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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 책방-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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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 책방-29

진보라는 신기루

신미숙4214_web.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진보라는 신기루’는 아일랜드 코크 대학병원 교수인 셰이머스 오마호니의 저서 『병든 의료』(사월의 책, 2022. 06. 10. 초판)의 열네번째 챕터 제목이다. 

 

이 소제목에 마음이 끌려(?) 신간 코너의 『병든 의료』를 교보문고 바로드림에서 받아 들고 근처에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북카페로 향했다. 맥주 한두병을 곁들이며 이 책을 완독한 후 걸어서 귀가하면 완벽한 체중감량 코스로구나 싶었다(누구 맘대로!!!).

 

4·7재보궐, 3·9 대선, 6·1 지선까지 민주당의 3연패를 지켜보니, 지금은 일선에서 후퇴했지만 한 때 민주진보 계열의 빅마우스로서 당신이 나간 모든 선거를 이겼다는 이유로 백전백승의 아이콘으로 통했던 한 정치인의 발언이 떠오른다. “앞으로 20년은 민주당이 더 집권해야 한다”는 바로 그 말. 

 

이제는 저주가 되어버린 혹은 ‘입방정은 이래서 떨지 말아야 해…’라는 그 발언을 기억하고 있을 모든 이들의 인생에 크나큰 교훈을 남겨준 바로 그 말. ‘진보는 신기루였나? 진보가 맞긴 맞았나? 진보는 진보하였나? 진보는 이제 끝났나?’ 정치에 관심 끊고 일신의 일상을 더 챙겨보자는 결심을 실천 중인 내게 ‘진보=신기루’라는 소제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여러 생각들을 요동치게 한다.


세이머스 오마호니, 현대 의료 비판 및 공공의료 회복 강조

 

셰이머스 오마호니(Seamus O’Mahony)는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2016년 『요즘 우리가 죽는 방식(The Way We Die Now)』이라는 책으로 영국의사회가 선정하는 그 해의 의학도서상을 받았고, 소비자주의와 전문가적 이익에 함몰된 현대 의료에 대한 비판과 함께 공공의료의 회복에 관한 글을 꾸준히 쓰는 분으로 작년 12월 이 칼럼란에 소개된 이반 일리치의 지적 세례를 듬뿍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요즘우리가죽는방식.jpg

 

 “이반 일리치 이후 의학에 대한 가장 충격적 비판”이라는 서평으로 이 책을 알게 되었고 번역을 하게 되었음을 이 책의 역자인 단국대 의대 권호장 교수는 역자서문에 밝히고 있다.


헬리코박터는 이전 세대가 과거에 위산 분비에 집착했던 것과 똑같이 새로운 의료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헬리코박터 자체를 위한 학회와 학술지가 생겼다. 마셜과 위런은 200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고 이 경로를 따라 많은 사람이 위원회 좌장이 되거나 큰 연구비를 타냈다. 위산 분비 때문에 위궤양이 생긴다는 교리를 믿었던 일련의 학자들이 이제는 헬리코박터로 갈아타게 되었다.

 

 

- 위궤양의 발병인자가 위산 분비에서 헬리코박터로 바뀌었음을 교리로 믿었던 학자들의 대이동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속적인 연구성과의 신속한 임상적용, 그에 따른 소화기 임상의학의 발전일 수도 있겠지만 이 사이클은 현대의학의 모든 질환에 무한반복 중이다. 구이론 - 오류지적 - 신이론 - 갈아엎기 - 최신지견 - 신구이론 모두 갈아엎기.

