노화, 흉터, 탈모, 지방분해까지 폭넓게 활용된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약침의 역할을 "피부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표현하신 대목이었다. 진피 환경이 무너진 피부에서는 레이저·리프팅의 효과도 오래가기 어려운데, 이때 보습·탄력·재생·항염을 돕는 약침이 그 바탕을 받쳐 준다는 의미였다. 정말 좋은 비유라고 생각해, 나중에 임상에서 환자에게 설명할 때 그대로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술 자체만큼 사전 고지와 사후 관리가 강조된 점도 기억에 남았다. 치료 효과만이 아니라 과정에서 나타날 변화와 그 의미를 정확히 안내하는 일이 의료인의 중요한 역할임을, 미용 영역을 통해 다시 확인했다. 손으로 골반과 내장기를 읽는다는 것 마지막은 척추신경추나의학회 기성훈 원장님의 부인과 추나요법 강의였다. 내장기 추나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학생이 많을 텐데, 이번 강의는 그 분야에 처음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강의에서는 골반강과 골반 내 장기를 중심으로 가동성, 고유운동성, 인대·근막의 연결, 채프먼 반사점을 활용한 평가와 치료가 소개되었다. 가장 새로웠던 점은 내장기를 단순한 해부학적 구조물이 아니라 움직임을 가진 기관으로 바라본다는 것이었다. 외부 힘에 반응하는 가동성과 발생학적 발달 과정에 연결된 고유운동성이 제한되면, 고유수용기 정보가 줄고 자율신경·순환·회복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특히 골반강에서는 자궁·난소·방광·골반저와 여러 인대가 근막을 통해 서로 이어져 있어, 한 곳의 긴장이나 움직임 제한이 통증·월경 문제·하복부 불편감으로 함께 드러날 수 있었다. 이렇게 얽힌 영역까지 손으로 평가하고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추나가 가진 가능성의 폭을 새삼 실감했다. 이번 강의를 계기로, 근골격계 추나뿐 아니라 내장기 추나까지 깊이 있게 공부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여성 건강을 향한 한의학의 확장, 그리고 서포터즈로서의 시간 이번 세미나를 들으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여성 건강은 어느 한 과목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여성 운동선수 관리에는 스포츠의학·부인과·영양·심리·재활이, 피부미용에는 약침·침구·재생·환자 커뮤니케이션이, 부인과 추나에는 골반·내장기·근막·자율신경과 촉진·동의의 문제가 함께 얽혀 있었다. 여성의 건강에 답한다는 것은 혈자리나 처방 몇 가지를 더 아는 일이 아니라, 환자의 몸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태도임을 배웠다. 서포터즈로 현장을 함께 만든 경험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배움이었다. 학교 수업만으로는 임상 현장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새로운 개념과 술기, 임상 영역은 학회라는 장을 통해 공유되고, 선배 한의사들의 고민이 후배에게 전해진다. 그 자리를 가까이에서 돕고 지켜보며, 학회 활동이 단지 강의를 듣는 일이 아니라 한의학이 확장되는 현장을 직접 경험하는 일임을 체감했다. 아직 학생인 내가 강의 내용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가 앞으로 공부할 방향을 한결 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분명하다. 여성의 건강을 넓고 깊게, 그리고 환자의 몸을 하나의 맥락 속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자리에서 배웠다. 귀한 배움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척추신경추나의학회와 여러 유관학회, 경험과 지혜를 나누어 주신 연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이번 배움을 바탕으로, 나도 여성의 다양한 건강 문제에 더 세심하게 귀 기울이는 한의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
관악경찰서 의료지원을 통해 본 지역사회의 한의진료[한의신문] 관악구한의사회(회장 장재혁)와 한의의료지원단 ‘한의가디언즈’(대표 지현우)는 지난달 30일 서울관악경찰서에서 소속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한의 의료지원을 진행했다. 이번 의료지원은 장시간 및 교대근무, 반복되는 현장 출동 등으로 근골격계 통증과 피로, 스트레스에 노출되기 쉬운 경찰관들의 건강관리를 돕기 위해 마련됐다. 학생의 입장에서도 지역사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한의진료를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였다. 진료 수요 반영…의료장비 및 진료체계 지속 보완 현장에서는 경찰관들의 주요 증상과 관련 병력을 먼저 확인한 뒤 초음파 가이드 약침 치료, 추나요법, 체외충격파를 활용한 근건이완수기법, 스트레스 진단 및 건강상담 등을 개인별 상태에 따라 진행했다. 수차례 이어진 의료지원 과정에서 앞선 활동을 통해 파악한 진료 수요를 반영해 의료 장비와 진료 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온 점도 눈에 띄었다. 초음파 가이드 약침 치료 현장에서는 의료진이 통증의 위치와 양상, 증상을 유발하는 동작 등을 확인한 뒤 초음파 영상으로 시술 부위와 주변의 해부학적 구조물을 실시간으로 살피며 치료를 시행했다. 목표 부위와 인접 구조물을 영상으로 확인하며 시술하는 과정을 통해 초음파가 약침 치료의 정밀성과 안전성을 높이는 데 어떻게 활용되는지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추나 치료 현장에서는 관절의 움직임과 가동 범위, 근육의 긴장 상태 등을 확인한 뒤 진료가 이루어졌다. 의료진은 평소 근무 자세와 업무 중 반복하는 동작, 증상이 심해지는 상황 등을 함께 파악했으며, 진료 후에는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자세 교정과 관리 방법도 안내했다. 한의진료, 지역사회 건강관리의 한 축 담당 스트레스 진단 및 건강상담 현장에서는 옴니핏 장비로 맥파를 측정하고, 이를 토대로 스트레스와 자율신경계 상태를 확인했다. 