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맑음속초15.9℃
  • 맑음13.5℃
  • 맑음철원13.0℃
  • 맑음동두천12.5℃
  • 맑음파주12.9℃
  • 맑음대관령8.6℃
  • 맑음춘천13.6℃
  • 맑음백령도12.4℃
  • 맑음북강릉15.5℃
  • 맑음강릉17.3℃
  • 맑음동해17.0℃
  • 맑음서울12.2℃
  • 맑음인천13.4℃
  • 맑음원주13.1℃
  • 맑음울릉도15.6℃
  • 맑음수원13.9℃
  • 맑음영월13.3℃
  • 맑음충주13.1℃
  • 맑음서산13.4℃
  • 맑음울진18.1℃
  • 맑음청주14.3℃
  • 맑음대전14.3℃
  • 맑음추풍령12.5℃
  • 맑음안동14.7℃
  • 맑음상주14.5℃
  • 맑음포항16.7℃
  • 맑음군산13.5℃
  • 맑음대구15.7℃
  • 맑음전주13.0℃
  • 맑음울산15.9℃
  • 맑음창원16.7℃
  • 맑음광주14.3℃
  • 맑음부산17.0℃
  • 맑음통영17.2℃
  • 맑음목포14.7℃
  • 맑음여수14.6℃
  • 구름많음흑산도14.1℃
  • 맑음완도16.5℃
  • 맑음고창13.9℃
  • 맑음순천13.1℃
  • 맑음홍성(예)15.1℃
  • 맑음14.1℃
  • 맑음제주15.3℃
  • 맑음고산13.8℃
  • 맑음성산15.7℃
  • 구름많음서귀포17.2℃
  • 맑음진주16.3℃
  • 맑음강화13.5℃
  • 맑음양평14.4℃
  • 맑음이천14.6℃
  • 맑음인제11.6℃
  • 맑음홍천13.7℃
  • 맑음태백10.9℃
  • 맑음정선군12.8℃
  • 맑음제천12.6℃
  • 맑음보은13.3℃
  • 맑음천안13.7℃
  • 맑음보령14.2℃
  • 맑음부여12.6℃
  • 맑음금산14.0℃
  • 맑음13.2℃
  • 맑음부안14.8℃
  • 맑음임실12.7℃
  • 맑음정읍13.9℃
  • 맑음남원13.2℃
  • 맑음장수11.9℃
  • 맑음고창군14.3℃
  • 맑음영광군14.3℃
  • 맑음김해시16.3℃
  • 맑음순창군13.7℃
  • 맑음북창원16.7℃
  • 맑음양산시18.2℃
  • 맑음보성군15.5℃
  • 맑음강진군15.5℃
  • 맑음장흥15.2℃
  • 맑음해남15.5℃
  • 맑음고흥15.2℃
  • 맑음의령군16.7℃
  • 맑음함양군14.6℃
  • 맑음광양시15.2℃
  • 맑음진도군15.2℃
  • 맑음봉화13.1℃
  • 맑음영주13.2℃
  • 맑음문경14.2℃
  • 맑음청송군14.0℃
  • 맑음영덕15.5℃
  • 맑음의성15.2℃
  • 맑음구미16.2℃
  • 맑음영천15.5℃
  • 맑음경주시16.4℃
  • 맑음거창14.6℃
  • 맑음합천17.0℃
  • 맑음밀양17.0℃
  • 맑음산청15.3℃
  • 맑음거제16.9℃
  • 맑음남해16.6℃
  • 맑음17.7℃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8일 (금)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5

김남일 교수의 儒醫列傳 155

B0042010113031854-2.jpg

B0042010113031853-1.jpg

의녀제도의 창설을 건의한 인물



1406년 태조6년 3월16일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나온다.

“그윽이 생각건대, 부인이 병이 있는데 남자 의원으로 하여금 診脈하여 치료하게 하면, 혹 부끄러움을 머금고 나와서 그 병을 보이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여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원하건대, 倉庫나 宮司의 童女 수 10명을 골라서, 脈經과 針灸의 法을 가르쳐서, 이들로 하여금 치료하게 하면, 거의 전하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건의를 하고 있는 인물은 허도(許 )이다. 허도는 檢校漢城尹·知濟生院事을 역임한 조선 초기의 관리이다. 그가 위와 같은 건의를 태조에게 하여 의녀제도가 창설되게 된 것이다. 의녀제도는 유교적 통치원리가 국가의 교시가 된 조선 초기에 남녀유별의 원칙으로 남자 의사를 꺼리는 여성 환자들의 질병을 치료를 위해 배려하고자 설립된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제도이다.



지방에서도 의녀가 선발되어 중앙의 제생원에 보내어져 교육 이수 후 복귀하여 근무하게 되었다. 의녀에 선발된 자들에게는 婦人科, 脈法 등에 대한 내용을 위주로 교육되었으며, 총명하여 선발된 자들을 먼저 四書 등을 교육한 후에 제생원에 맡겨져 의학을 교육시키도록 체계적인 교육과정도 마련되었다.



허도에 대한 개인적 자료가 충분하지 않지만 그가 의녀의 필요성을 적극 건의하고 그 교육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기에 의학에 밝았던 인물로 사료된다.



<- 허도의 발언이 나오는 ‘태조실록’.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 오늘 인기기사
  • 주간 인기기사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