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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신미숙 교수

신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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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3



‘저녁이 있는 삶’은 민주통합당의 손학규 의원이 대선후보가 되겠다고 출마를 선언하며 내걸었던 슬로건(slogan)이다. 비록 대선후보로 선출되지는 못했지만 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는 대한민국의 사회에 적잖은 반향(反響)을 일으켰다. 저녁밥 한 끼 못 먹고 사는 사람들은 많지 않은 요즈음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저녁’이 그냥 ‘밥’이 아닌 까닭에 이 구호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共感)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저 ‘밥벌이’에 몰두한 나머지 소소한 저녁시간의 여유마저 상실하고 살아왔던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와 자책을 느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성공회대 조효제 교수는 <한국일보>에서 “천편일률적이고 진부하고 엄숙주의에다 도덕주의로 범벅이 되곤 했던 정치 구호가 비로소 인간의 숨결을 찾은 듯하다. 직관적으로 가슴에 와닿으면서 시적인 울림이 있는, 독특한 발상이다”라며 “적어도 경제, 복지 이슈만 놓고 보면 이번 대선은 ‘저녁이 없는 삶’이냐 ‘저녁이 있는 삶’이냐의 구도로 진행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라고 전망하기도 했고, <경향신문>의 한 칼럼에서는 “손학규는 그저 그런 이미지의 정치인이었는데 ‘저녁이 있는 삶’은 애잔하다 못해 적어도 그가 어떤 정치인인지 구글링하게 만들었다”라며 세간의 반응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임상 한의사들에게도 이 ‘저녁이 있는 삶’은 맘먹고 꾸어야 하는 꿈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여기저기 야간진료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볼 때마다 “참, 열심히들 사는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월화수목금 11시까지 진료라니, 허참… 저렇게까지 무리해야 하는 걸까?”하는 짠한 마음도 감출 수 없었다.



한 유명한 사진작가가 “월수금 주 3일은 일하고 + 화목 주 2일은 공부하고 + 토일 주말에는 신나게 논다”는 것을 삶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라고 말했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었는데 아무나 이렇게 살 수는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고 보니 이 ‘저녁이 있는 삶’ 여섯 글자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슬로건임을 알 수 있었다.



대선후보로 나섰던 손학규 의원의 15년 전 즉, 1997년의 그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이 시기 다름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다(1996년 11월부터 1997년 8월까지). 1996년에서 1997년으로 이어지던 이 시기, 두 번에 걸친 한약분쟁으로 전국 한의대생들의 유급이 최종 확정되고 97학번 새내기들은 유급당한 96학번 선배들과 한 학년에 재학을 해야 했던 참으로 통탄스런 시기이기도 했다. 1997년을 떠올리니 그 당시 새내기였던 몇 친한 후배들과 상경하던 버스에서 나누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생각난다.



<응답하라 1997>이라는 케이블채널(tvN) 드라마가 꽤 재미있었나 보다. 이메일 확인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은 들어가 보게 되는 주요 포털의 연예란은 한동안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회별 주요 내용 동영상과 주인공들에 대한 연기평, 배경음악 이야기, 인기배경에 대한 평론가들의 평론까지 이 드라마에 관한 기사들로 넘쳐났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인 1997년에 10대 시절을 보냈고 2012년 30대 초반이 된 주인공들의 사랑에 대한 회상이 이 드라마의 주요 내용이라고 한다.



서른만 넘어도 추억이니 회상이니 떠올리며 어제를 복기(復棋)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리라. 케이블채널의 드라마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건 이 드라마의 배경이 된 1997년을 열렬하게 기억하고 가슴에 품고 있었던 30대 초반들의 뜨거운 지지가 있어서 가능했던 것 아니었을까?!

1993년 한의대에 입학하여 ‘새내기’ 소리를 들었던 시절이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내 나이 열아홉이었다. 2년 후면 불혹(不惑)의 반열에 올라 중년이니 갱년기니 운운하며 나이 좀 먹었다고 얼마나 엄살을 떨고 있으려나? 성장을 멈춰버린 상어른처럼 ‘에헴’하며 아는 척은 다 하고 “요즘 것들 &#63584;n.&#63584;n.&#63584;n.”하며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그런 불혹여인이 되지는 말아야지 하며 다시 한 번 굳은 다짐을 해본다.



