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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30)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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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徐有聞의 『戊午燕行錄』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문밖은 다 가게라 서로 한 골목을 들매 길 너비가 세 걸음을 넘지 못하고 온갖 가게가 서로 마주 대하였으니, 파는 것이 아주 기괴한 보배라.……유리창은 명(明) 나라 적에 동창(東廠)이라 일컫던 곳이라. ……다 두 겹 집을 짓고 안팎으로 여러 탁자(卓子)를 사면으로 높게 쌓았으며, 집 위에 또한 누각을 만들었으니 한 가게에 쌓인 것이 수만 권이 넘을지라. 책 목록(目錄)을 상고하니 태반이 명나라 때 이후 문집(文集)이요, 태평성대에 유익(有益)이 될 것이 많으니 모두 전에 듣도 못하던 바라. 우리나라 책을 사는 법이 해마다 이전에 나온 것을 구하기에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면 값을 많이 불러 비싸니, 우리나라에서 귀하게 여기는가 짐작할 일이라. 이 가게 외에 또한 두세 곳이 있으나, 그다지 볼만하지 않으며, 가게는 다 우리나라 『동의보감(東醫寶鑑)』을 고이 책으로 꾸며서 서너 질 없는 곳이 없으니, 저들이 귀히 여기는 바인가 싶더라.”



徐有聞(1762〜182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서 1787년(정조 11년) 정시 문관에 급제한 이후로 정치에 입문하여 변고가 있을 때 유배와 복직을 반복하였다. 『무오연행록』은 徐有聞이 1798년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임명되어 이듬해에 귀국하여 한글로 적은 개행문이다.



위의 기록은 1798년 12월22일 徐有聞이 北京의 琉璃廠에 갔을 때 우리나라의 『東醫寶鑑』을 책가게마다 비치해놓고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책방마다 『東醫寶鑑』을 서너질씩 갖추고 판매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보기에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었다.



이 책 가게에 비치되어 있던 『東醫寶鑑』의 판본은 中國本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까지 간행된 중국판 『東醫寶鑑』은 다음과 같다.

○ 乾隆凌魚序刊本

淸 乾隆 癸未(1763)년 간행된 乾隆壁魚堂刊本을 1766년 재판한 판본으로 凌魚의 서문이 실려 있다.

○ 嘉慶敦化堂刊本

淸 嘉慶원년(1796·丙辰)에 간행된 목판본으로 간기에 “江寧敦化堂刻本”이라고 적혀 있다.

○ 嘉慶英德堂刊本

淸 嘉慶원년(1796·丙辰)에 간행된 판본으로 英德堂에서 간행된 목판본.

○ 嘉慶聚盛堂刊本

淸 嘉慶원년(1796·丙辰)에 간행된 판본으로 聚盛堂에서 간행된 목판본.

○ 嘉慶丁巳刊本

嘉慶丁巳(1797)년 간행된 판본.



徐有聞은 아마도 이들 판본들을 보았을 것이다. 이들 판본들이 가게마다 서너질씩 비치해 놓은 것은 조선인의 입장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중국인들이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徐有聞이 醫學에 대한 어떤 활동을 했던 기록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는 醫學에 寡聞한 선비로서 단지 이 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들의 행태가 신기하기만 하였을 것이다.



중국은 이 무렵인 1772년부터 1781년까지 『四庫全書』라는 국가적 학술 사업을 전개하면서 의학 부분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때 포함된 의서는 모두 97종류였다. 이 작업은 역대 의학서적들이 총망라되는 대역사였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1800년까지 새로 나온 의서들은 그다지 눈에 띠는 것이 없다. 1792년 唐大烈이 『吳醫匯講』을 만든 것 정도가 눈에 뜨인다.



『東醫寶鑑』이 이웃 국가에서 만들어진 책임에도 이 시기 중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준다. 이 시기 조선의학의 국제적 위상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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