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02 (월)
박종훈 대한한의사협회 전 보험부회장
지난 1일부터 한의과의 3차원 맥 영상검사가 건강보험 급여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지난 협회에서 보험 회무를 맡아 심평원에 해당 검사기기의 기존 기술 여부 확인부터 최종적으로 수가 재분류가 결정되기까지 업무에 관여하면서 느낀 바를 토대로 이번 급여화의 의의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한의 급여 검사행위 감소 추세 속 희소식
한의계는 1994년 양도락과 맥전도, 1997년 경락기능검사 도입 이후 이렇다 할 신규 검사기기의 개발 없이 시술료의 빈도를 증가시키면서 건보 재정의 파이를 유지해 왔으나, 이마저도 의과, 치과의 급여화에 밀려 2010년 초반 4%대였던 건보 점유율이 현재 3.5% 정도로 줄어든 상황이다.
한의계 파이가 줄어드는 가운데 검사료의 사용량은 더욱 급격히 줄었다. 지난 10년간 한방검사료의 연도별 총사용량을 살펴보면, 매년 평균 8.0%씩 감소해 2010년 118만5544회에서 2020년 51만2943회로 10년 사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진료금액의 하락 수준은 더 가파르다. 매년 평균 12.3%씩 감소해 2010년 약 78억원이던 진료비가 2020년 약 21억원으로 줄었다.
전체 한의 급여비 중 검사료는 0.1% 정도에 불과하다. 위의 10년간 통계는 그 작은 비중에서조차 매년 사용량과 진료비가 감소하고 있다는 위기 상황을 나타낸다. 진찰과 시술을 이어주는 검사료의 수가가 부재하다 보니 한의사의 고된 업무량에 비해 수가 보상은 항상 부족했고, 똘똘한 검사기기의 갈망이 증대될 수밖에 없었다.
1994년 급여화된 맥전도의 수가는 당시 의과의 심전도 상대가치점수와 동등하게 신설됐다. 27년 전 맥전도와 같은 점수였던 심전도는 2021년 현재 총 7종의 검사행위로 재분류돼 있고 수가는 7000원대(표준12유도)에서 4만원대(24시간 홀터기록)에 이른다. 반면 맥전도의 경우 2008년 1차 상대가치 개편 때 상대가치점수가 다소 조정되면서 매년 환산지수 상승에도 불구하고 수가가 크게 상승하지 못했으며 이번 3차원 맥 영상검사 급여화를 통해 27년만에 수가 재분류가 이뤄졌다.
한방검사료의 사용량이 감소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임상적 유용성이 검증된 기기의 도입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잘 사용하던 기존 기기들도 영세한 업체들의 서비스 지원이 중단되면서 임상의들은 손을 놓게 된다. 새로운 기기 개발 및 급여 등재가 사용량 증가와 함께 선순환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한의계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런 상황에서 ‘3차원 맥 영상검사 급여화’는 매우 반가운 희소식이다. 국제표준 ISO 18615의 기준을 만족하는 3차원 측정을 통해 임상 현장에서 맥진의 유용성을 증대시키고 보다 객관적인 한의학적 진단에 도움을 줄 것이다. 신규 검사기기가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에서 급여화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적 검증 절차와 위원회의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이 검사기기는 다수의 연구논문을 바탕으로 어려운 절차를 통과한 검증된 기기라는 점에서 한의계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에 수출되는 동일 장비는 중의가 아닌 서의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해당 업체가 오랜 시간 대한한의진단학회, 대한한의사협회와 함께 한의 급여 등재를 위해 작업해 가능했지만, 업체의 이익만 따졌다면 더 큰 의과 시장에서 활용되도록 의과 검사료로 급여화할 수도 있었던 장비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상대가치 총점 ‘순증’
우리나라 건강보험 제도는 2001년 도입된 상대가치제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상대가치점수의 특성상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불균형을 조정하기 위해 5년마다 한 번씩 이를 개편하는데, 재정 중립을 위해 한의과 전체 상대가치 총점(상대가치점수 총합에 각각의 빈도를 곱하고 종별가산을 반영하여 합산)을 고정하고 그 안에서 항목간 수가를 조정하게 된다. 상대가치점수를 어떻게 조정하더라도 한의계 전체 파이는 일정하게 유지되는 개념이다.
이런 제도 하에서 건강보험 재정의 한의계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총점 자체를 키우는 ‘순증’이 필요하다. 상대가치 총점을 순증하는 방법은 비급여의 급여화, 신의료기술 급여 등재, 기존 행위 수가 재분류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의료기기 개발을 통한 신의료기술 도입 및 수가 재분류는 건강보험 재정의 파이를 순수하게 키우는 방식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 이번 3차원 맥 영상검사 급여화는 고정된 총점 내에서의 수가 조정이 아니라, 새로운 의료기기 개발을 통해 기존 맥전도 수가를 재분류해 높은 수가 항목을 신설함으로써 완전하게 상대가치 총점 순증을 이뤄낸 것이다.
첩약 심층변증방제기술료 수가 인상의 근거
현재 진행 중인 첩약시범사업 수가 중 ‘첩약 심층변증방제기술료’의 상대가치점수는 372.16점이다. 이 상대가치점수는 첩약 진료시 소요되는 급여 검사료(양도락, 맥전도, 경락기능검사)의 상대가치 점수가 포괄돼 있다. 3차원 맥 영상검사 역시 첩약 심층변증방제에 있어 아주 유용한 맥전도 검사의 한 종류이므로 시범 수가에 이를 반영할 명분이 충분하다. 이런 점에서도 첩약 진료시 3차원 맥 영상검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상 3차원 맥 영상검사 급여화의 세 가지 의의를 살펴봤다. 세 가지 모두 중요한 가치이지만, 실제 임상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공염불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우리나라 건강보험 체계의 어려운 검증 과정을 통과한 기기인 만큼 기존 검사기기보다는 그 임상적 유용성을 임상의들이 더 빠르게 체감할 것이다. 이로써 자연스러운 사용량 확대가 일어나고 한의사의 정량적 생체 지표 측정이 사회적 통념이 되어 향후 다양한 의료기기 개발과 도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