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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2월 15일 (일)

WHO-IST와 ICD-11-26

WHO-IST와 ICD-11-26

“향후 ICD-11-26의 개정이 WHO-IST를 무시한 채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무리하게 진행된다면
전통을 중시하는 국내외 한의학계에서 커다란 혼란과 분란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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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훈 단국대학교 교수



며칠 전, SCI 저널 Integrative Cancer Therapies에 “A Proposed Revision of the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11th Revision, Chapter 26 (ICD-11 26장에 대한 개정 제안)”이 실렸다. 작년 12월 초 투고해서 약 두 달 동안 리뷰와 수정을 거쳤다.

필자는 작년 9월부터 Emory의대에 파견교수로 와 있는데, 대학 규정상 국제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하는 의무가 있기도 하고, 또 꼭 다루고 싶었던 내용이었다. 

작년 5월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한의학의 병(病)과 증(證)이 포함된 ICD-11이 승인되었다. 이는 국제기구에서 전통의학의 역할을 최초로 인정한 1978년의 Declaration of Alma-Ata 이래 한의계로서는 역사적인 쾌거이다. 한의학이 이제 인류 보편 의학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동시에 국제 의료사회의 엄정한 검증을 거치는 단계로 나아간 것이다.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양의계의 차가운 시선과 비판이 있다.


중국이 제정한 표준용어들로 ICD-11 26장 채워갈 것


전통의학이 ICD-11에 포함되면 전통의료서비스의 이용 규모가 파악되고 국가적으로 국제적으로 그 형태, 빈도, 효과, 안전성, 품질, 결과와 비용 등이 측정되며; 전통 의학에서의 임상, 연구 및 질병율의 보고에 대한 국제적 비교가 가능해지고; 전통의학 진단 데이터의 디지털화는 EHR (Electronic Health Record) 시스템으로의 통합을 용이하게 하며; ICD-11의 다른 챕터와 병용함으로써 유해 사례보고를 강화하고, 전통의학을 의료보험 보상 및 상환 시스템에 통합할 수 있으며; 전통 의학 전반을 국제 규범이나 표준과 연결할 수 있다. 

ICD 개정은 WHO 주도로 해당 전문가그룹에서 진행하지만, 정치적으로 또 현 상황으로 보아 이대로 가자면 ICD-11 26장은 분명 특정 국가의 주도로 개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개정안을 WHO에 바로 제안하는 것보다는 국제학계에 내놓아 더 많은 전문가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필요가 있기 때문에 논문의 형식을 빌어 권위있는 국제학술지에 낸 것이다. 

중국측의 의도는 이미 작년 2월 마카오의 WHO전통의학협력센터에서 한국과 일본을 제외한 전세계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한의학분야의 표준용어에 관한 전문가회의를 개최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이대로 간다면 그들에 의해 제정된 표준용어들이 앞으로 ICD-11-26장을 채워갈 것이다. 


중국측과 국제표준용어 관련 몇 차례 실랑이 벌여


필자가 2003년 WHO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추진한 전통의학 표준화 사업의 주요 성과의 하나로 ‘WHO International Standard Terminologies o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Western Pacific Region (WHO-IST)’가 탄생하였다. WHO-IST는 준비 과정의 막바지에 중의학의 영향을 우려한 일본측의 반대로 무산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으나, 천신만고 끝에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 실린 한자가 간체자가 아닌 번체자였기 때문에 출판 후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었다. 2008년부터 WHO의 모든 문서는 중국어의 경우 간체자로 표기해야 한다. 그러나 그 책은 2007년 출판됐었다. 

당시 세계중의학회연합회(World Federation of Chinese Medicine Societies, WFCMS)에서는 오랫동안 전통의학 국제표준용어를 자체 개발해 왔고, 그런 경쟁 국면에서 필자는 중국측과 주도권 관련하여 몇 차례 실랑이를 벌였었다. 

결국 WHO-IST가 먼저 발표되었고 WFCMS의 표준용어는 WHO-IST를 중심으로 하는 것으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후에도 그들의 표준용어를 ISO/TC249로 들고 갔고, 이어 작년에는 마카오까지 가지고 와서 기어코 그들이 만든 표준용어를 세계화하려 애쓰고 있다. 


발표 논문, 향후 ICD-11-26 개정의 주요 참고자료


WHO-IST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다수 전문가들의 4년에 걸친 공동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세 차례의 전문가회의에 이어 2년간 세 차례에 걸친 전 세계 영어권 전문가들의 교정 등 편집작업을 통해 완성되었다. 모두 3,259개의 전문용어가 실려 있고, 한중일 삼국의 153개 문헌을 망라하고 있다.  

WHO-IST는 WHO 출판물 가운데 최대 부수와 최장기 판매를 기록하였으며, 중국어 월남어로 일찍이 번역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도 당시 협회 학회 한의학연구원에서 공동으로 한국어 출판을 한다고들 큰 소리를 쳤으나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

주지하다시피 ICD-11-26은 WHO-IST에서 기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WHO-IST는 전통적이고 관행적인 표현을 중시하고 있으며, 실제 임상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표적인 처방을 가지고 있는 증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ICD-11-26의 개정은 반드시 WHO-IST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필자의 논문은 ICD-11-26의 구조, 순서, 영문 번역을 수정하고 더 필요한 증을 추가한 것으로, 향후 진행될 ICD-11-26 개정의 주요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만약 향후 ICD-11-26의 개정이 WHO-IST를 무시한 채 특정 국가를 중심으로 무리하게 진행된다면 전통을 중시하는 국내외 한의학계에서 커다란 혼란과 분란을 일으킬 것이다. 

WH0-IST와 ICD-11-26은 마치 母子관계와도 같다.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키우는 것 역시 중요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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