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원장의 글을 소개한다.
저속 노화의 대열풍이 불고 있다. 자세한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이미 지금까지 방대하게 부유되어 있던 정보들이 대부분이다. 통곡물 먹기, 되도록 원재료의 형태 그대로 먹기, 단백질은 붉은 고기보다 다른 고기·생선·콩·유제품류로, 식사 직후 가벼운 산책하기, 아침에 과당 섭취 절제하기, 갈거나 착즙해서 먹지 않기 등.
누가 저속 노화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가?
안티에이징(anti-aging) 혹은 다이어트식단이라는 단어로 묶이던 내용들이, 훨씬 직관적으로, 그리고 당장 실천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건 ‘저속’ 노화라는 네이밍(naming)이 핵심이라는 생각도 든다.
노화를 막는다, 혹은 거부한다라는 단어는 돈도 많이 들 것 같고, 당장 내일부터 시도해 보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이미지가 들지만,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라는 단어는 한 걸음만 늦어져도 해낸 듯한 성취감을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건강에 좋은 건 모두 귀찮고 힘든 것들. 그리고 힘든 것 중 가장 힘든 것은 첫 걸음을 떼는 것”이라는 말이 있고,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로 채찍질하며 살아온 현대인에게 저속 노화는 참 고마운 힘듦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지금의 열풍에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도 있다. 요즘 미디어를 틀었다하면 나오시는 노년내과 교수님이다. 개인적으로 분야를 떠나서 굉장히 존경하는 분인데, 이 분의 등장으로 저속 노화의 카테고리가 명확하게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방대하게 부유되고 있던 지식들이, 전문가의 등장으로 인해 생활 밀접형 정보로 치환된 것이다.
그 분께서 말씀하신 노년내과가 필요한 이유에 대한 내용도 기억에 남는다. “노년내과라고 해서 어르신들만 진료하는 내과인 것이 아니라, 노화로 발생하는 질환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과 치료를 제공하는 과이다.” 예방적 치료로 제시하는 방법이 조기 검진과 영양제만 권유하지 않는 점이 저속 노화의 트렌드인 것 또한, 이 분이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양생(養生) 지침, 우리가 가장 많이 알아”
부러 앞선 이야기들을 한 이유는, 아쉬움 반, 기대감 반으로 인함이다. 예방적 치료라는 개념의 시초가 한의학의 가장 기본 이론인 ‘치미병(治未病)’이기 때문이다. 진단기기를 쓰지 못 한다는 이유로, 설사 기기를 써서 진단을 한다 한들 병(已病)에 대한 응급 처치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표준 치료제(治已病)에 대한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내부에까지 균열이 일어나는 게 지난 수 년 간의 일이었다.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유의미했다.
그러나 우리도 모르는 새, 세상에는 병은 발생하기 전에 관리해야 한다는(未病) 인식에 열광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의 근간을 인식시킬 기회는 지나간 듯 한 점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든다. 지나치게 방대한 지식 때문이었을까? 네이밍과 카테고리화에 대한 노력의 부족 때문이었을까? 전문가의 부재 때문이었을까? 혹 결국은 고질적인 마케팅적인 부분 때문이었을까?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이 내과 질환에서부터 피부미용에까지 넓은 영역으로 퍼지고 있는 지금, 치미병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세상에 전할 지식은 너무나도 많다. 한의약의 치료 도구를 제시하기 전에, 의·식·주의 양생(養生)에 대한 지침은 단언컨대 모든 전문 의료인을 합쳐서 우리가 가장 많은 이론을 배웠을 것이다.
“한의학 근간, 카테고리화할 필요 있어”
심지어 그 양생에 대한 내용이 장기별로, 시와 때별로, 계절별로 구분되어 있기까지 하다. 조금이라도 더 간단한 방법으로, 당장 오늘 저녁부터 노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기를 원하는 현대인에게 가장 맞춤화되어 있는 정보일지도 모른다. 얼굴의 노화를 막기 위해 두피 마사지는 기본에, 측두근에까지 리프팅을 받는 세상에서, 해부학과 동시에 두피의 위치별 장부 배속까지 알려주는 것이 한의학의 근간이다.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 지금, 이 시류를 탔을 때가 바로 우리의 근간을 다져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근간이라 함은, 한약, 침, 뜸과 같은 치료 도구가 아닌, 학문 그 자체를 말한다. 마침내 현대 한의학이라는 이름에 맞게 진료 현장이 구축될 희망이 보이는 지금, 그 근간도 지금의 분위기에 맞게 카테고리화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허준 선생의 말을 그대로 빌려, ‘방대한 내용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 했을 뿐인데 유네스코에 등록된 동의보감처럼, 21세기 현대 한의학의 동의보감을 간행해 줄 전문가가 나타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