의료진은 측정 결과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근의 수면 상태와 피로도, 교대근무 여부, 생활 습관 등을 함께 살피며 결과를 설명했다. 경찰관들도 상담 과정에서 평소 지나치기 쉬웠던 피로와 수면 문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했으며, 필요한 경우 생활관리와 한약 상담으로 이어졌다. 특히 같은 목이나 어깨 통증을 호소하더라도 증상의 발생 및 악화 요인은 저마다 달랐다. 의료진은 통증 부위만을 살피기보다 근무 환경과 반복 동작, 업무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해 진료를 진행했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관의 건강은 안정적인 치안 업무의 지속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이번 의료지원은 한의진료가 경찰관의 직업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폭넓게 살피며 지역사회 건강관리의 한 영역을 담당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지역사회 한의 공공의료 체험한 뜻깊은 시간 또한 앞선 의료지원에서 확인된 수요를 바탕으로 초음파 장비와 진료 인력을 보완하고, 근골격계 통증뿐 아니라 피로와 수면, 스트레스까지 포괄하도록 진료 프로그램을 구성한 점도 뜻깊게 다가왔다. 일회성 진료에 머무르지 않고 대상자의 실제 요구에 맞춰 의료지원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지역사회 공공의료에서 한의학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의료지원이 꾸준히 이어져 더 많은 한의사와 한의대생이 지역사회 한의진료의 현장을 경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뜻깊은 참관의 기회를 마련해 준 관악구한의사회와 한의의료지원단 ‘한의가디언즈’ 의료진께 감사드린다. -
캄보디아를 사로잡은 K-한의학, 13년 인술(仁術)의 기록지난 7월 23일부터 27일까지 3박 5일간, 캄보디아 캄퐁 톰(Kampong Thom) 지역에서 '경상북도 보건단체 의료봉사단'의 제13회 해외 의료봉사 활동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초기 2년간 의사회 중심으로 시작되었던 의료봉사는 3회째부터 경상북도 5개 보건단체가 뜻을 모으면서 그 규모와 깊이를 더해왔으며, 경상북도한의사회로서는 어느덧 11번째 걸음을 보탠 셈이다. 특히 올해는 5개 보건단체에 새마을재단까지 합류하며 역대 가장 매머드급이자 내실 있는 민관 협력 봉사단으로 발전했다. 경북한의사회에서는 필자를 비롯해 조희창 수석부회장(경산 조희창한의원), 김도완 총무부회장(안동 서울한의원), 이재열 의무이사(경산 경희한의원), 왕기언 국제이사(경산 왕한의원), 정길산 원장(구미 참신통한의원) 등 한의사 6명과 가족 회원 7명이 동참해 따뜻한 나눔의 손길을 보탰다. 출발 전, 현지 정세와 치안에 대한 언론 보도로 주변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해 목도한 캄보디아의 보건의료 현실은 상상 이상으로 열악했다. 더욱이 지난해 인접국과의 국경 분쟁 여파로 물리적·정신적 상흔이 깊게 남은 현지 주민들에게 이번 의료봉사는 단순한 진료를 넘어 깊은 위로이자, 양국 간 두터운 우호를 다지는 뜻깊은 계기가 됐다. ‘잘 살아보세’ 새마을운동 정신도 현지에 전파 올해로 13년째를 맞이한 봉사단은 한의사·의사·치과의사·간호사·약사 등 경북 보건단체 회원 76명과 새마을재단 봉사단 33명 등 총 109명의 인원으로 꾸려졌다. 올해 첫발을 함께 내딛은 새마을재단 봉사단은 진료 과정에 큰 도움을 준 것에 그치지 않고, 봉사 종료 후에도 현지에 남아 5일간 주거 환경 개선과 한국어 교육봉사를 이어가 과거 가난을 딛고 희망을 일궜던 '잘 살아보세'의 새마을운동 정신을 캄보디아 땅에 전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현지 주민들의 열악한 보건의료 환경을 다듬고 건강을 되찾아주고자 노력한 우리의 의료봉사 역시, 결국 이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새마을운동 정신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랑으로 전하는 마음, 건강한 캄보디아'라는 슬로건 아래 캄퐁 톰 주립병원에 거점을 마련한 봉사단은 본격적인 의료 지원에 나섰다. 전국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5개 보건의료단체의 '원팀(One-Team)' 협력은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지만, 특정 지역을 지속해서 찾아가 치료와 예후 관찰, 현지 의료인 교육까지 아우르는 '지속 가능한 보건 모델'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휘한다. 연일 문전성시를 이룬 한의과 진료실 진료 체계 역시 세심하고 정교했다. 한의과, 내과, 외과, 치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안과 등 종합병원 수준의 시스템을 현지에 임시 개원한 셈이었다. 단순 1차 진료를 넘어 위내시경 검사, 외과 수술, 임상병리 검사 등 심도 있는 정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현지 보건 환경 개선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무려 11번째 참여하는 단원이 있을 정도로, 캄보디아의 내일을 함께 고민하는 봉사자들의 진정성은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의료 지원과 함께 지역 맞춤형 나눔 사업도 다채롭게 펼쳐졌다. 노년층의 눈을 밝혀줄 돋보기안경 1,892구를 배부하고, 캄퐁 톰 초등학교를 찾아 체육용품과 학용품 세트 200개, 장난감 등을 전달하며 유소년들의 꿈을 응원했다. 이와 더불어 현지 보건진료소용 응급구호가방 10세트와 진료실 에어컨 3대를 지원하고, 통역을 맡아준 캄보디아 국립민쩨이대학교 한국어학과 학생들에게 발전기부금 1,500달러를 전달하는 등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냈다. 이번 봉사에서도 한의과 진료실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다. 