 

 

- 생각해보면 한의계에는 다종다양한 학회가 각자의 방식으로 회원을 모아 온오프라인 학회 활동을 하면 그걸로 끝인 듯하다. 어떤 이론이 오류를 지적받고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옮겨가고 그에 따른 새로운 학회와 학술지가 생겨났다가 없어진 적이 있었던가 싶다. 임상가의 유행에 따른 몇 키워드의 잔잔한 물결 같은 일렁임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가 돌봐야 할 환자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비정상적 생리 수치, 연구실 계측치, 고장난 장기가 되었고 이반 일리치가 말한 ‘한 다발의 진단 뭉치’가 되었다. 의사, 간호사, 기타 의료전문가들은 이 모든 일들을 정확하게, 프로토콜에 따라 수행한다. 환자는 병원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처리해야 하는 문제이다. 이곳에서 아픈 사람은 정량화된 입력물이 되어 출력물로 가는 절차를 밟아야 하고 회전속도가 짧을수록 좋다. 우리는 환자를 처치하고 있지, 치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 대학병원에서 한 번이라도 환자로 접수되어 외래나 수술을 겪어봤다면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접수-수납-외래-다음 외래 예약-퇴장 등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착착착 맞아 떨어지는 병원에서의 짧은 체류는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에 가까워서 의료사고 따위는 허락하지 않을 것 같은 잠시나마의 안락함을 주지만 그 안에서 나의 존재감은 점과 같은 미미함으로 쪼그라든다. 물론 피곤에 찌들은 의료진들 모두다 거대 병원을 지탱하는 크기만 약간 다른 나사못 같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다.

 

 

- 지금은 한의계마저 질환별 진료 프로토콜로 모든 한의치료의 표준화, 과학화를 추구한다는데 과연 이 길은 또 옳기만 한 것인가?

 

가장 성공적인 의사는 모호함 없이 명쾌한 진단을 내리고 치료에 대한 완벽한 믿음을 환자에게 심어주는 의사이다. 치료사는 환자의 문제가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인지 언제나 명확하게 정의한다. 치료사가 어느 유파에 속하는지에 따라 원인은 효모로 인한 알레르기이거나 척추의 정렬이 똑바르지 않아서 등등이 될 수 있다. 치료 효과에 대한 믿음도 비슷하게 주입된다. 사실 환자들이 의사 앞에 들고 오는 문제들 대부분은 일시적인 것이거나 스스로 치유가 된다. 이것이 대체보완요법의 지속적 성공을 설명해준다. 그것들의 정체는 암과 같은 좀 더 심각한 질환을 다룰 때 가끔씩 드러나곤 한다. 의학의 핵심에는 한 가지 역설이 있다. 의학의 지적 기반은 기질 상 과학이지만 진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합리하고 변덕스럽고 유약하고 속기 쉬운 성격의 사람들을 다뤄야 한다. 과학이 의학에 제공하는 것은 정보이지만 의학은 과학에 대답을 기대한다.

 

- 과학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치료에 대한 완벽한 믿음을 확언할 수 없는 의사들에 비하여 불합리함으로 똘똘 뭉친 속기 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냥 둬도 스스로 치유가 되는 온갖 일시적인 문제들로 내원한 환자들에게 원인을 단순화하고 진단과 치료 효과를 확신하는 대체요법 치료사들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대체보완의학이 인기가 있다는 의사 입장에서의 비판글이다.

 

 

- 한의사로서 날마다 만나고 있는 이 많은 환자들이 그냥 둬도 시간만 가면 그냥 낫는 질병이었나? 이 많은 증상이 단지 척추가 비틀어져서 나타난 거라고 섣불리 원인을 단순화했나? 나만 믿고 따라오시면 다 나을 거라고 치료결과를 확신했나? 대답은 모두 NO이다. 하나의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여러 병리적인 상황이 진행되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을 것이라고 했고 미처 인지하지 못했음은 당연하기 때문에 치료가 늦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해 주는 편이다. 지금이라도 한의원을 먼저 방문했으니 나도 내 방법으로 당신을 도울 것이며 환자분도 지금 계획하고 있는 다른 의료기관 방문 또한 신속하고 충실히 병행하시라고 권유하는 것이 내 진료의 원칙이기도 하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로널드 드워킨(Ronald Myles Dworkin)은 의사들이 한때 누렸던 전문가적 자율성에 대해 “그들은 친절하게 굴거나 농담을 하거나 아양을 떨 필요가 없었다. 그들이 가진 치유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환자들을 사로잡고 편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의 평생 업무는 대부분 자기자신을 감독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 한 집 건너 한의원, 두 집 건너 약국, 세 집 건너 치과, 네 집 건너 병원의원… 한의사인 내 눈에 보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의료기관 간판 개수의 발견 빈도이다. 한의사라는 업종이 비의료인들이 보았을 때에나 전문직이지 완벽한 의료서비스업으로 변모한 지는 오래된 듯하다. 공무원 봉직의인 나도 챙길 눈치가 한두개가 아닌 처지이니 옆집, 앞집, 뒷집 한의원들과 살벌한 경쟁을 해야 하는 개원의들은 오죽하랴?

