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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의 성장은 腸에서 시작된다…‘膽’의 새로운 해석윤지연 원장(장충한의원 원장·동서비교한의학회 학술이사) [한의신문] 최근 면역학에서 주목받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공통점막면역계(Common Mucosal Immune System, CMIS)’다. 과거에는 장·호흡기·비뇨생식기·침샘·눈물샘 등의 점막이 각각 독립적으로 면역반응을 수행한다고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이들이 하나의 통합된 면역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몸 곳곳에 흩어진 점막이 서로 면역 정보를 공유하며 하나의 방어체계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점막면역 네트워크에서 장간막림프절(Mesenteric Lymph Node, MLN)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장에서 유입된 항원을 분석하고 면역세포를 활성화·교육한 뒤 이들의 이동 방향을 결정하는 면역 조절의 핵심 거점이다. ◆ 면역세포의 목적지를 정하는 장간막림프절 소장의 파이어판(Peyer's patch)에서는 M세포(microfold cell)가 장내 항원과 미생물을 포획해 점막 아래의 수지상세포(dendritic cell)에 전달한다. 항원을 넘겨받은 수지상세포는 CCR7 발현을 증가시키고 구심성 림프관을 따라 장간막림프절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항원을 경험하지 않은 순진(naive) T세포와 B세포가 처음으로 항원을 인식하면서 항원 특이적 면역반응이 시작된다. 장간막림프절의 역할은 항원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수지상세포와 기질세포가 비타민 A 대사산물인 레티노산(retinoic acid)을 생성해 활성화된 림프구에 특정 점막으로 이동하도록 하는 ‘조직 특이적 귀소 프로그램(tissue-specific homing program)’을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인테그린 α4β7과 케모카인 수용체 CCR9·CCR10 등의 발현이 증가하고, 이들은 혈관 내피의 MAdCAM-1과 CCL25·CCL28 등의 신호를 따라 림프구가 필요한 조직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장간막림프절이 면역세포의 목적지를 정하는 일종의 ‘면역 내비게이션 센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장에서 시작해 온몸으로…IgA가 만드는 점막 방어선 교육을 마친 림프구는 수출림프관과 흉관을 거쳐 혈액순환에 합류한 뒤 각 점막 조직으로 이동한다. 특히 장에서 활성화된 림프구 가운데 일부는 장뿐만 아니라 호흡기·비뇨생식기·유선·침샘·눈물샘 등 다른 점막 조직에도 자리 잡아 면역반응에 관여한다. 한 점막에서 시작된 면역반응이 다른 점막과 연계될 수 있는 공통점막면역계의 기본 원리다. 특히 B세포는 파이어판과 장간막림프절 등에서 TGF-β·IL-10·레티노산 등의 영향을 받아 IgA를 생성하는 방향으로 동종형 전환(class-switch recombination)을 거친다. 이후 IgA 생성 형질세포가 여러 점막 조직으로 이동하고, 만들어진 IgA는 상피세포의 폴리머면역글로불린수용체(pIgR)를 통해 분비형 IgA(secretory IgA)로 점막 표면에 방출된다. 분비형 IgA는 병원체가 점막에 부착하는 것을 막고 독소를 중화하는 한편, 공생미생물과의 균형 유지에도 관여하는 점막면역의 핵심 방어수단이다. 이러한 점막 간 연계는 장의 면역환경 변화가 다른 점막의 면역반응과 연결될 수 있는 생물학적 기반을 제공한다. 또한 경구백신처럼 특정 점막을 통해 유도한 면역반응이 다른 점막 부위의 면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반대로 장내미생물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장 장벽이 손상되면 점막면역의 항상성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영향은 장-폐 축(gut-lung axis), 장-뇌 축(gut-brain axis), 장과 비뇨생식계 간 상호작용 등 원거리 장기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으며, 알레르기·자가면역질환·만성 호흡기질환 등 다양한 질환과의 연관성도 연구되고 있다. ◆ 장-간-면역-뇌 축, 그리고 한의학의 담(膽) 최근 시스템 생물학은 이러한 현상을 개별 분자의 작용보다 ‘생체 네트워크의 항상성’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다. 하나의 신호전달 경로만으로 질병을 설명하기보다 여러 장기와 세포가 주고받는 정보의 균형 속에서 건강과 질병을 이해하려는 접근이다. 이러한 시각은 장-간 축을 넘어 장·간·면역·뇌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합적으로 살피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담즙산 역시 이들 장기와 대사·면역 신호를 연결하는 주요 매개체로 주목받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담즙산 연구는 한의학에도 새로운 화두를 던진다. 한의학에서 담(膽)의 ‘결단(決斷)’은 정신적 작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간(肝)의 소설(疏泄)을 비롯한 장부 간 기능적 관계 속에서 담의 역할을 이해해 왔으며, 이는 장부를 서로 분리된 기관이 아닌 상호 연계된 기능체계로 바라보는 한의학적 관점과 연결된다. 최근 현대의학에서도 장-간 축(Gut-Liver Axis), 장-폐 축(Gut-Lung Axis), 장-뇌 축(Gut-Brain Axis), 공통점막면역계 등 장기 간 상호작용을 중심으로 인체의 항상성을 설명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이를 한의학의 장부 이론과 동일시할 수는 없지만, 인체를 유기적 시스템으로 이해하려는 현대 생명과학의 흐름과 한의학의 통합적 생명관 사이에서 의미 있는 학문적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 결국 담즙산 연구는 하나의 대사물질을 규명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장과 간, 면역계와 내분비계, 장내미생물을 연결하는 생명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성장 역시 성장판이나 성장호르몬이라는 단일 요소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소화·대사·면역·내분비와 장기 간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성장의 환경’을 함께 살펴야 한다. 환원주의를 넘어 통합적 관점에서 성장과 건강을 다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학생에서 한의사로 다시 찾은 KOMSTA[한의신문] 콤스타((사)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 제186차 봉사단은 한의사 5명과 학생 단원 8명, 총 13명으로 구성되어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미타팝 병원 등에서 4일간 진료를 진행했다. 3년 전 학생 단원으로 해외 봉사에 처음 참여했던 인연을 시작으로 한의사가 된 이후에도 해외 봉사를 꿈꿔왔고, 이번 라오스 파견을 통해 그 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 첫날부터 대기실을 가득 채운 환자들 작년에 이어 이번에는 라오스의 라디오 방송으로도 홍보가 되었고, 봉사 기간 중 현지 공영 방송에도 방영될 만큼 콤스타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대기 환자가 병원 앞을 가득 메웠고, 먼 지방에서 몇 시간씩 이동해 온 환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 모습을 마주하며 멀리서 찾아온 환자 한 분 한 분을 소홀함 없이 진료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섰다. 