침과 부항, 한약제제 처방은 물론 약침 치료와 추나요법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고 정교한 한의학적 시술을 선보여 현지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한의학의 우수성, 현지 의료진에게 강렬히 각인 특히 지난해 진료를 받고 통증이 크게 줄었다며 1년을 기다려 다시 찾아와 고마움을 전하는 환자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심지어 한의 치료의 뛰어난 효과를 경험했던 캄보디아 현지 의사들 중 일부는 진료를 받기 위해 3시간 떨어진 프놈펜에서 먼 길을 달려오기도 했다. 한의학의 우수성과 치료 의학으로서의 가치가 국경을 넘어 현지 의료진에게도 강렬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후덥지근한 무더위 속, 에어컨조차 제 기능을 못 하는 진료실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탈진하지 않고 무사히 진료를 마치는 것조차 기적 같은 악조건이었지만, 단 6명의 한의과 의료진은 첫날 192명, 둘째 날 311명에 달하는 환자들을 쉬지 않고 정성껏 돌봤다.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치유하고자 했던 그 열정은 현장에서 발휘된 초능력이자 한의학의 인술(仁術)이 만든 기적과도 같았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도 한의 치료에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적시던 그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아른거린다. 작고 미약한 손길에 더 큰 감동으로 화답해 준 그들이 오히려 고맙고 스승 같다. 서로의 삶에 선한 영향력을 물들인 이번 봉사는 내 가슴속에 오래도록 울려 퍼질 소중한 '인술의 노래'이자 생생한 기적의 기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끝으로 찜통더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초능력을 발휘하며 묵묵히 헌신해 준 한의과팀 5명의 의료진과 불평 한마디 없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가족 회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뇌파, 한의 임상을 읽는 새 언어가 되다김정태 원장(제주 더아이맘한의원) 필자는 지역에서 소아 진료를 특화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사의 뇌파검사(뇌기능검사) 활용은 지난 2023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료법상 면허 외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받았다. 이후 일부 학회 소속 원장들과 한방신경정신과 분야를 중심으로 뇌파검사를 임상에 적극 활용해오고 있으나 여전히 많은 한의사들에게 뇌파는 낯설고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필자 역시 처음부터 뇌파에 익숙했던 것은 아니다. 진맥을 하고 침을 놓으며 한약을 처방하는 전통적인 진료 방식에는 익숙했지만 뇌파 세미나를 듣고 학회에 가입해 공부하기 전까지는 뇌파 장비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뇌파가 한의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또 한의학적 진단과 치료에 어떤 방식으로 접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 10년 넘게 소아 환자를 진료하면서 틱장애와 ADHD 등 소아 신경정신계 질환으로 내원하는 환자는 꾸준히 증가했고, 증상의 중증도 역시 높아지는 것을 현장에서 체감했다. 기존 치료만으로는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보다 객관적인 평가와 치료 경과 확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에 필자는 약 1년 전부터 뇌파검사(뇌기능검사) 장비와 뇌파치료(뉴로피드백·두뇌훈련) 장비를 도입해 임상에 활용하고 있다. 우선 기존 치료에 반응이 충분하지 않았던 틱장애 환자들을 중심으로 적용했고, 치료 전후를 추적 관찰한 결과 다수의 환자에서 틱 증상이 의미 있게 호전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재에서는 이러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뇌파검사와 뉴로피드백이 한의 임상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한스 베르거(1873. 5. 21~ 1941. 6. 1) ◎ 뇌파의 발견…뇌 기능을 읽는 새로운 시작 ‘뇌파(EEG, Electroencephalography)’는 Electro(전기)·Encephalo(뇌)·Gram(기록)의 합성어로, 두피 아래 대뇌 피질 뉴런들의 집단적 전기 활동을 두피에 부착한 비침습적 전극을 통해 측정·기록하는 검사이다. 한자어로는 ‘뇌전도(腦電圖)’라고 한다. 뇌파 연구의 시작은 18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리버풀 출신의 의사 리처드 카튼(Richard Caton)은 토끼와 원숭이의 대뇌에서 전기적 활동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처음 보고했다. 이후 1924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이자 생리학자인 한스 베르거(Hans Berger)가 세계 최초로 사람의 뇌파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으며, ‘Electroencephalogram(EEG)’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오늘날 임상에서 활용되는 뇌파검사는 이 같은 연구를 토대로 약 1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 뇌의 전기신호, 질환의 흔적을 드러내다 1930년대에는 간질(뇌전증) 발작과 특징적인 뇌파 패턴 사이의 연관성이 밝혀지면서 뇌파검사가 신경계 질환 진단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어 1950년대에는 뇌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전기활동이 발생하는지를 시각화하는 뇌전도 지도(Brain Mapping) 기술이 개발되면서 임상적 활용 범위가 확대됐다. 