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에 안부를 묻다-7
송수민 동의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2학년
본란에서는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 상황에서도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들에게 코로나19 상황에서의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셨는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 사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묻고 대답하기가 어렵다. 처음 보도가 되고 2년이 지나 확진자가 하루에 30만 명이 된 현재까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을 잃은 것은 모두들 마찬가지지만 생업을, 가족을,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팬데믹을 겪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건강, 의료 접근성, 생계를 꾸리는 방법 등에 따라 모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 시기에 내 하잘것없는 일상을 알리는 글을 감히 써도 되는가. 어쩌자고 글을 쓰겠다고 지원했는가. 아무 생각 없이 뭘 쓰면 될까 고민하다가 이런 질문에 갑자기 턱 막힌다. 신청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글을 과제처럼 써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또 이런 질문을 해본다. 과연 의미가 없었는가. 나라는 작은 인간이 코로나19와 함께하면서 삶이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가. 꼭 모두가 끄덕일 만큼 큰일을 겪은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는가. 기쁨이나 슬픔의 척도가 높은 사람만이 무언가를 말할 권리를 갖는가. 그건 아니라고 분명히 배웠다. 한의학에서 병은 생활에 불편함이 있는 상태이다. 죽을 정도로 아프지 않아도 불편하기만 하면 환자이고, 한의사는 기꺼이 다른 사람의 불편함에 대해 들어줄 의향이 있다. 완전히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곳이 아픈 사람도 없다. ‘미병’ 상태로 한의원에 간다는 마음으로 내 일상을 써본다.
“예비 의료인으로서 뭔가 하고 싶었다”
식상하지만 어쩔 수 없이 먼저 떠오른다. 학교 가지 않는 일상. 일단 좋았다, 너무 좋았다. 학교가 싫었다는 것은 아니다. 공부는 힘들어도 친구들이 있었다. 그저 놀기만 했다면 몰랐을 즐거움은 함께 과제를 하고 시험을 치고, 동아리 일을 하며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늦잠 자도 되는 월요일을 반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2년 전 예과 2학년 때, 3월에 대면개강이 밀린 것에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학교를 안 가게 된 것이 기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강의는 시험기간에 몰아듣고, 나머지 날들은 밖에 나다닐 수 없어 그냥 누워서 지냈다.
학교에 가지는 않았지만 피가 끓었다. 파릇파릇한 예과생이었던 나는 쥐뿔도 모르면서 예비 의료인으로서 뭔가 하고 싶었다. 공지방에 코로나19 한의진료센터 모집이 올라왔을 때 이거다 했다. 거기서 학생들은 예진을 보고 처방을 기록하고 약을 포장하여 택배로 보냈다. 새롭게 만난 한의대 친구들은 모두 호의적이었고 도움이 되고 싶어 했다.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끝나고 나서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정된 할 일이 없어진 것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오랜 시간 지속되니 힘들어졌다. 친구들을 만나고 싶었지만 모두의 의견이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죽는 사람이 있으며 그게 아니더라도 병을 옮겨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싫다고, 모두를 위해 좀 자제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만나기 싫어하는 친구가 있었다. 한편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일상생활을 계속 해야 한다, 언제까지나 기약 없이 집에만 박혀 있을 수는 없다, 병이 아니라 생계가 중요한 사람들은 어떡할 거냐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나는 2주에 한 번씩 코를 쑤시며 친구들을 만났다. 운이 좋아 코로나19에 걸리지는 않았다.
코로나19는 그저 한 부분, 하나의 증상일 뿐
코로나블루와 함께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힘든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다. 평생 보리라 생각했던 사람들과 연이 끝나고 탓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을 때였다. ‘내 삶의 부피는 너무도 얇다. 겨자씨 한 알 심을 만한 깊이도 없다.’ 양귀자 소설 ‘모순’에 나오는 말이다. 어느 날 책방을 걷다가 내 마음 그대로를 옮겨놓은 문장을 보고 뭔가에 맞은 듯이 멍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식으로든 가라앉지 않을 방법이 필요했다. 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책모임을 하다가 비건을 지향하기로 결심했다. 때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가 아닌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것이므로. 코로나19 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졌다. 애초에 팬데믹이 왜 생겼는지에 대해, 팬데믹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지에 대해, 팬데믹 이전부터 있었던,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개인이 지게 된 것에 대해. 코로나19 사태는 그저 연장선일 뿐이었다.
서양의학은 부분에, 한의학은 전체에 강점이 있다고 항상 배워왔다. 독립된 병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를 파악하고 균형을 되찾는 것을 중시한다고. 코로나19는 그저 한 부분, 하나의 증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병명으로 진단하여 치료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타난 원인이 무엇인지 전체를 보고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사실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본과 2학년 나부랭이에게 코로나19와 한의학에 대한 어떤 통찰을 기대하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한의대생’으로서의 글을 기대하신 분들은 실망하셨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코로나19와 한의학의 역할에 대해 논하는 것은 전문가 분들의 글을 그저 옮겨놓은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속 항원 검사부터 먼저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잊은 채 PCR 줄을 한 시간 이상 기다린 적이 있는 멍청이다. 의료인이라기보다 한 명의 시민으로서 팬데믹을 지냈을 뿐이다.
미래의 한의학을 책임질 인재로서 올바른 방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한다, 라는 식의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일단 무엇이 올바른 방향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분명히 치료 효과가 있다는 논문, 저항력을 높이는 한의학적 예방이 최선이기에 반드시 한의사들이 함께해야 한다는 홍보물, 수많은 한의사들의 노력과 부족한 의료 인력에도 모른척하는 정부와 양의사들. 자체적으로 한의사협회에서 비용을 부담하며 환자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 그저 권력싸움인지, 의료이원화 체계에서 환자를 함께 돌보는 것이 불가능했는지에 대해 아직 물음표밖에 띄우지 못했다. 다만 아는 것은 정말 환자를 위한다면 한의사도 일을 했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생명의 본질은 저항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하고 정부와 기성세대를 원망하기만 했다. 외감병에 대해 공부하여 친구에게 약을 보내주거나 한의사들의 투쟁에 대해 더 찾아볼 수도 있었을 텐데, 부끄럽지만 큰 관심도 없었고 무력감에 휩싸이기 싫어 그런 생각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지냈다. 센터가 끝난 이후에는 코로나19에 관한 과제를 하는 것 이상으로 참여한 것이 없다. 학생이 주체가 된 수많은 운동에 대해, 개개인이 모여 이뤄낸 성과들에 대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입학하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생명의 본질은 저항’이라는 말이다. 땅을 뚫고 새싹을 틔우는 것, 우리 몸에서 수승화강을 통해 생명에너지를 만드는 것 모두 저항이며 이는 숨처럼 자연스러운 것이다. 저항은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하는 외감병 비상대책위원회에 지원했다. 투표처럼 작지만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나하나 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