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뇌과학 연구원, 공중보건의, 한방병원 부원장, 무역회사 근무 등 한의사라면 십중팔구 걸어가는 임상의 길뿐만 아니라 ‘다양한 길’을 걸어온 서울 강남구한의사회 박재현 기획이사. 그가 최근에는 경기고 우수학생들을 대상으로 ‘경기 창의인재 아카데미’를 진행해 관심을 끌었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경희바름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전일제 연구원으로 들어가 뇌과학 분야 연구도 해보았고, 공중보건의사와 부원장 시절을 거쳐 개원을 했다가 잠시 한의원을 내려놓고 무역회사에서 다 년간 일도 해보았다.
현재는 제가 잘 치료할 수 있는 환자들이 있는 지역에 한의원을 열어 강남구 한의사회 회무와 소속돼 있는 학회 일도 함께 하며 진료를 하고 있다.
Q. 졸업 후 대학원에서 뇌과학 분야 연구원으로 활동하다 갑자기 무역업으로 전직을 했다.
연구원 시절에는 세포실험, 동물실험, 임상시험 모두 참여해 봤는데 어떤 치료법은 정말 효과가 좋았고, 어떤 치료법은 기대보다 효과가 크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검증의 중요성과 한의학의 표준화, 객관화의 필요성을 배울 수 있었다. 해외 학술대회 참가와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과 만나는 시간도 즐거웠지만, 주로 연구실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이 평소 사람을 만나는 일을 좋아했던 저에게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람을 직접 치료하는 임상의의 길을 선택했다. 개원을 하고 자리를 잡아나갈 무렵 저의 부친께서 망막출혈로 시력이 안 좋아지면서 긴급하게 사업을 도와야 하는 상황이 돼 무역 분야 일을 하게 됐다.
급하게 무역협회 교육만 받고 바로 업무에 들어갔는데, 연구원으로서 경력이 있었기에 서류작업, 외국인과의 서신교환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바이어 상담 및 해외 출장도 해외 학회에서 포스터 발표 및 질문 답변을 해보았던 경험이 있어 빠르게 적응했다. 무역회사에서 주로 건설 장비 부품을 수입, 수출했는데 환자 대신 건설 장비의 부품을 공급해 건설 장비를 치료한다는 마음으로 일을 했다.
3년 동안 열심히 무역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초등학교 때 저의 몸을 뒤덮었던 피부질환 건선도 재발하더라. 그래서 휴식기를 갖게 됐다. 해외를 많이 오고가고 상대방 국가의 시차에 맞춰 일을 하면서 내 몸의 면역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 자신을 치료하며, 한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본업인 한의사로 돌아오게 됐다.
Q. 다양한 경험들을 살려 최근 경기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창의인재 아카데미’ 강연을 했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다른 지리적, 경제사회적 차이로 다르게 발전해 왔다는 것을 인문학적으로 비교하고, 동양의학 기본인 기와 음양이 허구가 아닌 어떤 현상임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자 했다.
아울러 수험생 대표질환인 통증(편두통, 긴장성 두통, 복통, 위경련 등), 불면증, 상사병, 변비, 과민성 대장 증후군 등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생활습관 개선 방법과 한의학적 치료 방안 등을 학생들에게 소개했다.

Q. 학생들에게 꼭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한의학은 몸이 아프다는 현상을 제대로 바라보고, 근본 원인을 찾아 치료하며, 치료 효과가 있는 실용적인 의학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최신 물리학과 최신 뇌과학을 공부해보면 이들 학문들도 점점 한의학적인 관점과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고전 물리학은 ‘어떤 물질의 움직임이 계산에 따라 정확하게 계산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최신 물리학은 양자역학으로서 ‘어떤 물질은 확률적으로 존재하며, 어느 위치에 존재할 확률이 높을 뿐이다’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빛뿐만 아니라 질량이 있는 입자도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성을 갖는다는 점이 인정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미노산 15개로 이루어진 생체분자도 입자이면서 파동성을 갖는다는 점이 실험 결과로 확인됐다.
따라서 한의학의 기본 개념인 ‘기(氣)’라는 것은 어떠한 가상의 개념이 아닌 물질이나 빛의 입자로서 파동성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란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어 과학적으로도 이해가 가능하다. 물론 이 부분은 제 생각으로 좀 더 검증이 필요하지만, 한의학이 관념론일 뿐이란 생각의 틀을 깨주는 큰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최신 뇌과학에서도 감정을 느낀다는 것에 대해 먼저 장부에서 어떠한 이미지가 생긴 뒤 그것을 뇌에서 기억·감정과 결합해 느낌으로 바뀌는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장부에 감정을 배속하고 그 장부를 치료해 정신적인 문제를 치료한다는 한의학적 접근방식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법이라 볼 수 있다. 최신의 물리학과 뇌과학을 공부하다 보면 옛 의가들의 관찰력과 어떤 현상을 바라보는 직관력은 매우 뛰어났다는 점에 놀라게 된다.
Q. 지난해에는 ‘한-UAE 한의약 세미나’에 참가해 현지 의료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진행했다.
현지 의사들을 상대로 영어로 강의를 해야 했는데 2개월이 채 안 되는 준비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현지 UAE 보건청 직원들도 침치료와 추나요법을 너무 좋아해줬고, 강의를 듣는 의사들도 추나요법, 침치료, 매선요법 등에 관심이 많았다.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하루하루 배우고 실천하면 기회가 온다.” 저는 어떤 일이라도 해 본 후에 그 일을 지속할지 안할지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해보지도 않고 할 수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커리어를 경험하고 지금의 위치에 와 있는 것도 이런 신념 덕분이다. 지금도 매일 한의학을 비롯한 의학, 경제, 교육 등 여러 분야의 지식 습득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꾸준히 배운 뒤 이를 하나씩 실천하고 주변에 이야기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찾아오게 된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K-pop', 'K-contents'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K-medicine’인 한의학이 해외로도 많이 진출해야 한다.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고, 어느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면 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