이후 컴퓨터 기술과 디지털 신호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뇌파 분석은 비약적으로 진보했다. 특히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 이후 디지털 뇌파 분석이 가능해졌고, ADHD를 비롯한 다양한 신경정신계 질환의 연구와 임상 평가에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 뇌파는 ‘마음의 창’…보이지 않는 마음을 읽는 객관적 신호 뇌파는 흔히 ‘마음의 창(Window on the Mind)’이라고 불린다. 이는 뇌파가 대뇌피질의 기능적 상태를 실시간으로 반영하는 객관적인 생체신호이기 때문이다. 뇌파는 신경망의 활성도와 각성 수준, 집중력, 정서 상태 등을 평가하는 데 활용될 수 있으며, 불면증과 우울증 등에서는 기능적 변화와의 관련성이 꾸준히 연구되고 있다. 또한 인지기능과 뇌파의 상관관계 역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뇌파검사는 성인의 불면증과 우울증뿐 아니라 소아의 틱장애, ADHD, 학습장애 등 신경정신계 질환은 물론 스트레스와 관련된 두통, 기능성 소화장애, 식욕조절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의 치료와 함께 활용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QEEG…뇌 기능을 객관화하다 많은 원장님들이 일반적인 뇌파 파형은 한 번쯤 접해보셨을 것이다. 그러나 임상에서 보다 많이 활용되는 것은 이러한 원시 파형을 디지털 방식으로 분석한 정량화 뇌파(QEEG, Quantitative EEG)이다. 이는 디지털 EEG 데이터를 수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각 주파수 대역의 특성을 수치화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분석 기법이다. 일반적인 뇌파보다 뇌 기능의 특성을 보다 객관적이고 정밀하게 평가할 수 있어 흔히 ‘브레인 맵핑(Brain Mapping)’이라고도 불린다. QEEG를 활용하면 정상군과의 비교를 통해 환자의 뇌 기능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침 치료나 한약 치료 전후의 변화를 비교해 치료 경과를 모니터링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치료 반응을 예측하거나 장기적인 추적 관찰에도 활용 가능성이 높다. ◎ AI 기반 QEEG의 고도화…“뇌파는 지금도 진화 중” 뇌파검사는 fMRI, PET, MEG 등 다른 뇌 기능검사와 비교해 여러 장점을 갖는다. 무엇보다 비침습적이며 검사 시간이 약 2분 30초에서 5분 정도로 짧고, 밀리초(ms) 단위의 매우 높은 시간해상도를 제공한다. 방사선 노출이 없고 검사 비용 또한 상대적으로 경제적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다. 다시 말해 간편성, 안전성, 경제성을 모두 갖춘 검사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한계도 분명하다. 공간해상도가 낮아 구조적 병변을 확인하기보다는 뇌의 기능적 이상을 평가하는 데 적합하며, 정확한 검사를 위해서는 여러 개의 전극을 국제 표준 위치에 정확하게 부착해야 하므로 일정 수준 이상의 숙련이 요구된다. 또한 미세한 기능적 변화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데이터 분석 능력도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은 학회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지속적인 훈련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AI 기반 정량화 뇌파 분석 기술의 발전으로 데이터 해석의 정확성과 활용성도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 다음 편에서는 실제 한의 임상에서 정량화 뇌파(QEEG)를 어떻게 판독하고, 틱장애와 ADHD 환자의 진료에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임상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日 일왕가의 절망 치유한 19세기 漢方醫, 현대 통합의료에 질문을 던지다권승원 경희대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교수 지난달 일본 도야마 국제회의장에서 ‘동양의학의 발전-차세대를 향한 새로운 도전’을 주제로 제76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가 성대하게 개최됐다. 필자는 첫날 개회식 직후 메인홀에서 열린 테라사와 카츠토시(寺澤捷年) 도야마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어느 한방의의 위업-아사다 소하쿠와 아키노미야 요시히토 친왕(ある漢方医の偉業~浅田宗伯と明宮嘉仁親王)’이라는 제목의 강연은 에도 말기 최고의 한방의였던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 1815~1894)와 일본 왕실의 특별한 인연을 다뤘다. 그는 고방파(古方派)의 맥을 이은 당대 최고의 한방의이자 에도 막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를 모셨던 막부 최고의 어의였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서양의학을 국가의 공식 의학으로 채택하며 한방을 철저히 배제했던 메이지 정부가 정작 황실의 가장 절박한 순간에는 자신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낸 구 막부 출신 한방의에게 후계자의 생명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궁내청 기록을 토대로 재구성된 이 이야기는 오늘날 통합의료(Integrative Medicine)를 고민하는 우리 의료계에도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진다. ▲테라사와 카츠토시 교수와 그의 저서 『ある漢方医の偉業~浅田宗伯と明宮嘉仁親王』 ◎ 서양의학에 절망한 일왕가…다시 漢方을 찾다 메이지 10년(1877년) 무렵 일본의 의학교육은 독일식 서양의학으로 완전히 재편됐고, 왕실 시의단에서도 한방의는 모두 배제됐다. 하지만 1879년 8월 31일 태어난 요시히토 친왕(훗날 다이쇼 일황)의 치료를 위해 왕실은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고 아사다 소하쿠를 전격 초빙한다. 