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24 (금)
큰나무한의원 부원장 나지호(가운데)
한국M&L심리치료연구원 주최, M&L심리치료학회(회장 강형원 교수) 주관으로 진행되는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코스’는 심리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임상 현장에서 요구되는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다양한 심리치료 기법들을 습득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M&L은 Mindfulness & Loving beingness를 뜻하는 말로, 내담자 안에 있는 힘을 믿어주는 치료자가 제공하는 안전의 장 속에서,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 M&L 심리치료입니다.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코스’는 일본 정신과전문의이자 후쿠오카 유멘탈 클리닉 원장인 유수양 선생님을 마스터 트레이너로,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원광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인 강형원 교수님을 트레이너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부산, 광주 및 Zoom 등에서 10회차에 해당하는 트레이닝 코스를 진행하면서 총 202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2021년과 마찬가지로 Zoom을 활용해 코스를 진행하면서도, 체험을 중시하는 M&L심리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코스의 5회차와 10회차 때 각각 1박2일로 오프라인 코스를 진행함으로써, 온라인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면 실습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3년은 한국에 M&L심리치료가 들어온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M&L심리치료가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진일보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작년 4월이었는데 한 달마다 한 번씩 줌으로 만나면서 벌써 해가 바뀌어서 1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7기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베이직코스’ 시작 당일에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허겁지겁 등록하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줌이지만 얼굴과 상반신이 보이도록 대면처럼 소규모 실습을 한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형원 교수님과 유수양 선생님, 운영진 분들이 저의 그런 긴장된 마음을 알기라도 하셨는지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와 표정, 어투로 대해주셨습니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제 기억에 남을 만큼 평소에 자주 들어보지 않았던 것 같은 말이었습니다.
먼저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강의
지식기반의 강의가 아니어서 그냥 강의하시는 분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가끔 임상케이스가 나올 때면 그분의 상황과 심정에 깊게 공감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감정표현도 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 상태가 안 좋거나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 때도 자연스럽게 강의에 참여하면서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 시간이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높아진 긴장감과 불안을 낮출 수 있게 하고, 다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불확실성의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명상 상태에서 내면아이를 만나고 내면아이에게 대화를 건네는 방법 또한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트라우마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평소의 나와 다른 행동과 감정을 표출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좋은 해답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던 그 내면아이가 원하는 말, 핵심적인 감정을 나에게 잘 전달해주면 이상하게도 뭔가 출렁이던 감정이 평온해지고 맑아져서 깨끗하고 맑고 잡음이 없는 깊은 내면의 나의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히 그러나 넓게 밀려오면 천천히 나의 행동과 감정에 스며들어서 고통과 불안에 휘감겨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다시 한발 크게 내딛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다시금 생기는 것 같습니다.
1호 환자를 치료하며, 인간 내면의 강인함과 긍정을 실감하다
아무래도 그런 큰 변화를 알아채게 된 것은 저의 1호 심리상담 환자가 생기게 된 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1호 환자는 도무지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심한 불안 증세를 가지고 내원하였는데,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에 큰 고통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한의학적인 치료를 했지만, 그 환자는 한 번의 심한 공황발작이 있고 나서는 침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괴로워했지요. 그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심리 상담 치료밖에 없어서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눈동자와 초췌해진 표정을 가지고 있는 그 환자는 처음에는 하단전 명상치료와 마음의 방 그리기를 하면서 어리둥절해 했지만, 저를 믿고 잘 따라와 줬습니다.
기억에서 떠올릴만한 긍정적인 리소스가 하나도 없다고 하셨지만, 그분은 명상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일상에서 자신의 리소스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불안으로 허덕이면서도 그분은 기꺼이 명상치료를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분은 아침마다 감사기도를 하고 놀이터에 나가서 햇빛을 받는 리소스를 가진 강인한 눈빛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눈부시도록 놀라운 변화를 그저 지켜봐주고 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는데, 사람의 내면에는 이토록 강인하고 긍정적인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변화를 목격한 저는 이끌리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을 인용하여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게 되었지요. 바로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였습니다.
저 역시도 가장 상처받고 움츠러들었을 때조차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고,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꽃이 피듯이 모든 게 바뀔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늘 연속적이고 변곡점이 있는 데 반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은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인식체계 역시 깨어져야 할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심리상담 면에서 초보이기에 어쩌면 내가 제대로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었지만,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은 환자에게 서로 의지해가며 상담을 이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식사를 어느 정도 하게 되었고, 가족이나 주변 친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새해가 되자 한번 저를 찾아오셨는데, 제가 오신 이유를 묻자,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고 자랑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변화를 보는 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삶을 바꾸는 기회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한 loving beingness를 직접 전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각자의 신화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이 되다
10회차 부산에서 만났던 마지막 코스에서 우리는 각자가 걸려있는 마법의 주문에 대해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마법의 주문을 이야기하다보니 나의 신화를 완성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최보윤 원장님께서 도움을 주셨지요.
마법의 주문을 생각하다보니 자기 자신과 주변인의 관계와 삶으로 구체적인 포커스가 맞춰지는 기분이었는데, 나의 신화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신화에서는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이 매우 많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영웅이 되는 구조가 굉장히 많은데, 그러한 영웅적인 면모, 닮고 싶은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나에게는 더 이상 먼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자기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알에서 깨고 나온 새처럼, 스스로의 영웅이 되는 일까지 상상해볼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또한 문화의 밤에서 여러 장기를 보여주셨던 선생님들께서도 그러한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충분히 자신감 있게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나로부터 맞춰가는 아주 기분 좋은 경험과 울림이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모든 학회 운영진분들과 저희를 이끌어주셨던 강형원 교수님과 유수양 선생님, 그리고 ‘제7기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이닝 코스’를 함께해주신 모든 수강생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3년 한해에도 모두 내면의 성숙과 자신의 신화를 이루어나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