 

- 20년 가까이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절친은 아니지만 존경하는 산부인과 개원의 선생님께서 이제 더 이상 유망 전공이 아닌 산부인과 의사들끼리 앞으로 뭐 해먹고 사나 늘 만나면 정부탓, 정책탓, 저출산탓 많이 하는데 발 빠른 후배들은 이미 성의학 전문가로 혹은 이쁜이 수술 전문가로 거듭나고 있다며 “신 선생님아!! 이 개원의들의 강으로 건너오지 마오”라며 우스갯소리를 하신다.

 

- 의사들이 가진 치유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환자들을 사로잡고 편안한 삶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그 평화시대는 이미 사라져버린 고대 문명을 다루는 아름다운 삽화가 가득 실린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을까 싶다. 그 때는 많은 의사들이 자신만의 스타일도 개성도 유지했겠지?!

 

미국 의료계의 다른 많은 사람들도 과거의 진료 행위를 버리고 디지털 데이터에 집착하는 것에 대해 한탄한다. 심장의사인 존 맨드롤라(John Mandrola)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료 수단들에 모바일 센서, 디지털 레코드 등이 포함되면서 슬프게도 사람을 돌보기 위한 일들이 1과 0을 다루는 도착적인 일들로 바뀌고 말았다. 좋은 진료란 로켓 과학처럼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디지털도 아니고, 하얀 스크린도 아니며, 폐동맥에서 얻은 수치도 아니다. 그리고 급하게 도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선배 의사 옆에서 수년에 걸쳐 환자를 보는 경험이 필요하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의 눈과 귀가 환자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 선배 의사 옆에서 수년에 걸쳐 환자를 보는 경험. 이는 소위 도제식 교육으로 불리우는 것이다. “의사 교육에 도제식 교육은 불가피하다 - 아니다!! 전근대적인 도제식 수련의 교육은 타파되어야 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차의료 역량강화에 있어서 도제식 교육이 효율적이다” 지금까지도 실천 가능성의 측면에서 도제식 교육에 대한 주장과 반론이 반복되는 논쟁은 계속되고 있다. 

 

더럼대학교(Durham Univ.) 의료인문학 교수 제인 맥노턴(Jane Macnaughton)은 2009년 <The Lancet>에 공감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에세이를 기고했다. “우리가 환자를 다루는 방식, 특히 그들에게 어떻게 이야기 하는가는 우리 직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르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일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것은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뛰어난 의사가 환자를 다루는 것을 지켜보면서 얻을 수 있지만 약리학 배우듯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말과 글의 권능으로도 그리고 어떤 교과서와 강의로도 의사들이 언제 따져 묻고, 언제 말하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은 결코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수백만 가지 인격적 조합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해결책을 써야 하는 사적이고 신비스러운 부분입니다.”

 

- 스스로 환자들에게 공감을 잘 한다고 자부했었다. 그러나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이는 고객 응대술이었고 얄팍한 보살핌의 연기를 하고 있는 외피일 수 있었다. 그건 공감 연기였다. 단순한 인간적 친절함 이상을 곁들인 연민을 환자들에게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의사와 환자 사이의 수백만 가지의 인격적 조합이 다 다르며 각기 다른 해결책을 써야 한다는 제인 교수의 지적에 나의 인격과 환자들의 인격이 부딪혔던 경우에 진상이라고 매도하거나 비호감이라는 딱지를 붙임으로써 일방적인 거부감을 보였었던 부끄러운 기억이 떠올랐다. 더 지혜로운 해결책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비슷비슷한 미봉책으로 그 순간을 그저 회피해 왔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깊은 반성도 하게 되었다.