배경에는 왕실의 깊은 절망이 있었다. 요시히토 친왕 이전에 태어난 네 명의 왕자·왕녀가 모두 왕실 시의단의 진료를 받았음에도 각종 질환으로 요절했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비극 속에서 왕실은 과거 메이지 일왕의 친모를 중증 패혈증에서 구해낸 아사다 소하쿠의 뛰어난 임상 경험을 다시 떠올렸다. 관련 내용은 그의 저서 『귤창서영(橘窓書影)』에도 기록돼 있다. 결국 제도와 이념보다 우선한 것은 생명이었다. 왕실은 가장 소중한 후계자의 치료를 위해 막부의 늙은 어의를 다시 불러들였다. 아사다 소하쿠는 일왕의 명을 받자마자 24시간 진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두 명의 보조 의사를 선발했다. 세계 최초로 전신마취 수술을 성공시킨 하나오카 세이슈 학파에서 외과를 수학한 이마무라 료(今村亮), 그리고 최고위 어의(奧醫師) 출신 오카 코인(岡桐蔭)이었다. 모두 구 막부 출신이었다. 이들은 멸망한 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뛰어난 임상가로서, 전문성과 팀워크를 바탕으로 왕실의 후계자를 살리는 중책을 맡게 된다. ▲(오른쪽 초상화) 아사다 소하쿠(浅田宗伯) 한방의 ◎ 전통의학의 ‘내재적 진화’…위기 속에서 길을 찾다 요시히토 친왕의 치료 과정은 신경학적 응급상황의 연속이었다. 생후 24일째인 1879년 9월 24일, 친왕은 턱과 입술이 굳는 구금(拘禁) 발작을 일으켜 탕약을 복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졌다. 이때 이마무라 료는 신축성 있는 은판으로 만든 곡두관(曲頭管)을 입안으로 삽입해 파두와 행인으로 구성된 응급 처방인 주마탕(走馬湯)을 투여했고, 결국 위기를 넘겼다. 1880년 8월에는 뇌수막염이 재발하면서 대천문이 심하게 팽창하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 방치했다면 두개내압 상승으로 인한 뇌간 압박과 소뇌천막탈출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응급상황이었다. 아사다 소하쿠는 시함탕(柴陷湯)과 쌍자원(雙紫圓)을 투여하는 동시에 대천문(大泉門) 부위에 기포고(起泡膏)를 붙여 체액을 배출하도록 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체표를 이용한 일종의 뇌척수액 배액(Drainage)에 해당하는 발상이었다. 이러한 과감한 처치 끝에 친왕은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치료가 모두 당시 한방의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조선 말 지석영이 종두법의 효과를 확인한 뒤 적극적으로 우두법을 보급했던 사례와도 닮아 있다. 기존 의학의 틀을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적극 받아들이며 스스로 진화해 나갔다는 점에서 두 사례는 ‘전통의학의 내재적 진화(Intrinsic Evolution)’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 약효·독성을 함께 다스린 치료 원칙…시대를 앞선 투약 프로토콜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약물 관리 방식이다. 1879년 11월 5일 친왕의 발작이 악화되자 아사다 소하쿠는 이를 태독(胎毒)으로 진단하고 묘효십일환(妙効十一丸)을 처방했다. 이 약에는 경분(輕粉)과 웅황(雄黃) 등 독성이 강한 성분이 포함돼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약효만큼 독성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복용시키지 않고 5~6일을 한 주기로 복용한 뒤 반드시 휴약기를 두는 방식을 적용했다. 강한 약성을 조절하면서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이러한 접근은 현대 항암치료의 사이클(Cycle) 개념과도 일정 부분 닮아 있다. ◎ 아사다 소하쿠가 남긴 유산…통합의료의 미래를 묻다 서양의학 일변도의 시대적 분위기와 왕실 내부의 깊은 불신 속에서도 아사다 소하쿠는 한의학적 진단에 외과적 술기를 접목하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 초고령사회와 난치성 신경계 질환이라는 새로운 의료 환경 앞에서도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분절된 의료체계를 넘어 각 학문의 강점을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다학제 통합의료는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가. 과거 세 명의 한방의가 기존의 틀을 뛰어넘어 스스로 진화하며 통합적 진료체계를 만들어냈듯 오늘날 우리 역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임상 경로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법과 제도를 앞세워 한의계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러한 ‘내재적 진화’ 자체를 차단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는 일제강점기 한의사를 제도권에서 철저히 배제했던 역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자국에서는 한방의들의 통합적 진료를 통해 황실의 후계자를 지켜낸 경험을 갖고 있었음에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러한 경험을 외면한 채 한의학을 억압하는 정책을 펼쳤다. 역사는 반복되기도 하지만 교훈을 남기기도 한다. 이제 우리 의료는 과거의 이념적 대립을 답습할 것인지, 아니면 환자를 중심으로 학문 간 경계를 허무는 통합의료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역사의 교훈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569)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60년 초 부산에서 醫林社와 慶南鍼灸醫會의 공동 주최로 ‘오늘날의 세계적 침구학’이라는 주제의 학술 좌담회가 열렸다(1960년 간행된 『醫林』 제26호 기사 참조함). 오랜 역사와 탁월한 효능에도 불구하고 법적·사회적으로 외면받는 침구학의 현실을 타개하고 학술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당시 참석자들은 침구학의 과학화와 위상 제고를 위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주요 발언자들의 핵심 의견을 요약해 정리한다. 