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신문] 한의사가 일차의료 ‘문지기(Gate Keeper)’ 체계 안에 바로 서기 위해선 제도 설계 단계부터 참여 원칙을 명확히 하고, 현장 중심의 ‘질관리’로 신뢰를 증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의재택의료학회(회장 방호열)는 8일 서울시한의사회관 송촌지석영홀에서 ‘한의 일차의료 현안 대응을 위한 간담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일차의료 혁신 흐름 속에서 한의주치의 모델의 자리매김과 재택의료 시범사업의 지속가능성을 놓고, 현장 중심의 쟁점을 공유했다.
방호열 회장은 인사말에서 “오는 3월 통합돌봄 시행에 있어 정부·지자체, 의료 공급 주체 모두 준비가 미비한 상황으로, 특히 정책 지침·매뉴얼에서 한의약이 배제되면서 제도적 차별을 낳는 상황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지역사회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을 비롯해 장애인·어르신 주치의, 지역·필수·공공의료 전반에서 한의사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이번 간담회가 재택의료를 포함한 주치의 제도를 중심으로 일차의료 정책 현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으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는 대한한의사협회 및 전국 시도지부 임원단과 정부(한의약진흥원), 학계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 일차의료 정책 및 한의 주치의 대응(김동수 동신대 한의대 교수) △재택의료 시범사업 현황과 과제(김범석 부천시 재택의료센터장)를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 통증·다약제·미충족 요구…한의사의 전문성 영역
김동수 교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일차의료 개편이 의료전달체계 전환, 지불제도 개편, 통합돌봄 연계 강화 등 거시적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주치의가 마련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는 식의 전망은 현실을 과소평가하는 것으로, 이재명 대통령의 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연계된 큰 그림 안에 한의사 주치의는 이미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의사의 주치의 역량을 △통증 완화 △다약물 사용 억제 등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강점으로 규정하면서도 당장 시급한 건강검진, 예방접종, 만성질환약 처방 등 법적 논란이 있는 행위에 대해선 ‘핵심 팀(Core team)’ 내 협력 의사와의 협진 체계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또한 “한의사는 주치의 역할뿐만 아니라 의사 주치의가 해결하지 못한 △다발성 통증 △다약제 문제 △환자의 추가 요구를 보완하는 ‘전문의(Specialized physician)’로도 기능할 수 있다”면서 “한의사 주치의 팀과 의사 주치의 팀의 선택은 환자 중심성과 다직종 협력 원칙에 따라 수평적 사례회의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 설계 단계부터 한의원이 배제되지 않는 명확한 참여 원칙 명시를 촉구했다.
특히 그는 한의사의 주치의 포지션을 공고히 할 핵심 전략으로 ‘노쇠 기반 모델’을 제시하며 향후 일차의료 혁신 시범사업 체계 안에 반드시 포함할 것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현재 한의재택의료학회, 한의약진흥원, 한의사회가 각자 역할을 하고 있으나 일차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컨트롤타워는 부재한 상황”이라며 교육·임상·학술·정책·제도를 아우르는 ‘통합 거버넌스’ 구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일차의료·통합돌봄·재택의료 등 굵직한 정책이 맞물린 만큼 단편적 사업 대응이 아닌 10년을 내다본 구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재택의료센터, 지금은 ‘질관리 전쟁’…단독 참여 배제 흐름 커져”
김범석 센터장은 재택의료 시범사업 현장을 ‘연계·협업·질관리로 지속가능성을 증명해야 하는 국면’으로 규정하며, “한의 주치의가 다학제 협업 구조를 통해 서비스 지속성을 확보하고, 적정 진료와 질관리를 통해 사업 확장을 모색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정부의 주치의 논의가 한의사 배제에서 출발해 재택의료센터 지정·평가 기준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응급 대응과 약물 처방 한계를 이유로 한의 주치의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김 센터장은 현장 대응의 핵심으로 재택의료센터 지정 심사위원회에 한의계 참여가 반드시 보장될 것을 강조하며 “기준이 고착화되기 전에 담당 부서와 심사 구조에 지속적으로 의견을 전달하며 빠진 조항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의재택의료가 ‘통증 관리 위주’로만 인식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그는 “질관리 평가에서 상병 코드가 M·S 계열에 치우쳐 노쇠·치매 등 실제 상태가 데이터로 드러나지 않는다”며 “상병부터 바꾸지 않으면 ‘한의는 포괄평가를 못 한다’는 프레임이 고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누가 봐도 한의사가 포괄평가를 수행하고, 진료·케어 플랜을 수립해 신체·인지·정서·돌봄 요소를 종합 관리하고 있다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며 한의계 전체가 함께 관리해야 할 리스크로 △불법 본인부담금 면제 △과도한 방문 △외래 이용이 활발한 대상자에 대한 무분별한 방문진료를 제시했다.
김 센터장은 “재택의료센터는 초고령사회에서 한의계가 일차의료의 주체로 남을 수 있는 근거”라며 “재택의료센터가 무너지면 장애인·어르신 주치의 등 향후 논의의 발판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김정철 한의재택의료학회 부회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토론에는 대한한의사협회 최성열 학술/의무이사·송인선 보험이사, 이용호 경기도한의사회장, 오명균 강원도한의사회장, 김진균 충청북도한의사회장, 정병식 충청남도한의사회장, 최종근 포천시한의사회장 등이 참여했다.
또한 한의약진흥원 이은경 정책본부장·이지현 의료지원센터장·현은혜 주임연구원을 비롯해 학계에선 고호연 세명대 한의대 교수, 김은혜 가천대 한의대 조교수 등이 참석해 한의일차의료와 재택의료 제도의 개선 방향을 놓고, 현장 의견을 공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