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10월10일 오후 3시 昌慶苑에서 있었던 행사
晴崗 金永勳 先生 文化勳章 褒賞記念祝賀宴
1963년 10월10일 오후 3시에 창경원에서 거행되었던 청강 김영훈 선생 문화훈장 포상기념축하연에 대해서 『대한한의학회보』제1권 제7호(1963년 11월20일 간행)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1963년에 광복절을 기념하여 정부에서는 대한민국건국축하식전에서 교육, 학술, 예술 등 17개 부문에 걸쳐 267명의 유공인사들에게 건국국민훈장을 수여하였는데, 이 때 보건 부문에 수상자로 선정된 11명 가운데 晴崗 金永勳(1882~1974) 先生이 포함되게 된다. 호가 晴崗으로 1882년 江華島 江華邑 官廳里에서 출생한 金永勳은 名醫 徐道淳의 제자가 되어 醫學入門 硏究 계통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1904년 최초의 근대적 한의과대학인 同濟醫學校가 설립되어 교수를 뽑자 이에 지원, 수석합격하여 都敎授가 되었고, 典醫 出身이며 한의계의 원로였던 洪哲普, 張容駿, 崔奎憲 등과 함께 八家一志會를 만들어 한의학의 부흥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대한한의학회보』 제1권 제7호에는 김영훈 선생이 훈장을 받은 것을 축하하는 자리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대한한의학회의 주관으로 사무장 李宗泰 이사의 개회사에 이어 박성수 명예회장의 간곡한 축하사가 있었고, 대한한의사회를 대표하여 李龍珠 부회장의 기념품 증정, 동양의약대학을 대표하여 권영준 교수의 화환 증정, 『醫林』을 대표하여 裵元植 선생의 화분 증정이 있었고, 동양의약대학장 李鍾奎 박사, 대한한의학회 고문 김장헌 교수의 축사가 있었다. 이어서 청강 김영훈 선생의 답사가 끝나자 宴席으로 들어가 여흥으로 一樵 金鼎濟氏의 詩唱, 北堂 朴承煥氏의 時調 등이 흥취를 북돋았고 오후 6시 기념촬영후 산회하였다.
『대한한의학회보』 제1권 제7호에 나온 金永勳 先生의 답사의 요지를 정리해 본다.
“오늘날 불초한 이 사람을 위하여 장노선생들과 여러 청장동지께서 이 자리에 모이셔서 이같은 盛宴을 베풀어 주시니 불초의 無常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감격한 말씀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습니다. 금반 문화포상을 받을 때에 몇가지 감상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한의학교를 허가하여 달라고 總督府衛生局長 西龜와 京畿道衛生科長 天安敏介에게 여러번 종용하였으나 이것은 총독부령으로 되는 것이 못되고 일본 내무부에서 하는 일이라고 하면서 기껏 道醫講習所라는 것을 허가할 때 同志田光玉氏가 不肖보다 功勞가 多하였으며 기백명의 한지의를 배출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이런 환영연을 전광옥씨가 받어야 할 것인데 이미 不歸客이 되었은 즉 千萬遺憾입니다.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과 이시형 부통령의 ‘釜山時代’에 朴性洙氏, 朴鎬豊氏, 不肖 등이 陳情書 또는 直訴도 하고 하여, 그 때 두분의 말씀,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유서깊은 의학 또는 우리 국민이 없어서는 아니 된다고 하여서 한의사와 한의과대학을 헌법에 의한 허가설정된 것인즉 朴性洙, 朴鎬豊 兩氏가 당연히 이러한 환영을 받어야 할 터인데 불행히 朴鎬豊氏도 已作故人이 되어 千萬遺憾이옵니다.
지금 박성수씨로 말하면 우리 한의사, 한의과대학의 창설시에 우리의 빈곤한 한의사회 重壘多事, 風風雨雨에 음으로 양으로 自己家産을 賣出하여 십여년간을 左支右支하여 우리 학교와 醫會가 지금 국내 국외에 형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박성수씨가 당연히 이런 환영을 받어야 할 터인데 유독 不肖같은 車載斗量者가 아무 공헌없이 이런 존중한 환영을 받는 것은 慙愧하고도 더욱 恐懼莫措합니다.”
<-1963년 대한한의학회보에 실린 청강 김영훈선생 문화훈장 포상기념축하연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