참고로 부산시가 경상남도 소속에서 1963년부터 분리독립되었으므로 이 시기의 ‘慶南’은 부산시를 포함하는 것이다. ○ 홍순백(慶南鍼灸醫會長): 한의학은 국민 보건에 기여해 왔으나 사회적으로 비하당하고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하고 있음. 우리가 수출한 침구학이 일본을 거쳐 유럽에서 크게 발전하여 역수입되는 현실은 우리 동인들의 공동 책임임. 하루빨리 연구하고 개량하여 한의학을 다시 수출할 수 있도록 전국 동인들이 총궐기해야 함. ○ 우길룡(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겸 부산시한의사회장): 침구학은 난치병을 치료하는 훌륭한 독자적 의학임. 서구에서 발전한 침구학이 역수입되는 현상은 슬픈 일이나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국민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학술 좌담회와 강연회를 자주 개최하여 돌파구를 찾아야 함. ○ 백연욱(小花의원장): 침구학의 발전은 과학적 기반 위에서의 연구와 개량에 달려 있음. 침구학의 사회적 위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시술료의 현실화와 운영상의 변화가 필요함. ○ 고태박(본회 고문): 침구학에 대한 사회적 몰이해로 인재들이 연구에 뜻을 두지 않고 있음. 스스로 연구하고 개량하는 자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함. ○ 송태석(해군군의학교 부교장): 피부 표면의 특정 부위 자극은 체내 분비 호르몬의 균형 작용을 일으키며, 금침과 은침의 효능에는 분명한 과학적 차이가 존재함. 침구의 효능은 이처럼 철저한 과학적 근거와 임상 실적으로 증명될 수 있음. ○ 박천래(경남한의사회 부회장): 침구의 뛰어난 효능을 알면서도 사회적 편견 때문에 침을 놓지 않고 한약 처방만 고집하는 측면이 있음.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개선되어 위상이 새로워질 때 다시 침구술을 펼칠 것임. ○ 배석수(의사): 서양의학에서 난치병으로 분류되는 간경화증을 오직 침구술만으로 완치시킨 실제 임상 사례가 존재함. 침구학은 구체적인 임상 실적을 통해 그 강력한 치료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음. ○ 이재원(오행침구연구소장): 다양한 침구 학리 중에서도 五行鍼灸醫學이 가장 선구적이며 치료 정확성도 가장 높음. ○ 배상국(전 동양의약대학 강사 겸 본회 고문): 침구학에 제기되는 비난을 극복하고 자연과학계의 인정을 받으려면 침구학의 원리를 현대 과학적 체계로 정립하려는 학문적 노력이 시급함. ○ 김영진(부산시한의사회 부회장): 한의사는 침구학을 더욱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 신현수(의림사 총무): 치료 기술만 과신하여 고전 용어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연구와 학술 개량을 통해 한의계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 총궐기해야 함. -
“약재에서 처방까지, 한약 공부의 기준을 세우다”[한의신문]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건국대학교 경영관에서 대한동의방약학회 하계학생학술특강이 열렸다. ‘藥證을 중심으로 처방의 얼개와 사로를 연결하다’라는 주제로 이신형·이승훈·양지연·김휘열 네 분의 강사님께서 고방에서 자주 쓰이는 약물의 특징부터 주요 처방의 계통과 방증까지 이틀에 걸쳐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 한약 공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한약은 한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치료 수단 중 하나다. 그래서 학생 때부터 제대로 공부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정작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는 막막했다. 물론 학교에서 방제학을 배우고 시험도 치른다. 하지만 수업만으로는 실제 임상에서 처방을 선택하는 과정까지 충분히 익히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처방의 구성과 효능을 외워도 막상 “그래서 이 환자에게는 어떤 처방을 써야 하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이마성 부회장님의 소개로 대한동의방약학회를 알게 되었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약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휘열 강사님께서는 약재의 효능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약물이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쓰일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다. 그 과정에서 따로 흩어져 있던 약재와 처방에 대한 지식이 조금씩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자연스럽게 학회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되었고, 학생 특강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 처방에 이르는 네 가지 길 이번 특강에서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대한동의방약학회의 선방 기준이었다. 대한동의방약학회에서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바탕으로 약증·방증·변증·약리라는 네 갈래의 경로를 통해 최종적으로 처방을 선택한다고 설명한다. 중요한 점은 한 환자에게서 이 네 가지 단서가 모두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환자는 특정 약증이 선명하게 잡히고, 어떤 환자는 처방 전체의 방증이 먼저 보인다. 또 어떤 환자는 변증을 통해 접근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리적 관점이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환자마다 처방에 이르는 길이 서로 다른 셈이다. 