재진증을 나눠줄 수 없는 진료 여건이었음에도 많은 환자들이 매번 초진으로 등록하며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 모습에서 라오스의 열악한 의료 접근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의 진료가 환자에게는 일 년 중 유일한 치료 기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무게를 실감하고 나니 예진 차트에 적힌 경미한 증상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몸은 고단해도 마음은 채워지던 진료 현장 국내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환자 수로 체력은 빠르게 소진됐지만, 진료를 마칠 때마다 환자들이 맑은 눈빛과 미소로 건네는 감사 인사가 그 이상의 충만함으로 돌아왔다. 학생 단원 시절에는 접수와 안내, 진료 보조, 약재 제공 등 지원 업무에 집중하느라 환자를 가까이서 대할 여유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의사로서 환자의 증상을 직접 듣고 촉진하며 라오스 환자들의 때묻지 않은 선한 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짧은 임상 경력으로 해외 봉사 진료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봉사는 임상 실력을 떠나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단장님의 말씀에 용기를 얻어 일정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졸업 후 학생 시절 함께 해외 봉사를 다녔던 원장님 밑에서 첫 진료를 시작하며 임상 실력을 쌓았기에, 이번 라오스 봉사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때 원장님들은 바쁜 진료 중에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 애쓰셨는데, 이번에 나 역시 한국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질환의 환자가 오면 진료 보조 학생과 함께 살펴보고 설명해주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콤스타의 선한 영향력이 이렇게 세대를 거쳐, 국경을 넘어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음을 몸소 확인한 순간이었다.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콤스타의 마음 이번 봉사는 현지 환자들과 의료진에게 한의학에 대한 신뢰를 쌓는 계기였고, 개인적으로는 학생 단원에서 한의사로 성장한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준비해 온 차트를 모두 써서 두 번이나 복사를 할 만큼 예상을 웃도는 환자분들을 진료할 수 있었던 건, 모든 단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준 덕분이었다. 함께 봉사해 준 단원들에게 깊이 감사하며, 좋은 사람들과 뜻깊은 봉사를 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준비해 주신 단장님과 사무국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앞으로도 이 소중한 인연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 표준진료의 근거를 세우다이승훈 경희대학교 교수 <편집자주> 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단장 이준혁)은 지속적으로 다양한 질환에 대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을 발간하고 있으며, 각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의 전자파일 및 홍보용 리플릿, 인포그래픽 이미지 파일 등을 국가한의임상정보포털사이트(www.nikom.or.kr/nckm)를 통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에 본란에서는 각 지침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에 참여했던 연구원들의 기고문을 소개하고자 하며, 이번 주 소개작은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에 참여한 이승훈 경희대학교 교수의 기고이다. 한국한의약진흥원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단의 지원으로 개발된 ‘대상포진·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이 발간됐다. 본 지침은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 진료 과정에서 한의사가 마주하는 다양한 임상 의사결정에 대해 근거기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개발된 진료 가이드라인이다.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 매뉴얼을 준용했으며, 국내외 문헌 고찰, 임상 현황 조사, 전문가 검토, GRADE 방법론을 통한 근거수준 및 권고등급 평가, 유관 학회 검토와 인증 절차를 거쳐 최종발간됐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로 발생하는 질환으로, 피부 분절을 따라 나타나는 일측성 수포성 발진과 심한 신경병성 통증을 특징으로 한다. 2023년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대상포진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연간 약 75만 명에 이르며, 이 중 10~18%는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고된다. 대상포진후신경통은 발진이 호전된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으로, 수면장애, 우울, 불안, 피로,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할 수 있어 조기 평가와 체계적 관리가 중요하다. 기존 대상포진 진료는 항바이러스제, 진통제, 스테로이드제 등 의과 치료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특히 발진 후 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제 투여는 급성 대상포진의 표준적 치료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임상에서는 급성기 통증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거나, 피부 병변이 호전된 뒤에도 통증이 지속되는 환자들이 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급성기 증상 완화, 대상포진후신경통 이환율 감소, 만성 통증 관리, 수면 및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한의 치료의 표준화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이에 본 연구진은 2024년 5월 전국 한의사 1122명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한의 진료 현황을 조사했다. 응답자 중 934명, 즉 83.3%가 최근 1년 이내 대상포진 또는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환자의 내원시기는 급성 대상포진 단계와 대상포진후신경통 단계로 비교적 고르게 분포했다. 또한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 환자 진료 경험이 있는 한의사 중 725명, 77.6%는 환자가 이미 항바이러스제, 진통제, 스테로이드제 등 의과 치료를 받은 뒤 한의의료기관에 내원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대상포진 진료에서 한의 단독치료뿐 아니라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하는 한양방 복합치료 전략이 실제 임상에서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지침은 대상포진과 대상포진후신경통을 구분하여 총 32개의 권고안을 제시했다. 대상포진 영역에서는 침, 전침, 화침, 뜸, 자락관법, 한약 등 한의 단독치료와 침·뜸, 침·한약 등 한의 복합치료, 그리고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하는 한양방 복합치료에 대한 권고를 포함했다. 