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가 있는 한의학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신마취 수술이란 걸 했다. 뭐 그리 대단한 수술이 아니었음에도 수술 전의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 환자들의 과거력에 흔히 한두개쯤 있는, 그래서 쉽게 보고 넘겼던 그런 일이 막상 내 앞에 닥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언가 기분 나쁜 냄새를 흡입한 후 기억나지 않는 순간이 지나고,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보니 알 수 없는 불편함만이 몸에 남아있을 뿐 수술은 잘 끝났단다.
사람, 人間이라는 것에 대해 늘 형이상학적으로만 생각해온 내 사고는 일순간에 무너진다. ‘나’란 존재는 사라진 채 오로지 수술결과, 검사결과, 그리고 난 몇 호실 환자일 뿐이다. 내 생각은, 그리고 내 느낌은 그저 불필요한 부분인 것이다.
心身醫學이라 함은 병 나기 전의 상황에서만 중요시될 뿐 몸 안에 이미 이상이 나타난 상태에서는 이렇게 간과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영 불편하다. 몸 전체를 그리고 사람 전체를 바라보고 치료해야 한다는 내 사고는 몸 한구석의 작은 무엇인가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결국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복잡해진다. 수술대 위에 꼼짝없이 묶여 아무 의식 없이 보낸 그 시간 동안, 과연 ‘나’란 존재는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우리의 몸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인격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료에 있어서도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겪어온 삶, 우리가 지내는 삶의 모든 것은 우리의 몸 안에서 나타난다. 사소한 일상생활의 습관은 체형의 변화를 가져오고 그런 체형의 변화는 통증을 가져온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먹고 있는 것들은 우리 몸 안의 변화를 가져오고 우리 마음의 파동은 더 큰 몸의 변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쌓여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된다. 이야기들이 모여 체질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되고 이야기들이 모여 각자의 질병들이 발현된다. ‘몸’ 그 자체만 바라보았을 때 이야기는 더 이상 전개되어 나가지 못하고 모든 사람들의 다른 이야기들은 그저 똑같은 전개와 똑같은 결론으로 이어지게 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한의학은 우리의 心身과 더불어 처음부터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의학이다. 우리의 마음을 바라보고 삶을 바라보며 진단과 치료에 있어서도 객관적인 잣대만을 들이대지 않는다. 각자가 갖고 태어난 체질도 이야기의 도입과 전개에 있어 중요시 되는 부분이다. 더불어 살고 있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 하나하나가 모두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未病’에 대한 언급이 예방의학적인 관점에서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늘상 달고 사는 만성적 어깨 결림, 불면, 소화장애 등 몸이 보내는 신호들을, 몸이 말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무시하면 그들은 이야기의 전개를 점점 힘들게 만들어 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이러한 미병, 아건강 상태를 중요시 하는 한의원 그리고 한방병원들의 웰니스센터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고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참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이곳 경희대학교 동서신의학병원에서도 한방재활의학과와 한방신경정신과가 주축이 되어 한의학적 양생에 그 기반을 둔 웰니스센터를 준비하고 있다. 시작단계에서 우선 순위를 두는 것은 몸과 마음의 조화를 통해 현대인의 질환들을 예방ㆍ치료함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접근방법을 시도하는 것이다.
치료와 더불어 예방을 위한, 그리고 환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반영한 건강 관리 및 치료 프로그램의 설계는 건강 관리 비용 절감 및 우리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면에서 뿐 아니라 한의학의 올바른 영역을 자리매김 하는데 있어서도 반드시 우리가 앞장서서 담당해 나가야 할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환자 개개인의 삶을 바라보지 않는 치료는 결국 반쪽짜리 치료밖에 될 수 없기에 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우리 한의학이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