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9월. 과천 정부종합청사 앞에 운집한 전국의 한의사들은 ‘한약학과 설립 촉구 및 약사한약조제시험 관련 비상 결의대회’를 갖고 한약분쟁에 임하는 결연한 투쟁 의지를 ‘삭발’로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 누가 강제하지 않았던 자발적 삭발의식에 전국 회원들이 너도나도 동참했다.
전문 직능단체 구성원 전체가 이같은 삭발의식에 참여한 예는 사상 유례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자발적 참여가 가능했던 데에는 약사들의 한약 강탈을 결코 두고 볼 수 없다는 전국 한의인들의 분명한 목표 공유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강력한 내부의 혼연일체가 있어 가능했다.
한약분쟁의 결과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이를 바라보는 시각마다 다소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그 과정에 있어서 만큼은 모두가 동의하는 대목이 있다. 바로 전체 한의인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때 투쟁에 나섰던 많은 회원들은 한의원과 가정에는 적지 않은 피해를 끼쳤지만 싸움에서 만큼은 정말 여한이 없었고, 신명나게 싸웠다고들 말한다.
그 후 17년이 흐른 현재. 한의계는 또 다른 전선(戰線) 앞에 서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목표는 똑같다. 한약의 독점권 확보다. 다만 그 대상이 의사, 제약사, 정부기관 등 여러 곳으로 달라졌다.
이처럼 전선이 확대됐다는 것은 지난 한약분쟁 때보다 더 많은 품을 필요로 하고, 사력을 다해야만 한다는 점을 뜻한다. 이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내부 구성원들의 인식 공유와 일치단결이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어떻게 인식을 같이 할 것이며,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서기 위한 필수조건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그와 같은 해답이 임시총회 이후에는 명확히 정리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