대상포진후신경통 영역에서도 침, 전침, 화침, 뜸, 자락관법, 한약 및 이들의 복합치료와 의과 치료 병행 요법에 대한 권고를 제시했다. 특히 대상포진의 경우 통상적 의과 치료와 병행한 침 치료, 전침 치료, 한약 치료 등이 주요 치료 선택지로 제시됐으며, 대상포진후신경통에서는 만성 신경병성 통증완화와 삶의 질 개선을 목표로 한 다양한 한의 치료 전략을 정리했다. 진료 알고리즘 역시 실제 임상 활용성을 고려해서 구성했다. 대상포진 의심 환자가 내원하면 병력 청취와 신체 진찰을 통해 전형적 임상 증상 여부를 확인하고, 단순포진, 접촉피부염, 늑간신경통, 삼차신경통, 협심증, 담낭염, 신석증, 척수압박 등 감별이 필요한 질환을 고려하도록 했다. 또한 뇌염, 척수염, 중추신경계 혈관염, 눈대상포진 등 고위험 합병증이 의심되거나 비전형 발진이 관찰되는 경우에는 추가 평가를 위해 의과 협진 또는 전원을 고려하도록 명시했다. 통증 평가는 VAS, NRS 등을 활용하고, 수면, 불안·우울, 피로, 삶의 질 등 동반 증상 평가도 함께 고려하도록 했다. 본 지침의 의의는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에 대한 한의 치료를 단순한 경험적 치료가 아니라, 문헌 근거와 임상 현황, 전문가 합의를 바탕으로 표준화했다는 데 있다. 임상 현장에서는 환자의 발병 시점, 피부 병변 상태, 통증 강도, 의과 치료 여부, 고위험 합병증 가능성, 만성 통증으로의 이행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지침을 활용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한의사는 대상포진 급성기부터 대상포진후신경통으로 이어지는 만성 통증 단계까지 보다 일관된 진료 경로를 적용할 수 있으며, 환자는 안전성과 유효성을 고려한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대상포진 및 대상포진후신경통은 고령화와 함께 임상적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질환으로, 특히 통증과 삶의 질 저하가 큰 문제로 남는 만큼, 이번 지침이 한의 임상 현장에서 근거 기반 진료를 확산시키고, 의과치료와의 합리적 병행을 통해 환자 중심의 통합적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길 기대한다. -
“마약류 예방·재활에 한의계 전문성 더해 나가겠다”[편집자주] 마약류 문제를 둘러싼 의료적·학술적 연구와 전문인력간 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의사와 관련 전문인력이 참여하는 학술 플랫폼 ‘대한마약의학회’가 공식 출범됐다. 본란에서는 김지영 회장과 전영수 부회장, 김승주 법제이사로부터 학회 창립 계기와 함께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Q. 초대 회장을 맡은 소감 및 학회 창립을 추진하게 된 이유는? 김지영 회장“최근 몇 년 사이 마약류 범죄와 중독의 연령층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 마약 중독은 단순히 개인의 일탈을 넘어 사회적 재난이며, 치료와 회복을 위해 이용가능한 모든 의학적 자원을 동원해야 하는 영역이다. 한의계에서도 사회적 책무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학술적 연구와 전문가들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 대한마약의학회 창립을 추진하게 됐다. 중독 관련 임상 및 관련 활동을 하고 계신 원장님들과 모임을 갖고 지속적으로 교류해 나갈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현재의 목표다.” Q. 마약류 문제 해결에 있어 한의사가 참여해야 하는 이유 및 담당해야 할 부분은? 김승주 법제이사“마약류 문제는 치료·재활·사회복귀까지 여러 전문인력의 협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한의계는 지역사회 의료현장에서 국민과 지속적으로 접촉할 뿐 아니라, 한방신경정신과를 비롯해 중독과 금단, 불안·수면장애·통증 등 회복과정의 정신·신체 증상을 함께 다루는 전문성과 임상경험을 갖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예방교육과 위험군 조기발견, 치료·재활, 전문기관 연계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며, 앞으로 관련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데이터 축적을 통해 국가 마약류 예방·치료·재활체계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한의사가 마약류 문제 해결에 참여한다라는 것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전영수 부회장“이미 많은 한의사 회원들이 마약류 예방교육, 재활상담, 중독치료는 물론 마약류를 활용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대한마약의학회가 구심점이 되어 조직화하고 기록함으로써 학술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전문적인 교육체계를 갖추는 것도 병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간다면 한의계도 국민건강을 위해 마약류와 중독 문제를 책임감 있게 다루는 의료 주체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최근 의료용 대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김승주 법제이사“의료용 대마는 특정 직역의 문제가 아니라 효과와 안전성, 전문교육을 기준으로 어떤 의료인이 적절하게 활용할 것인가를 설계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한의사는 현행법상 마약류취급의료업자에 포함돼 있으며, 통증과 신경정신질환 등 의료용 대마와 접점이 큰 진료영역도 담당하고 있다. 앞으로 한의계도 관련 연구와 전문인력 양성, 안전관리 체계를 갖추고 의료용 대마의 임상 활용과 제도화 과정에 전문성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갈 예정이다.” Q. 마약 문제는 치료는 물론 재활과 사회복귀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지역사회에서 한의사의 구체적인 역할은? 김승주 법제이사“한의사는 지역사회에서 환자와 지속적으로 접촉하는 의료인으로서, 마약류 위험군의 조기발견과 예방 교육, 전문기관 연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한방신경정신과를 비롯한 전문 진료영역을 바탕으로 금단과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안·수면장애·통증·피로 등 정신·신체 증상을 치료하고 재활을 지원할 수 있다. 이러한 역할을 다른 의료·복지 인력과 연계해, 치료 이후의 일상복귀와 사회복귀까지 이어지는 지역사회 회복체계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Q. 올해 진행될 구체적인 사업계획은 무엇인지? 전영수 부회장“올해는 무엇보다 학회의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데 집중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구성원들이 각자의 전문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세 개의 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예방·재활위원회’는 마약류 예방교육 표준 교안 제작 및 교의사업과 연계한 마약류 예방교육 확대를, ‘마약류안전관리위원회’는 한의사 회원을 대상으로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 의약품에 대한 교육체계를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이와 함께 ‘특수의약품연구위원회’는 대마에 대한 학술적 기초 마련과 관련 정책 이슈 모니터링 등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올해는 의료용 대마를 둘러싼 제도적 변화가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학술적·정책적 논의를 바탕으로 중앙회와 협조하여 의미 있는 흐름을 만들고 싶은 바람이다.” -