그렇기에 각 처방의 약증과 방증, 육경병증과 약리를 두루 알아야 한다. 실제 환자를 만나기 전에는 어떤 길이 열릴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번 특강은 이 네 가지 사로(思路) 가운데 약증과 방증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날: 약물을 바라보는 기준을 배우다 첫째 날에는 약증을 중심으로 소화기계와 어혈제, 심폐순환, 체액조절과 스트레스 및 간담도계에 관한 세 개의 약물론 강의가 진행되었다. 세 강의에서 공통적으로 좋았던 점은 약재를 단순히 하나씩 나열하며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먼저 약물을 분류할 수 있는 큰 기준을 세우고, 그 안에 각각의 약재를 배치한 뒤 설명해 주셨다. 이후 각 약재의 작용과 특징을 하나씩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비슷한 약재들이 어떤 점에서 구분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덕분에 세부적인 내용을 배우기 전에 전체적인 방향을 먼저 잡을 수 있어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세 강의를 모두 듣고 나니 약물을 공부하는 기준이 이전보다 조금은 분명해졌다. 그동안에는 약재마다 적혀 있는 수많은 효능을 단순히 외우려고 했다면, 이제는 먼저 환자의 몸에서 어떤 기능이 지나치거나 부족한지를 생각하고, 그에 맞는 약물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하나의 지도 위에 놓이기 시작한 느낌이었다. 둘째 날: 흩어져 있던 처방이 연결되다 둘째 날에는 김휘열 강사님께서 하루 동안 약증과 방증을 바탕으로 처방을 계통적으로 분류하는 강의를 진행하셨다. 강의는 처방들을 계통별로 묶고, 각 계통의 중심이 되는 처방에서 비슷한 처방들이 어떻게 뻗어나가는지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처방의 구성과 약증·방증을 함께 비교하면서, 서로 비슷해 보이는 처방들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도 설명해 주셨다. 방제학 시간에 많은 처방을 배웠지만, 사실 그 처방들은 내 머릿속에서 각각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강사님의 설명을 따라 처방을 계통별로 정리해 보니, 그동안 흩어져 있던 지식들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서로 별다른 관련이 없어 보였던 처방들이 하나의 계통 안에서 연결되고, 중심 처방으로부터 여러 처방이 어떻게 변화하고 확장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강의 중간중간 실제 임상 사례를 계속해서 보여주신 점도 인상 깊었다. 이론으로만 접할 때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약증과 방증이 실제 환자의 모습과 연결되자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다. 각 처방이 실제 임상에서 어떤 환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둘째 날 강의를 듣고 나서는 처방을 개별적으로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관계와 계통 안에서 크게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따로 떨어져 있던 처방들 사이에 하나씩 연결고리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제대로 된 공부의 방향성 잡는 뜻깊은 시간 강의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아 따라가기 벅찬 부분도 있었고, 이틀 동안 배운 많은 내용을 그 자리에서 온전히 소화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강의실을 나서며 남은 것은 막막함이나 부담보다는 앞으로의 공부 방향이었다.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공부해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내가 그 길의 어디쯤에 서 있는지가 이전보다 조금 더 또렷해졌다. 나처럼 한약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학생이라면, 이번과 같은 강의가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귀한 임상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신 네 분의 강사님과 학생들을 위해 뜻깊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대한동의방약학회에 감사드린다. 이번 특강에서 배운 내용을 한 번의 강의로 끝내지 않고, 꾸준히 복습하며 온전히 내 지식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적어도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지는 조금 알게 된 이틀이었다. -
실전 한의 피부미용 치료 임상례김서영 대한통합레이저의학회 교육위원 한의 임상에서 피부미용 치료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색소성 병변뿐 아니라 홍조·모세혈관 확장증·혈관종·화염상모반·정맥 등 혈관성 병변에 대한 레이저 치료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혈관 병변마다 혈관의 깊이, 굵기, 혈류 상태, 산소 포화도가 서로 달라 병변의 특성에 맞는 파장과 조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1. 피부 혈관질환의 분류와 특징 임상에서 흔히 마주치는 피부 혈관 병변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홍조(안면홍조)와 모세혈관확장증이다. 진피 상층의 가느다란 모세혈관들이 확장되어 얼굴 전체 혹은 볼·코 주변에 미만성(diffuse)으로 넓게 퍼져 나타나며, 주사(酒渣, rosacea) 경향이 있거나 피부 장벽이 약한 환자에서 흔히 관찰된다. 둘째, 혈관종(hemangioma)이다. 흔히 ‘앵두혈관종’, ‘체리혈관종’이라고도 한다. 