마흔을 앞둔 삼십대 후반들에게도 <응답하라 1993>의 뜨거운 추억들이 왜 없었겠는가?! 그러나 나의 1993년을 회상해보니 새내기의 낭만, 캠퍼스의 열정, 동아리, 배낭여행 이런 것들 대신 상경투쟁과 경희대 집회, 가두시위, 과천 보건복지부(그 당시는 보건사회부) 앞마당 점거 등등 어색한 단어들에 점령당하기 일쑤였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소위 ‘데모’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색하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투쟁으로 인한 전국 한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사태, 그 결과로 1992학번부터 1996학번의 한의대생들은 7년씩이나 학교를 다니게 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투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왜 그 당시 한의사들은 가만히 있는데 학생들만 이렇게 피해를 당했나 싶어 억울하기도 하고 속도 많이 쓰리다. 지금 부산대 학생들이 이런 일로 수업을 거부하고 삭발을 해가며 투쟁을 한다고 거리로 나선다면 선생 감투 달고 있는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한의대생들의 투쟁에 대한 기록은 간략히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1993년 1차 한약분쟁은 약사법 시행규칙 제11조 제1항 제7호의 ‘약국에서는 재래식 한약장 이외의 약장을 두어 이를 청결히 관리할 것’이라는 약사의 한약취급금지 조항을 보건사회부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여 1993년 3월5일 공포되면서 약국에서도 한약장을 설치할 수 있다, 약사도 한약을 임의조제할 수 있다로 해석되며 전국적인 한의대생들의 데모를 야기하게 된다.



그 이후, 1995년 2차 한약분쟁은 1995년 9월16일 보건복지부가 경희대와 원광대에 정원 20명으로 약대 안에 한약학과를 둔다는 안을 발표하면서 야기되는데, 한의대 학생들은 한의대내 한약학과 설치, 한의약법 제정, 한의약정국 설치 등을 주장하며 수업 거부에 돌입하였고 1년 6개월간 지속된 투쟁의 결과, 전국 한의대생들이 집단 유급을 당하게 된다.



첫 한약분쟁으로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고 이젠 이미 고어, 사어가 되어버린 더 이상 인기를 되찾기 힘들어 보이는 ‘한약’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저렇게 투쟁을, 왜 했었던가 하는 회의감마저 희미해져 버린 느낌이다. 이젠 ‘천연물신약’이라는 ‘한약’의 2012년판 신조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고 한의대생들의 데모행렬 대신 한의사들의 1인 시위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9월 14, 15, 16일 3일간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제 16회 ICOM(국제동양의학학술대회)이 있었다. 1만3000여명의 한의사들이 모인 것으로 집계되어 집행진측에서는 참석률 측면에서는 그나마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진행과정에서 지방에서 주말진료를 해야 하는 바쁜 임상가들을 서울에까지 불러서 4시간을 머물러야 보수교육받은 것으로 인정해주는 꼼수를 부렸다는 비판도 많이 있었고 세부적인 학회의 일부 세션은 따로 참석비까지 징수하여 몇몇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번 학회가 그저 좋았다. 논문 발표의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좋았고 졸업 이후 만난 적이 없었던 학교 선배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학부 때 양방진단학을 가르쳐주신 원광대학고 김동웅 교수님도 눈물나게 반가웠고 부산대 근무하며 부산에서 만나 뵙고 인사를 나누게 된 발효한약 전문가 최영식 원장님도 서울에서 뵈니 더더욱 반가웠다.



임상한의사들에게 이런 학회 따위가 무슨 의미랴?! 보수교육 평점만 채우면 되지…뭐, 이딴 걸 서울에서 해서 지방 사람들 이리 고생을 시키나…푸념할 수도 있겠지만 대만, 중국, 일본 등의 침구사, 중의사들 모이는 학회를 한 번이라도 참석해 본 사람들이라면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진행되는 학회장의 그 진지한 분위기와 높은 참석률을. 그 참석자 대부분이 학교의 연구자들보다는 임상가이다. 그런데도 왜 유독, 한국 한의사들은 이런 학회 참석을 경시하는 풍토를 가지게 되었을까? 우리는 왜 이런 국제적인 ICOM을 임상한의사들 모두를 위한 축제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행사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생산적 비판을 더해 우리 모두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2012년 10월. 바야흐로 대선정국이다. 정치만이 잇아이템인 계절이다. 어떤 대선후보는 ‘과거’보다 ‘미래’만 내다보자고 하고, 어떤 대선후보는 ‘과거’를 잘 정리해야 ‘미래’도 있다고 말한다. 또 어떤 대선후보는 ‘혁신’과 ‘변화’만이 참된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고 강변한다. 1993년 한약분쟁은 우리의 과거였다. 과거의 역사로만 묻어둘 것인가? 혁신과 변화를 더해 2012년 아니 2020년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열어갈 것인가?



저녁이 있는 삶과 더불어 축제가 있는 삶, 추억이 있는 삶을 꿈꿔보고 싶다. 1993년 투쟁에 참여했던 많은 한의사 선후배님들과 그 꿈을 함께하고 싶다. 20년 전 투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은 20년 후 우리의 어떤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가? 저녁이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오늘날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가?



<응답하라 1993, 투쟁의 주역들이여!!

행동하라 2012, 미래의 주역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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