국경의 난민 클리닉에 뿌리내린 침구의학정예영(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한의무석사과정 2학년) [한의신문] 지난 8월10일 태국 매 솟(Mae Sot)의 매타오 클리닉(Mae Tao Clinic·MTC)에서 제3회 침의 날(Acupuncture Day) 행사가 개최됐다. '알코올 중독 치료와 예방에서 침구의학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이번 워크숍에는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오유나 교수와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가 연자로 나섰고, 메딕 (medic·클리닉이 자체 양성한 현지 의료 인력)과 간호사 등 매타오 클리닉 의료진이 참여했다. 난민 진료의 최전선에 선 클리닉에서 침구의학의 성과와 역할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국경의 의료 사각지대, 매타오 클리닉 매 솟은 방콕에서 서북쪽으로 약500km 떨어진 태국-미얀마 국경 도시다. 공항에서 차로5분이면 미얀마 국경에 닿는다. 이곳은 오랜 내전과 정치적 혼란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난민과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모여 산다. 상당수는 합법적 신분증 없이 살아가기에 병원을 오가는 도중 신분증 검사에 걸리면 체포되어 미얀마로 추방될 수 있다. 아픈 몸을 돌보는 일 자체가 추방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 의료 사각지대를 37년째 지켜온 곳이 매타오 클리닉이다. 1988년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을 피해 국경을 넘은 카렌족 여성 의사 신시아 마웅(Cynthia Maung) 박사가 1989년 주택 한 귀퉁이에서 진료를 시작한 것이 출발이었다. 현재 의료진과 교직원 500여 명이 일하며 하루 평균 200~300명의 환자를 무료로 진료한다. 특히 이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출생증명이 발급되는데,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는 이주민들에게 이 문서는 훗날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삶의 근간이 된다. 난민들과 18년을 함께 한 침구과 매타오 클리닉의 침구과는2009년 독일인 의사 울리(Uli) 박사가 개설했고, 2015년부터는 한국의 박강호 과장이 합류해 현지 의료 인력을 교육해 왔다. 처음에는 클리닉 내부에서도 "저 부서가 계속 있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 시선이 있었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효과였다. 클리닉 스태프들을 치료하며 효과를 보여주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침구과는 통합 진료 파트로 자리 잡았다. 성장세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침구과는 매일 17~18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연간 진료 건수는2024년 2,835건에서 2025년 3,252건으로 약 15% 증가했다. 훈련받은 인력들이 난민촌과 미얀마 소수민족 지역에 클리닉을 열고 활동하는 단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2025년부터는 모든 치료 내역을 'acupuncture logbook'에 기록하고 이를 컴퓨터로 옮겨 전산화하고 있다. 이 기록은 침구과의 성장을 수치로 증명하는 근거이자, 기록이 부족한 영역을 짚어 다음 교육의 방향을 정하는 임상 기반이 되고 있었다. Acupuncture Day, 알코올 중독을 말하다 이번 워크숍 주제가 알코올 중독이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국경 지역 공동체에서 술은 유흥보다 고통을 견디는 수단에 가깝다. 고된 저임금 노동에 지친 몸과 미얀마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이 불면으로 이어지고, 잠들기 위해 마시는 술이 중독으로 굳어지는 경우가 많다. 중독은 다시 가정과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오유나 교수는 "WHO 통계에 따르면 연간 약260만 명이 알코올 관련 원인으로 사망하지만, 알코올 중독 환자 중 치료를 받는 비율은 극히 일부에 그친다"며 "이러한 치료 격차는 매 솟처럼 보건의료 수준이 낙후된 지역에서 더욱 크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NADA 이침 프로토콜과 신문혈(HT7)·축빈혈(KI9) 등 알코올 중독과 금단증상 완화에 대해 연구되어 온 혈위를 소개하며 "침구치료는 자원이 제한된 환경에서 표준 치료를 보완할 수 있는 저비용의 안전한 선택지"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의 음주 문화 변화와 국가 정책 그리고 20대 여성의 음주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최근 경향도 함께 소개해 현지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WHO 전통보완통합의학 전략자문위원 이명수 교수는 온라인으로 참여해 WHO가 침 치료를 어떻게 정의하고 그 효과성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나아가 전통의학을 각국 보건의료체계에 통합하기 위해 어떤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를 소개했다. 매타오 클리닉 침구과의 진료가 국제 보건의 언어로는 어떻게 설명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신뢰가 연 다음 무대, 응급실 침구과가 10년간 쌓아온 신뢰는 새로 문을 연 응급실로 이어졌다. 이튿날인 11일 오전, 오유나 교수는 응급실에서 현지 의료진을 대상으로 '급성 통증 관리를 위한 침구의학'을 주제로 강의했다. 침 진통의 기전과 급성 요통·발목 염좌·복통에 대한 임상 근거, 질환별 상용 혈위를 소개하되, 위험 신호(red flag)를 감별해 필요한 경우 즉시 의뢰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장 분명하게 강조했다. 강의 후에는 응급 현장에서의 이침 활용과 자락요법 등 실제 적용 가능성을 두고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써보니 좋더라"는 경험담을 넘어 근거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공유된 자리였다. 한의학의 역할과 가능성 매타오 클리닉에서 침구과는 인도주의적 상황(분쟁·재난·난민 위기 등)에서 한의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나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이 경험은 우리 한의계에 세 가지를 남긴다. 첫째, 국제 협력의 출발점은 '무엇을 전할 것인가'보다 '현지 실정에 무엇이 맞는가'를 묻는 일이어야 한다. 둘째, 일회성 진료보다 현지 인력이 스스로 운용할 수 있는 교육 체계를 남겨야 한다. 셋째, 축적된 진료 기록을 분석 가능한 자료로 다듬어 인도주의적 상황에서의 침 치료 근거를 수립하고, 이를 비슷한 처지의 다른 현장과 공유하는 협력이 필요하다. 한의학은 국경의 진료소에서 이미 기여하고 있었다. 앞으로의 교류가 행사를 넘어 현지 교육과 공동 연구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본문의 수치와 기관 연혁은 매타오 클리닉 공개자료와 현지 관계자의 설명, 연자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다정한 마음을 나누다[한의신문] 한의사 6명과 일반단원 11명으로 구성된 제185차 WFK-LCK 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은 지난 8월 20일부터 27일까지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의료봉사를 수행했다. 4일간의 진료 기간 동안 총 863명(1일 차 114명, 2일 차 219명, 3일 차 311명, 4일 차 219명)의 현지 주민들이 한의학 진료를 받았으며, 진료를 넘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을 보냈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로의 이동 7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타슈켄트의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였다. 