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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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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여의도책방-24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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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새해 첫날의 일출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2022년 새해가 밝았으니 바다에서의 일출은 한 번 봐야하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 들어 지난 주말 부산을 가려고 이른 새벽 공항셔틀을 타게 됐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이어폰으로 자신만의 방송을 듣고 기사님들도 버스에 다른 방송을 트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이 요즈음의 풍경인데 그날은 듣고 있던 팟캐스트(삼프로는 아니다)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버스 안 전체를 울리는 듯한 첼로 연주곡이 꽤 웅장했기 때문이다. 공중파 라디오의 클래식 방송은 옅게 운무가 드리워진 도로의 풍경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고 국내선 정류장을 알리는 방송이 나올 때까지 짧게나마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하차를 하며 살짝 기사님 얼굴을 살펴보니 분명히 환갑은 넘기신 듯한 얌전한 인상의 소유자셨다. BGM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코너링마저 smoothly and perfectly!!!


오영수 배우에게서 느껴진 위대한 항상성과 고결한 도덕성

최근 품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얼굴이 있다. 배우 오영수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의 수상 때문이 아니다. 깐부치킨 광고를 거절해서도 아니다. 단 한 순간도 넘버원으로 추대되는 탑스타인 적 없었던 그가 배우 생활 59년만에 단 한 편의 넷플릭스 드라마로 큰 상을 타시고도 갑작스런 유명세에 본인의 일상을 잃지 않으려고 본업인 연극 무대로 복귀하셨다는 근황 때문이다. 

대학로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역을 연기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혜화역을 오가는 전철에 몸을 싣고 계실 것이다. 나약한 인간을 작은 성공으로 이끄는 유일한 길은 포기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한눈 팔지 않고 본인이 두 발 딛고 서 있는 그 곳을 벗어나지 않는 끈질김을 유지하는 것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계신 이 79세 배우에게서 위대한 항상성(homeostasis)과 고결한 도덕성(morality)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곧 설연휴가 다가와서 그런지, 대 민족명절 시즌만 되면 자동소환되는 칼럼이 하나 있다. 바로 2018년 경향신문에 실렸던 전설의 칼럼 『추석이란 무엇인가』이다. 2022년의 설날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읽기에도 적당한 내용이라 강추하는 바이다. 이 글을 쓰신 서울대 정치학과 김영민 교수는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처럼 아침에 생각해보는 죽음, 1월에 상상해보는 12월, 새해에 떠올려보는 끝마음. 각자의 삶에서 가장 젊은 날인 오늘날 스스로의 늙음과 죽음을 떠올려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끝을 생각하고 걷는 길이라면, 이별을 예상하고 만나는 만남이라면 우리 모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겸손해질 것이다. 특히, 나이먹음을 실감하게 되는 1월이라 건강한 일상을 포함하여 고매한 사회활동까지도 잘 하신다는 여든을 넘긴 수퍼 에이저(super ager)들의 뉴스를 접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가 저 나이에 이르렀을 때에는 어떤 모습일까하는 궁금증과 노인이 되어서도 현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다는 욕심, 거기에 추하게 늙고 싶지는 않다는 두려움까지 뒤범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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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음식 먹지 않기, 매운 음식 안 먹기, 추위 안 타기, 기어서 다니기, 각탕법. 이 다섯 가지만 실천하셔도 여러분을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의 80%는 예방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니시요법이나 자연요법 전문가 혹은 한의사 강사가 백여명의 노인 관객들을 앞에 두고 할 법한 강의같아 보이겠지만 『누구나 알기 쉬운 한약제제 길라잡이』의 저자로 사단법인 배달치유협회, 배달의학협회회장, 춘하추동 16체질 연구회회장, 배달의학힐링센터 원장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있는 한 약사가 주장하는 ‘5대 건강 유지 비법’이다. 이 약사님의 가장 주된 철학은 현대의학과 자연약을 결합한 새로운 의학 개념(배달의학)으로 이 배달의학에 체질의학을 결합하여 ‘치료에서 치유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단위 체인 약국들에 새로운 관점의 한약제제 항바이러스제와 림프순환제제 사례 등을 공유해주고 한방천연물을 기초로 한 건강식품과 화장품을 판매하기 위해 효과적인 약국상담 TIP을 지속적으로 교육해주는 것을 주무기로 2019년 8월 그 당시 5천여명의 약사가 이 배달의학의 실천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약사들의 마케팅으로 활용되는 ‘치유’ 개념…

한의사에게 미치는 영향은?