 

위대한 의료통계학자 메이저 그린우드(Major Greenwood)는 1931년 왕립예술학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학회의 정신에 대한 생각을 피력했다. “인종이 다르고 교육과 현실적 야망도 다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어디에서나 인간의 삶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를 열망합니다.” 그는 ‘모든 병을 치료하거나 암을 격퇴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오늘날 의학이 해야 할 일은 “모든 인간의 삶의 조건을 어디에서나 좀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사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바로 이것이 의학의 존재 이유인 것이다.

 

- 모든 인간의 삶이 어디에서나 좀 더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드는 사명이 의학이 해야 할 일이라면 많은 한의사들은 오늘도 이 의학의 사명에 충실한 하루를 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원장님 덕분에 오늘도 겨우 견뎠어요”라고 말해주는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높은 빈도로 만나고 있다면 의학의 존재 이유를 실천하는 의미있는 의료인의 삶을 하루하루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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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매일 경제가 단독 입수한 손해보험 4개사의 보험금 지급 현황에 따르면, 백내장 수술 보험금 수령 상위 14개 안과는 올 1분기에만 600억원을 챙겼다고 한다. 나머지 안과 900여 곳에 지급된 보험금이 1561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 14곳이 전체 백내장 보험금 중 27.8%를 차지한 셈이다. 최근 몇 년 새 브로커 조직은 1인당 200만원의 수수료를 받으며 조직적으로 환자를 알선해 왔고, 렌즈에 따라 수십만원부터 시작하는 백내장 수술비는 최고 1600만원까지 급등했다(『수상한 백내장 수술, 안과 14곳이 실손보험금 600억 쓸어갔다』 MK뉴스, 신찬옥 기자, 2022 06 06).

 

안과 의사가 브로커들과 짜고 보험사기를 치더라도 환자들이 안과 진료 자체를 외면할 수는 없다. 안과는 그 어떤 다른 의사로도 대체할 수 없는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보험사기를 덜 치는 조금 더 착한 안과 의사를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귀한 포부를 품은 한의학의 모습은?

 

한의학이 서양의 시각에서는 대체보완의학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그 가치가 폄훼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정통 의학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때로는 대체할 수도 있는 분야라는 의미감에 아주 가끔은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했었다. 『병든 의료』에서 지적한 많은 현대 의학의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의료 소비자들은 덜 병든 의료와 덜 병든 의료인들을 찾아나설 것이다. 이렇게 현대 의학의 자화상을 고백하고 스스로를 고발하는 많은 도서들이나 논문들이 쏟아짐에도 불구하고 그 대체제로서의 한의학에 더 큰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덜 병든 의료와 덜 병든 의료인들이 비단 한의계와 한의사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의료 소비자들에게 선택을 받아야만 도제식 의료든, 공감과 연민을 보탠 의료든, 프로토콜에 따른 의료든, 나만의 개성을 갖춘 의료든 실행해 볼 수 있을 텐데, 덜 병든 그래서 더 나은 의료로서 한의학은 당당하게 추천될 수 있을까? 

 

“오늘날 의학의 진보는 자립성 상실과 만성 질환에 시달릴 때까지 우리를 충분히 오래 살게 해주겠다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미심쩍은 선물을 우리에게 선사해주고 있다. 우리는 늙어서 노쇠할 때까지 생존하는 것보다는 좀 더 나은, 더 고귀한 포부를 가져야 한다.” 현대 의학에 대한 신랄한 비판글도 많았지만 304p에 실린 이 문장에 유독 눈길이 간다. 한의학 역시 2022년 오늘날에도 진보하고 있는 것이라면 생존 그 자체보다도 한 단계 더 고귀한 포부를 품어보아야 하지 않을까? 고귀한 포부를 품은 한의학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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