현지 교육을 통해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한인들의 역사와 과거 이곳에서 한의학 무료 진료소가 운영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또한 현지에서 한의학 관련 강의와 실습이 이루어지고 있어 여러 나라의 학생들이 배우러 온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후 봉사에 필요한 용품을 챙겨, 식사를 마친 뒤 기차를 타고 사마르칸트로 이동했다. 팀장님의 지도 아래, 개인 짐과 봉사용품 박스를 기차에 싣고 옮기는 과정이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정신없는 순간이었지만 서로를 도우며 봉사 시작 전부터 단원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고, 현지인들의 도움도 받으며 그들의 따뜻한 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진료 중 마주한 우즈베키스탄 환자들 운이 좋게도 이번 봉사에서 안내부터 예진, 진료 보조까지 다양한 역할을 경험할 수 있었다. 안내를 하며 짧은 현지어를 배웠고, 예진을 하며 생각보다 고혈압과 두통을 호소하거나 담낭이나 신장에 염증 또는 결석이 있는 환자분들이 많다고 느꼈다. 나중에 송 교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름진 양고기와 소고기, 탄수화물 위주의 식생활과 석회질이 포함된 물 등의 생활환경이 이러한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또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Hijama’라는 습식 부항과 유사한 전통 치료법이 있어, 현지인들이 습식 부항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점도 알게 되었다. 현장에서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선생님들의 설명을 들으며, 현지의 의료환경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봉사를 통해 주고받은 진심 안내를 하던 중 병원의 간호사분이 번역기 화면을 보여주며 “힘들지 않나요? 다들 행복해 보여요.”라고 물으신 순간이 기억에 남는다. 그 말을 보고 주위를 둘러보니,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도 웃으며 환대하는 단원들, 낯선 의학 용어를 찾아가며 애써주시는 통역사분들, 그리고 진료에 진심을 다하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당시에 ‘힘들 때도 있지만, 함께하는 사람들과 기뻐하는 환자분들의 모습에 뿌듯하고 행복한 마음이 더 크다’라고 답했는데, 그 순간 우리와 현지분들 사이에 진심이 통한 듯해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진 덕분인지, 환자분들은 매 순간 “라흐맛(Rahmat)”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어떤 분들은 포도와 초콜릿을 나누어 주시기도 했고, 마지막 날에는 “내년에도 오느냐”, “매년 오느냐”고 물어보시기도 했다. 언어는 달랐지만 현지분들과 서로의 마음이 통했던 이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봉사를 마치며 생애 첫 해외 의료봉사를 통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서로의 감정과 마음을 나누는 나눔의 가치를 실감했다. 졸업을 앞두고 어떤 한의사가 되어야 할지 고민했는데, 이번 봉사를 통해 나눔의 가치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한의사가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끝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애써주신 김상균 팀장님과 쉴 틈 없이 모두를 챙겨주신 권수연 대리님께 감사드린다. 봉사 내내 다양한 현지식을 경험하도록 힘써준 서은해 언니와 모히라, 진료 전후로 다양한 질문에 답해주시고 단원들의 장난도 잘 받아주신 송영일 교수님과 윤희영, 권남규, 김태규, 설승민, 정광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현지에서 봉사가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신 통역사분들과 병원 관계자분들, 그리고 봉사 기간 동안 서로 돕고 챙겨준 모든 단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다정한 분들과 함께하며 좋은 태도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이번 봉사에서 함께했던 모든 분들에게 앞으로도 다정하고 따뜻한 순간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
낯선 땅 사마르칸트에 남기고 온 한의학의 온기[한의신문]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1993년 설립 이후 정부의 지원과 대상국 정식 의료 허가를 받아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지속적인 의료봉사 및 질병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단체이다. 이번 제185차 WFK-LKC KOMSTA 봉사단은 17명(한의사6명, 일반단원 11명)으로 구성되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봉사활동을 수행했다. 4일동안 약900여 명의 환자들이 진료소를 방문했으며, 침, 부항, 추나, 한약 등 다양한 한의약 의료 서비스를 제공했다. 일반 단원들은 접수 및 안내, 예진, 진료보조, 약재 제공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실크로드의 영광 이면에 가려진 의료 소외의 민낯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는 수도인 타슈켄트에서 2시간 가량 고속열차(아프로시욥)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지방 도시이다.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도시지만, 화려한 도심을 벗어난 외곽 지역의 의료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었다. 우리가 진료소로 삼은 사마르칸트 국립의대 진료소는 지역 내에서 나름의 구실을 하는 곳이었음에도, 주민들이 양질의1차 의료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받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진료가 시작되자 이른 아침부터 낡은 미니버스를 몇 시간씩 타고 온 환자들, 땡볕 아래 먼지 나는 흙길을 걸어 찾아온 분들로 대기열이 끝없이 이어졌다.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그들을 보며, 이 멀고 낯선 땅에 우리가 와야만 했던 이유가 선명해졌다. 낯선 땅에서 닿은 한의학 진료소는 오랜 노동으로 심각한 근골격계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로 가득했다. 평생 제대로 된 통증 관리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만성 질환을 묵묵히 안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굽은 등과 굳은 손마디는 유독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특히 티 없이 밝고 쾌활한 소아 환자들을 마주할 때면 역설적으로 마음이 더욱 무거워졌다. 제때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뚜렷한 발달 지연과 신체 불균형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낯선 이방인의 손길에 기꺼이 몸을 맡겨준 환자들의 모습은 도리어 큰 위로가 되었다. 한의학 진료를 통해 조금이나마 통증을 덜어내며 환하게 웃어 보이던 그들을 보며, 질병을 넘어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진정한 치유의 의미와 깊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마르칸트가 남긴 유대감, 그리고 진료실 밖의 책임감 이번 사마르칸트 진료소에서의 경험은 내가 선택한 한의학이라는 길에 굳건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선배 한의사분들이 정성 어린 치료로 환자들의 굳은 몸과 마음을 풀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며, 책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의술의 참된 무게를 깨달았다. 의료란 단순히 아픈 곳을 낫게 하는 물리적 행위가 아니라, 신뢰를 쌓고 삶의 희망을 되찾아주는 위대한 과정임을 배웠다. 낯선 문화 속에서 현지인들과 나누었던 깊은 유대감을 자양분 삼아, 지속적인 나눔을 실천하며 의료인이 지녀야 할 무거운 책임감을 잊지 않고 나아가겠다. -