치유상담 전도사로서의 동네약사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인지 “치료에서 치유로”, “지금 약사님과 치유상담 하세요”라는 광고문구로 도배가 되어 있는 동네 약국들이 꽤 많이 보인다. 개별 질병을 보다 자세히 설명해주고(당연히 의사보다 친절할 것이다) 해당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한약제제와 치료제를 섞어서 처방해주는 컨셉. 자연의학, 통합의학, 한의학에서 현대의학과의 차별화된 개념으로 자주 사용되었던 “치유”라는 단어가 약국의 적극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별다방을 능가하는 동네약국이라는 접근용이성에 약사들 특유의 최강 친화력이 보강된 시너지는 “치유상담” 영역을 어디까지 확장해 나갈까? 또한, 한의사들에게는 미치는 악영향은 없을까?

치유상담을 표방하는 약국들의 입간판을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리사 랭킨(Lissa Rankin)의 『치유 혁명(mind over Medicine)』(시공사. 2014년 4월)이다. 과학적 증거 없이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던 산부인과 전문의였으나 질병을 얻은 후 구멍 뚫린 의료 체계에 낙심하고 심신 통합의학 의사로 변신한 리사는 최고의 의학 치료를 받고도 낫지 않는 환자가 있는 반면, 불치병에서도 기적처럼 회복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인간에게는 상상을 뛰어넘는 자가치유력이 있으며 과학적으로도 그 능력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음을 발견한다. 환자 스스로의 치유력을 돕는 ‘핑크 의료 운동’을 주도하며 의료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온라인 건강 커뮤니티(OwiningPink.com)도 운영 중이다.

 

『치유 혁명(mind over Medicine)』 본문의 일부를 공유하자면 다음과 같다. 

- 중의사와 침구사 교육을 받은 캡척은 대부분의 무작위 대조군 연구가 플라세보 효과 이상을 증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과학자로서 침술을 어떻게 정당화하겠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끝내주는 치유사니까요. 이건 이해하기 어려운 진실입니다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저에게 오면 나을 겁니다. 수천 명의 사람이 그랬죠. 침 때문이 아니에요. 사람이 문제인 거죠.”

- 의사의 낙관성 역시 환자의 치유에 영향을 미친다. 1987년 “스미스 박사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강한 낙천성 덕분이다”라는 말에 영감을 받은 K.B.토머스 박사는 의사의 긍정적인 태도가 환자의 치료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 놀랄 것도 없이 의사의 성품 역시 영향을 준다. <영국 의학 저널>에 발표된 하버드대학의 연구에서는 의사가 ‘따뜻함, 관심, 자신감’을 갖고 환자를 치료하면 플라세보 반응이 44∼62% 증가한다고 밝혔다. 

- 현대 서구 사회에서는 의사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목사나 치료사, 침구사 그리고 기타 치유자의 따뜻한 지원보다는 의사의 따뜻한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 하지만 주술사, 한의사, 전통 치료사에게 치유의 모든 과정을 맡기는 다른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 <웃음의 치유력>의 저자 노먼 커즌즈는 이렇게 썼다. “병을 다스리고, 아마도 병을 이기는 데 주치의가 한 가장 중요한 역할은, 내가 모든 일에서 존중받는 동반자로 느끼게끔 했다는 것이다.”

- 건강이 위기를 맞았다면 세심한 관심과 보살핌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고의 수술이나 가장 유명한 대학 병원의 의사로는 충분하지 않다. 물론 전문적인 지식이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치유 가능성을 최대한 키우고 싶다면 치료자의 진정 어린 관심과 보살핌 또한 필요하다. 

- 침구사인 수전 폭스는 그렇게 협력하는 치료자들의 팀을 ‘치유의 원탁’이라고 부른다. 치유의 원탁은 환자를 담당하는 모든 치료자가 공평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협력 과정이다. 치유의 원탁에서는 치료자가 아닌 환자가 최고의 지휘권을 갖는다. 치료자들은 치유의 원탁에 초청받지만 명령을 내리거나 다른 사람의 조언을 부인하거나 타인을 존중하지 않거나 무엇보다 환자의 소망을 묵살할 권리가 없다. 

- 의사들이 대체요법이나 동종요법을 찾는 환자나 대체요법 의사를 조롱하고 깔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런 적대적인 관계를 보고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들의 말에서 우리 의료 체계가 심각하게 고장 났다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경직된 분위기보다는 좀 더 유연한 의료 체계를 지향한다. 

