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시에 파견된 중의학 전문가들이 중의 진료지침의 초안과 개정안을 작성했다. 각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폐렴 진료방안’ 3판과 4판에 포함되었다. 현지 환자들을 직접 진찰하고 도출해 낸 지침이기에 혹 정답은 아닐지라도 중요한 정보임에는 틀림이 없다.
더욱이 더 많은 환자를 진찰하고서 만든 개정안이 초안과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전문가들의 사유과정을 엿볼 수 있는 큰 공부가 될 것이다. 비록 짧은 견해이지만 온병학적 관점으로 해당 지침에 대한 간략한 해설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일단 진료지침에서 처음부터 신종 코로나를 역병(疫病)의 범주로 소개했다. 초안에서는 병기(病機)의 특징을 습(濕), 열(熱), 독(毒), 어(瘀)라고 설명하다가 개정안에서는 한습(寒濕)을 언급하면서 한습역(寒濕疫)이라 규정했다. 초기 증상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습(濕)을 언급하고 있다.
외부의 습사(濕邪)를 감수(感受)했을 때 초기 발열 양상이 주로 저열(低熱)이나 체표에는 열감이 느껴지지 않는 형태로 나타나고 권태(倦怠), 핍력(乏力), 완비(脘痞) 등의 증상과 니태(膩苔)를 관찰할 수 있다. 중의학 전문가들이 초기 단계 환자들의 증상을 종합하며 병인(病因)을 도출했기에 습(濕)과 관련된 증상이 상당히 많이 관찰됐을 것이라 추론된다.
또한 발병 초기에 공통적으로 달원음(達原飲)의 주축이 되는 약재인 빈랑(檳榔), 초과(草果), 후박(厚朴)을 활용한 점에 주목해볼만 하다. 달원음(혹은 달원산)은 명말(明末)의 의가인 오우가(吳又可)가 막원(膜原)에 잠복된 사기(邪氣)를 흩어낼 목적으로 창방한 것이다. 오우가는 막원을 사기의 잠복처이자 다양한 병증으로 전환될 수 있는 핵심으로 보고 온역(溫疫) 치료에 달원음을 중용했다.
막원과 관련된 증후를 언급한 의가들 역시 대체로 막원을 서둘러 치료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고 거기에 달원음을 기본방으로 활용하였다. 그런 의가들이 제시한 병인은 대체로 습(濕) 및 예탁(穢濁)한 사기 등이었다. 사스 치료시 습(濕) 관련 증후가 나타나는 케이스에 막원을 활용해 치법을 제시한 연구도 있었다. 막원 관련 증후에 대한 의사학적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온역이나 탁한 사기로 인한 외감병 초기에 달원음을 활용했던 전례를 통해 관련 논의가 현대의 신종 감염병 대처에 반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논의는 진료지침 개정안에서 관찰기 환자 중 위장이 불편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다양한 제형의 곽향정기산을 추천한 것과 관련이 깊다. 오우가의 막원 관련 병기는 사기가 막원에 잠복되어 기기(氣機)의 소통을 막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막원증(膜原證)을 언급했던 다른 의가들도 비슷한 인식이 있었고 막원에 병이 들기 전 단계에 방향성(芳香性)의 약으로 사기를 흩어줘야 한다는 인식 또한 일반적이었다. 한습역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 중 습(濕) 관련 증상이 약간 드러날 경우 미리 약을 씀으로써 피해를 최소화 하려는 맥락으로 보인다.
초기 증후가 제대로 치료되지 않은 경우나 병정이 심한 경우의 증상을 종합하여 다음 단계에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에는 다소 분명한 발열 증상이 보이고 변비가 있으며 황태(黃苔)가 나타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초기에 병인으로 봤던 한습(寒濕)이 열화(熱化)된 것으로 추론된다. 그리고 호흡기 증상이 심해지고 대변이 막히는데, 이것은 폐기(肺氣)가 선포(宣布)되지 않고 부기(腑氣) 또한 막힌 경우로 볼 수 있으므로 기기(氣機)의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더 위중한 단계로 진행할 수 있다.
그런 인식에서 선백승기탕(宣白承氣湯)을 기본적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초기 단계에서 해소되지 않은 막원의 기기(氣機)를 풀어줄 목적으로 달원음의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
위중한 단계는 기록된 증상으로 보건대 중의학 전문가들이 증상 수집을 했던 중환자실 환자들로 보인다. 호흡도 힘들고 정신까지 혼미해 극도로 위중한 상황이기에 내폐외탈(內閉外脫)이라 표현하고 있다. 이때는 다소 치료 방향이 상반되어 보이는 회양제(回陽劑)와 개규제(開竅劑)를 함께 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리고 다행히 이런 위중한 단계까지 이르기 전에 회복되더라도 병을 앓는 과정에서 몸의 전반적인 기능이 저하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회복기에는 폐(肺), 비(脾)의 기(氣)를 완만하게 보하는 약으로 조리하도록 했다.
이상은 중의 진료지침을 토대로 실제 환자들의 병정과 치료방향에 대해 풀이해본 것이다. 중의 진료지침도 일종의 추론으로 볼 수 있고 본문의 해설하는 내용 역시 추론의 추론이기에 당연히 탁상공론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탁상공론을 통해서라도 한 가지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한다.
외감병을 치료할 때 초기 단계에서 치료가 잘 이루어지면 더 나아가지 않거나 이후의 예후가 좋다는 것이 한의학에서의 일반적 인식이다. 역병(疫病)은 워낙 전염성과 위해성이 크다보니 전염을 막는 데에 주로 주목하게 되는데, 이 또한 외감병의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것을 전제로 하면 적시에 병기를 파악하고 초기 단계에 한의학적 치료 행위가 반영되어야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당장 한의계가 감염병 치료에 접근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례가 어떤 방향으로든 큰 경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한의계는 차근차근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서 질병 단계별로 중서의 결합 치료 효용성을 평가해 봄으로써 앞서 세운 가설을 검토해 보는 시도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더불어 한의사 그리고 한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온역, 온병에 대한 교육도 꾸준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감염병은 예고 없이 다가올 것이다. 철저히 준비되었느냐에 따라 감염병에 대한 한의계 참여의 길이 갈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