다른 언어와 같은 마음, 한의학이 걷고 있는 길[한의신문]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해외 취약계층을 위한 한의약 의료봉사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번 185차 WFK-LKC KOMSTA 봉사단은 17명(한의사 7명, 학생단원 10명)으로 구성되어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도 빛났던 한방의료의 순간 4일 간의 봉사 중 첫 하루는 많지 않은 환자들로 시작했다. 그러나 청결한 환경에서 진행된 단원들의 친절한 안내와 한의사 선생님들의 침, 부항, 한약, 한방 파스 등을 활용한 뛰어난 치료는 금세 효과를 발휘했다. 덕분에 봉사 이틀 차부터는 하루에 200~300명에 달하는 환자분들이 진료소를 방문했다. 이러한 과정들 속에서 각 단원들은 배정받은 업무에 맞춰 통역사 선생님들과 적절히 소통하며 큰 혼란없이 진료환경을 구성했다. 지금껏 국내의 다양한 지역으로 의료봉사활동들에 참여했지만, 본 봉사만큼 많은 환자들과 만나게 된 경험은 없었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과 발전의 기회를 넘어 단원들 간의 교류, 언어가 다른 환자들과의 소통, 한방치료의 효과들은 오래 기억 속에 남을 순간들이었다. 봉사를 마치며 짧은 봉사기간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치료해야할 환자들의 예후를 살피지 못하고 귀국한 것이 마음에 남는다. 허나, 해당 봉사의 취지와 환자분들의 환대는 질환의 완치가 아니더라도 환자분들의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고, 그들의 마음에 위로를 남길 수 있음을 확신하게 만들었다. 전혀 새로운 환경 속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 봉사하며 보낸 일주일은 한의사로서의 지향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잡는 시간이었다. 이 순간들의 마음을 잊지 않기로 다짐하며, 좋은 봉사의 기회를 준 KOMSTA와 이번 185차 봉사의 한의사 선생님들, 학생단원들, 통역사분들과 방문해주신 우즈베키스탄 환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좋은 의료’, ‘이상적인 의료’, ‘내가 할 의료?’Ⅰ. 서론 — 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세상이 진즉 좋아졌겠지 7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일본의 나가노현 의료현장에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참의료실천청년한의사회의 지원을 받아 한국사회적의료기관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연수의 기회를 얻었다. 이전에도 청년한의사회에서 여러 지원과 강의를 통해 배운 바 있어, 나는 나름대로 사회적 의료현장에 대해 알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사의련 민의련 청한에게 모두 죄송한 생각이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일본의 의료체계를 배우고 참관하는 일정이라고 생각했다. 드라마틱한 변화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공공의료를 이전부터 아예 몰랐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이다. 모르진 않는데, 안다고 하기도 애매했다. 실제로 해 본 적도, 진로를 그쪽으로 잡은 적도, 내가 사회적 의료, 민주의료, 참의료, 이렇게 불리는 의료를 할 자신이 정말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본과 3학년이다. 공공의료와 일차의료 현장에 관심이 있지만, 관심이 있다고 대놓고 이야기할 만큼 용기 있거나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공의료에 대한 지식은 쌓아두었으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세상이 진즉 좋아졌겠지. 내가 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막혔다. 그동안 학교에서 의료를 주로 질병의 진단과 치료, 환자 개인에 대한 의료서비스라는 관점에서 배워 온 것도 클 것이다(학교라는 시스템에 유감은 없다. 진단과 치료를 알아야 먼저 의료를 실천할 수 있고, 교수님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를 의료인으로 만들어주신다). 다만 허덕이며 강의를 따라가는 내게, ‘좋은 의료’ 혹은 ‘이상적인 의료’와 내가 할 의료는 자각도 없이 완전히 분리돼버렸다. 알아. 그런데 세상만사가 안다고 해결되진 않잖아. 누가 어떻게 뭘 희생해서 해낼 건데? 정답 없는 질문에 답하자면, 일단 그걸 할 사람이 나는 아닌 것 같았다. 미리 답을 밝혀둔다면, 나가노현에서 나는 드라마틱한 해답을 찾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의 의료체계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현장을 통해 내가 가지고 있던 의료에 대한 생각을 돌아보는 연수였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이번 연수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경험은 ①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에 대한 강연, ②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 견학 및 체험, ③ 어린이 빈곤 워크숍과 연수 되돌아보기였다. 각각의 경험은 사회적 의료와 참의료, 그리고 예비의료인으로서의 나에 대하여 다시 세우는 버팀목이 되었다. Ⅱ. 본론 1.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소중히 여기는 것> —사회적 의료는 특별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다 우리를 처음 반겨주신 마쓰모토 협립병원의 사노 다쓰오 회장님. 비행을 마친 열두 명의 의료계열 학생들에게 사노 다쓰오 회장님께서는 <나가노현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소중히 여기는 것>에 대해 강연해주셨다. 민의련의 역사와 활동, 민의련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신 시간이었다. 민의련은 의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시작이다. 전전 무산자 진료소 운동, 전후 민주진료소 활동을 이어가서 1953년 결성되었다. 민의련이 지향하는 의료는 질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질병 + 생활환경 + 노동환경+ 경제적 상황을 모두 바라보는 것인데, ‘무차별/평등의 의료’에 대해 무척 강조하셨다. 반드시 모두가 지켜야 할, 의료의 원칙이라고. 동종업계에서는 민의련을 어떻게 바라봅니까? 낯선 원칙에 손을 들고 질문했다. 사노 다쓰오 회장님께서는 자신 있게 말씀하셨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일부 존재하지만, “민의련의 의료 원칙 자체는 의료인이라면 당연히 이해할 수 있는 가치입니다.” 큰 울림을 느꼈다. 의료인의 역할을 고민하던 차였다. 의료인으로서 나는 당연히 진단과 치료를 제공하게 되겠으나, ‘사회적 의료’가 정말로 의료인의 역할인지. 그냥 의료만 하는 것도 힘들 것 같은데. 