진피 내 모세혈관이 국소적으로 증식·확장되어 생기며 병변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하고 융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셋째, 해면상 혈관종(cavernous hemangioma)이다. 혈관종보다 더 깊고 넓은 진피∼피하층의 혈관강(腔)이 확장되어 형성되며, 병변이 더 두텁고 색조도 자적색에 가깝게 짙은 경우가 많다. 넷째, 화염상모반(port-wine stain)이다. 선천성 모세혈관 기형으로, 진피 내 모세혈관이 넓은 범위에 걸쳐 확장되어 있으며 평생 지속·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치료 반응이 더디고 반복 치료가 필요한 것이 특징이다. 다섯째, 정맥 병변(venous lesion)이다. 산소포화도가 낮은 정맥혈을 담고 있어 푸르스름하게 비쳐 보이며, 진피보다 깊은 피하지방층에 가깝다. 2. 진단과 치료 계획 수립 치료 전 진단에서 중요하게 확인하는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병변의 색조: 선홍색(동맥혈 위주, 표재성), 자적색∼암적색(정체된 혈류, 좀 더 깊은 병변), 푸르스름한 색(정맥혈, 심부 병변)을 구분한다. 2) 압박 시 퇴색 여부(diascopy): 눌렀을 때 병변이 완전히 퇴색되는지, 부분적으로만 옅어지는지를 통해 혈관의 개방성과 대략적인 깊이를 가늠한다. 3) 병변의 범위: 미만성인지, 국소적으로 경계가 뚜렷한지 구분하여 모드를 결정한다. 4) 기존 시술 이력: 필링, 박피, CO2 레이저 등 다른 시술을 받은 뒤 신생 혈관이 생긴 것인지, 처음부터 있던 병변인지 확인한다. 반흔 치유 과정에서 신생 혈관이 증식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아, 반흔 치료와 혈관 치료를 함께 계획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 간격의 경우 홍조와 모세혈관확장증은 4주 내외 간격으로 스퀘어 모드 토닝을 반복하며, 미만성인 만큼 일시에 무리하게 출력을 올리기보다 누적 효과를 노리는 것이 안전하다. 혈관종과 해면상 혈관종은 서클 모드로 2∼3주 간격, 1∼3회 정도의 짧은 치료로도 육안상 변화가 뚜렷한 경우가 많다. 화염상모반은 병변이 두텁고 범위가 넓어 회복 기간을 넉넉히 두고 3개월 이상 완만하게 접근하는 것이 안전하다. 정맥은 표재 병변보다 조직 손상 회복에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어 짧은 간격으로 자주 조사하기보다 2주 간격으로 소수 회차만 시행하고 경과를 지켜본다. 시술 후 일시적인 자반이나 붓기, 병변 부위의 일과성 암적색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해야 한다. 특히 서클 모드 시술 후 혈관 내 응고로 인해 병변이 일시적으로 더 진해 보일 수 있는데, 이를 악화로 오인하지 않도록 사전 설명이 중요하다. 자외선 차단과 보습을 철저히 하도록 안내하고, 색소침착 위험이 있는 환자에게는 미백 관리를 병행하도록 한다. 아래는 실제 치료 사례들이다. 사례 1. 홍조(치료 2개월) 눈가와 뺨 주변에 붉은 실핏줄이 퍼져 있고, 점상 출혈처럼 보이는 작은 붉은 반점들이 동반되었다. 육안 관찰과 퇴색 검사를 통해 병변이 진피 상층의 미세혈관 확장에서 비롯된 표재성 병변임을 확인하고, 아드바 TX 스퀘어 모드 토닝만으로 치료를 진행했다. 3주 간격으로 내원하도록 하여 총 2개월에 걸쳐 치료하였으며, 초기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이다가도 2∼3회차를 넘어가면서 붉은기가 눈에 띄게 옅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시술 후 일시적인 홍반 외에 특별한 다운타임은 없었으며, 자외선 차단과 보습을 병행하도록 안내했다. 사례 2. 비후성 반흔(추적 관찰 2개월) 입술 주변에 이전 시술 혹은 외상으로 인한 비후성 반흔이 있던 환자로, CO2 레이저로 반흔 조직을 절제하는 처치를 먼저 시행한 사례다. 절제 후 반흔 부위에 붉은색의 신생 혈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아드바 TX로 반흔 부위의 신생 혈관을 추가로 제거하였다. 2개월간의 추적 관찰 결과 반흔 부위의 융기와 발적이 함께 개선되었다. 반흔 치료 환자에서는 절제 이후 신생 혈관의 발생 여부를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필요 시 조기에 혈관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최종 색조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례 3. 정맥(2주 간격 2회 치료) 뺨 부위의 푸르스름한 정맥성 병변이 있던 환자다. 심부 혈관 병변이므로 엘레멘탈 TL 1064nm(Nd:YAG)를 선택했다. 2주 간격으로 2회 치료 후 병변의 푸른 색조가 눈에 띄게 옅어졌는데, 이는 병변의 깊이에 맞는 파장을 선택하면 적은 회차에서도 빠른 치료 반응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치료 후에는 일시적으로 병변 부위의 경결감이 있거나 멍처럼 보일 수 있음을 설명하고, 압박이나 마사지를 삼가도록 안내했다. 사례 4. 혈관종(1∼3회 조사) 눈가의 작은 혈관종을 더모스코피(피부현미경)로 확대 촬영한 사례다. 더모스코피상 병변의 경계와 색조가 뚜렷하게 확인되며, 조사 전에는 선홍색으로 도드라져 있던 병변이 1∼3회의 서클 모드 조사만으로 갈색조로 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색조 변화는 혈관 내 응고가 일어나면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반응으로, 이후 갈색조도 점차 소실되는 경과를 밟는다. 혈관종은 국소 부위에 정확히 에너지가 전달되면 적은 횟수의 치료로도 빠른 반응을 얻을 수 있어, 환자에게 즉각적인 치료 효과를 보여주기에도 유용하다. 다만 응고 직후의 색조 변화를 부작용으로 오인하지 않도록, 시술 전 충분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혈관 병변의 레이저 치료는 병변의 깊이와 혈류 특성을 정확히 평가하고, 이에 맞는 파장과 조사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달려 있다. 향후에도 다양한 혈관 질환 사례를 축적하여 병변의 깊이와 색조에 따른 맞춤형 치료 프로토콜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킬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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