- 일선 의사들은 흔히 질병과 전쟁을 한다고 생각하는데, 병원에서 전시의 소통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고 검사에 의존하는 것은 환자를 치유하는 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스트레스 반응만 일으킬 뿐이다. 팀이 하나 되어 자기 중심과 경쟁, 불필요한 권력 투쟁 없이 무엇보다도 환자를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면 의료 체계는 훨씬 더 효과적으로 기능할 것이다. 

- 동종요법 치료사가 의사들을 싫어하고 주치의가 레이키 치료자를 돌팔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들이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협력자 팀에 정통 의학의 범주에서 벗어난 치료자들이 포함된다면 서로 존중하며 대화할 의사와 열성이 있는지 그들에게 분명히 물어보라. 그렇지 않다면 엇갈린 조언을 들을 뿐 아니라 자칫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 건강을 스스로 관리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최고의 의료진에게 조언을 구해야 하지만 그들은 보조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치유의 원탁에 의사, 치료사, 침술사, 마사지 치료사, 인생 코치, 어머니 등 도움이 된다면 누구든 초대하라! 이들은 운영위원이자 고문단이며 교육자다. 이들을 현명하게 선택하라. 


치유의학으로 평가받는 한의학, 현재의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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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환자의 의자 높이가 다르고 그래서 의사-환자간 거리두기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대형 병원이 바로 ‘치료’의 대표적인 이미지라면 ‘치유’는 환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바탕이 된 거기에 따뜻한 엄마품 혹은 할머니손의 느낌이 첨가된 뭔지모를 인간적인 냄새가 폴폴 나는 단어였다. 그래서 자연치유니 심리치유니 하는 단어들이 힐링에 이어 건강 섹션의 주요 키워드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약사들의 치유상담, 리사 랭킨의 치유혁명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치유의학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한의학은 오늘날, 어떤 치유력을 선보이고 있을까? 오늘도 한의원을 방문하는 이 많은 환자들은 한의학의 도움으로 스스로의 치유력을 회복하고 각자의 공간으로 무사히 돌아갔을까?  

코로나 핑계로 그간 자주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었던 많은 선후배들이 새해를 틈타 다양한 소식들을 전해왔다. 지난 1월 14일 한의사 국시 출제로 경기도 여주로 출장을 왔다가 광주로 복귀하시는 선배를 오랜만에 만나 내년이면 우리가 만난 지 30년이 되는 해라며 서로의 나이듦을 축하했다. 요양병원 병원장으로 부의반열에 올라섰을 것으로 추정되는 병원 제자는 다가오는 삼일절 결혼을 한다는 소식(Welcome to hell!!)을 전해왔고 전문의 취득 이후 모 한의원에서 부원장으로 근무하며 장거리 운전을 감행해오던 다른 제자 한 명은 한의대 조교수로 발령을 받았다는 기쁜 소식도 전해주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광명 개원가에서 성실하게 진료를 이어오던 한 선배는 몇 달 전, 요양병원 봉직의로 자리를 옮겨 진정한 워라밸과 주 5일의 복지를 만끽하고 있다는 최신 근황을 알려왔다.  


희망차고도 부담스러운 ‘1월’…올해 모든 날도 ‘일일시호일’로!

1월이라 희망차고 1월이라 부담스럽다. 버라이어티 그 자체의 12개월일 수도 있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일 수도 있기에 뭔가 올해는 달라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새집증후군과 유사한 비정상적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한의사로서의 삶과 그와 동떨어진 완벽하게 다른 사적이고 은밀한 또다른 삶을 동시에 가꾸며 올해가 끝날 때까지 건강하게 걸어봐야지 다짐하며 1월에 어울릴만한 주문을 하나 외워본다. 일일시호일, 일일시호일.. 유방암으로 10년 넘게 투병과 연기를 병행해오다 지난 2018년 9월 세상을 떠난 일본의 전설적인 명배우 키키키린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일일시호일』은 일본의 다도를 다룬 매우 아름다운 영화이다. 영화에는 “이렇게 같은 일을 매년 반복할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싶어요”, “여름에는 찌는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매일이 좋은 날이란 그런 뜻이던가”, “세상에는 금방 알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이 있다. 금방 알 수 있는 건 지나가도록 두면 된다. 그러나 금세 알 수 없는 것은 오랜 세월을 거쳐 조금씩 깨달아간다” 등의 명대사들이 끊임없이 흐른다. 

 

영화 속 키키키린의 대사를 차용하여 “같은 사람들이 여러 번 치료를 하러 들러도 같은 날은 다시오지 않으니, 그들의 생에 단 한번 뿐인 치료다..라고 생각하고 임해 주세요”라며 나를 다그쳐본다. 2022년 365일 모든 날들이 일일시호일, 일일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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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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