나는 내가 사회적 의료를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다. “예방의학과 의료인문학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상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나는 내 삐딱한 고민의 정체가 냉소와 회의였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당연한 원칙인데. 현실 운운하면서 포기하기에 나는 아직 학생인걸. 사회적 의료는 특별한 사람들의 선택이 아니다. 내가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실천하기 어렵다고 여겼던 의료의 가치가,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의료의 원칙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는 앞으로 어떤 의료인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게 되었다. 2.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 견학 — ‘환자의 삶을 본다’는 모습 2일차. 나가노 중앙 케어센터의 여러 시설을 견학했다. 쓰루가노카제, 후루사토 등의 현장을 둘러보고 머신을 직접 체험했다. 특히 주요하게 설명해주셨고 와 닿았던 부분은 각 시설이 대상자의 생활과 기능 회복/유지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였다. 나가노 중앙케어센터의 쓰루가노카제에서는 개별성을 존중한 생활환경을, ‘그 사람의 방’을 신경쓴다. 개인 가구와 물건을 사용하고 들여올 수 있는 등 개인이 습관과 취향을 유지할 수 있게끔 규칙이 짜여졌다. 환자의 관리되는 삶 이상으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한 공간이었다. 노인보건시설 후루사토는 병원과 가정 사이의 중간시설로, 병원 치료 → 후루사토에서 재활·생활 적응 → 가정 복귀라는 수순을 밟는다. 최종 목표는 가정에 복귀하고 자립하는 것이다. 중앙케어센터에서는 화장실의 변기 위치와 기댈 수 있는 벽의 위치를 조정하고, 욕탕의 욕조를 올리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등 굉장히 소소한 부분들을 신경 쓴 게 인상적이었다. 이 공간에서 실제로 생활할 사람에 대한 배려가 보기만 해도 느껴졌다. 단순히 시설을 보는 것보다 환자의 움직임과 일상생활을 지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설이 환자 친화적이라는 점에 새삼스레 놀랐는데, 환자를 중심으로 두는 시설이 아주 제도화되어 잘 안착했다는 점에서 그랬었다. 이걸 하려면 병원 의료진과 운영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고될 것 같은데… 하는 질문에, 어제의 말씀이 생각났다. 사회적 의료는 분명한 지향점이며, 의료인이라면 이를 부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주 생각했다. 사회적 의료는 거대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개인이 감당하기는 크다. 희생을 요구한다. 뛰어난 의료인이어야만 사회적 의료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나에겐 좀… 어렵지 않을까. 내 역할 밖의 일이야. 결국 난 질환을 가진 환자를 마주해야 하는 의료인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동안 사회적 의료를 너무 거대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한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그 사람에게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 역시 환자의 삶을 중심에 두는 의료의 한 형태였다. 그건 사람이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도록 돕는 구체적인 실천이었고, 나가노 중앙케어센터와 후루사토에서 실제로 그런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환자를 ‘질환을 가진 사람’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정도는 나의 시선 변화니까, 조금씩 해볼 수 있을지도, 하고 작은 생각이 자라난다. 3. 어린이 빈곤 워크숍 —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것은, 재미있어 어린이 빈곤 워크숍에서는 켄와카이 병원 소아과 의사 와다 히로시 선생님의 강연을 들었다. 빈곤층 가족은 먼저 묻지 않으면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이 작은 신호를 살피고 먼저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의료진은 질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상담과 자원 연계, 자기긍정감 향상, 고립 해소 등을 통해 아이를 돕고 있었으며, 더 나아가 빈곤 자체를 줄이기 위해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었다. 특히 강연 마지막의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것은 재미있어!”라는 말은 사회문제에 개입하는 일을 단순한 희생이나 사명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빈곤이 건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개인의 건강을 그 사람의 생활환경과 사회적 조건 속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새로운 지식이 아니었다. 그러나 워크숍을 통해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단순히 이러한 개념을 알고 있는 것과 실제로 한 사람의 건강 문제를 그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는 있지, 그런데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기는 건 달라. 여기서 항상 멈춰왔다. 그런데 예시로 들어주신 쌀 비치하기, 좋은 옷 대여소 만들기, 이런 걸 들으니 소소한 부분에서의 행동이 얼마나 큰 효과를 가져오는지 실감했다. 내가 소소하게 신경쓰면 달라질 수 있구나. 환자의 건강을 바라볼 때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생활할까?”에서 멈추지 않고, “이 사람이 이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는 환경은 무엇일까?”까지 질문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그건 진료하고 치료할 때 내가 말 한두 마디만 덧붙여 말하는 걸로도 알 수 있다. 선생님.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게 정말 재밌기만 합니까? 반드시 짚고 넘어갈 점. 와다 선생님께서는 빈곤 문제에 맞서는 게 전혀 안 힘들다고 절대 말하지 않으셨다. 힘들다. 힘들긴 힘든데, 한 사람 한 가족의 삶이 바뀔 때 큰 즐거움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걸 들으면서 나는 어차피 안 된다고, 어차피 못 할 거라고, 아무것도 안 바뀔 거라고 결론짓고 팔짱 끼고 보진 않기로 했다. Ⅲ. 결론 — 천지개벽은 없지만 미래의 나 또는 우리에게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 바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 그것이 시스템적으로 안착하여 당연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현재. 그런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기회이자 본과 3학년 시점에서 큰 울림이 되었다. 그렇다고 결론을 참 의료인으로서 천지개벽을 겪었다고, 사회적 의료에 완전히 헌신하도록 이 연수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라고 말하진 않겠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별로 현실적이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저렇게 말하고 나서 분명히 지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속을 두고 활동하는 단체의 전체 이름은 “참의료실현” 청년한의사회라서, 나는 참의료실천을 위한 길을 항상 고민해왔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건 의외로 쉽다. 그런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어렵다. 문제를 내가 나의 공간에서 해결하는 일이 제일로 어렵다. 문제를 느끼고, 항의하고, 사회를 바꾸는 일은, 무척 지친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이곳에 많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가노에서의 4일 동안, 지치지 않고 언제나, 오래, 당연하게 평등한 의료를 해내는 사람들 하나하나에 감명을 받았다. 나가노현에서 만난 분들은 세 번째 단계,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한 구체적인 현장이었다. 물론 모든 일본의 의료기관이 이렇게 빈곤 계급, 노인, 아동, 이와 같은 취약 계급에게 친화적이지는 않을 것이며, 모든 한국의 의료기관이 나의 뿌리 깊은 삐딱함처럼 자리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적 의료 실천이 “즐겁다” 라고 해 주신 와다 선생님 강연이 인상 깊다. 누가 어떻게 뭘 희생해서 해낼 건데? 라는 앞 질문에 대해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한번 해 볼게. 또 지치고 또 널브러져서 또 ‘어차피 안 돼’에 사로잡히더라도, 실제로 하는 사람이 있는 걸 잊지 않을게. 나가노의 현장을 기억할게.’ 정도의 답은, 다시 지쳐서 삐딱해져버린 미래의 나 또는 우리에게 쥐어줄 수 있을 것 같다. -
언어를 넘어 전해진 한의약의 따뜻함, 비의료인이 발견한 봉사의 진심[한의신문] 한의약을 중심으로 의료 사각지대에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는 KOMSTA(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는 지난 8월 20일부터 26일까지, 1997년부터 한의약 의료 지원을 이어온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17명의 단원과 함께 제185차 해외 봉사를 진행했다. 이번 봉사는 사마르칸트 국립 의과대학교 산하 재활의학 및 스포츠의학 과학연구소에서 이뤄졌으며, 4일간 863명의 환자가 방문할 정도로 현지의 관심이 뜨거웠다. 필자는 평소 한의약에 애정을 가져온 터라,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한의약이 가진 힘을 전파하는 데 동참하고자 일반 단원으로 참여했다. 언어적 장벽을 넘어 언어는 이번 봉사의 가장 큰 변수였다. 현지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평소 접할 기회가 거의 없어 생소한 데다, 사람에 따라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 타지크어를 단독으로 쓰거나 혼용하기도 해 단원 개인이 미리 언어를 익혀 대응하기란 사실상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진료가 시작되자, 곧 해소되었다. 통역 선생님들과 단원들이 한 마디라도 정확히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덕분이었다. 통역 선생님들을 통해 모든 단원이 자발적으로 배운 간단한 러시아어와 우즈베크어는 환자와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언어 외적인 수단으로 한의약이 가진 '정'을 전달하니 응대와 치료 과정에 대한 환자들의 만족도 또한 현장에서 체감될 만큼 높았다. 또한 몸에 직접 손을 대는 치료이기에 의료진과 환자 사이에 신뢰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진료실 문을 나서며 "라흐마트(우즈베크어로 '감사합니다')" 하고 단원들을 꼬옥 안아주던 환자들의 모습에서, 한의약만이 가진 다정한 치료가 언어적 장벽을 넘어 몸과 마음에 함께 닿는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의료인이 바라본 KOMSTA 봉사 현장 한의사도, 한의대 학생도 아닌 일반 단원으로서 참여한 이번 봉사는, 의료 봉사의 현장에서 치료하는 사람들의 일부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예진과 진료실 안내, 발침, 복약지도, 배웅에 이르는 과정은 직접적인 의료행위는 아니지만, 사람을 깊게 들여다보고 질병의 근원을 치료하는 한의약 치료의 연장이라 생각했다. 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 다시 문을 나서기까지의 시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다 보니, 어떤 파트를 맡아도 봉사의 모든 시간이 보람찼다. 국내에서도 의료 봉사에 참여했었지만, 이번 봉사에서는 나흘 내내 진료실 곁을 지키며 한 사람의 진료가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전 과정을 오래 지켜보며 평소 한의원을 다니며 보았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은 한의약의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한 진료실 한의사 선생님이 우울증을 앓던 아주머니를 치료하던 과정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마침 대기 환자가 많지 않아 진료를 길게 볼 수 있었던 덕분에, 선생님은 통역 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오랜 시간 상담을 이어갔다. 이어 침을 놓고 유침 후 발침하고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며 조금씩 나아지는 지점을 찾아가는 모습에서, 증상 하나를 두고도 사람 전체를 보려는 한의약 진료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임상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환자를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려는 정성만큼은 곁에서도 분명히 전해졌다. 봉사를 마무리하며 첫날을 제외하면 나흘 내내 재진 환자가 많았고, 마지막 날 오전에 방문한 219명은 대부분 다시 찾아온 환자들이었다. 먼저 치료를 받아본 이들이 가족을 데려와 함께 진료받기도 했고, 어린아이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어린아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저마다 다른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를 이어가는 단원들을 지켜보고 함께 하며 한의약 진료의 섬세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대가가 없는 봉사였지만 단원들은 환자가 건강한 일상을 되찾는 것 자체를 보람이자 대가로 여기며 진심을 다했고, 그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자니 봉사를 하는 모든 순간에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더 진심으로 대하게 되었다. 4일간의 봉사를 마치고 진행된 병원장님과의 만남에서 병원장님은 "여기 계속 있어도 된다"라며 웃으며 말씀을 건넸다. 185차 봉사단의 나흘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분의 감사 인사였지만, 그 한마디가 한의약을 향한 애정으로도 들려 오래 마음에 남았다. 비의료인인 까닭에 자세한 치료 과정과 내용을 알지 못해 이번 봉사의 결과를 의학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안내와 배웅을 하며 직접 눈을 맞추고, 손을 잡고, 포옹했던 863명 환자들의 따스한 미소와 온기를 통해, 17명의 단원이 한 몸처럼 움직여 한의약 치료의 힘을 전달했다는 것만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번 봉사를 지탱한 것은 사마르칸트팀 단원들의 끈끈한 팀워크와 우애였다. 각자의 자리에서 바쁜 와중에도 서로를 먼저 신경 쓰고 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 있는 동안은 몸이 힘든 것마저 즐거워, 일주일이 7분처럼 짧게 느껴질 만큼 고마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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