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의약 도핑 방지’회원들의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
2011 그랑프리 세계여자 배구대회에 다녀와서
8월 8일부터 22일까지 국제배구연맹(FIVB) 주관으로 세계 16개국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이 겨루는 그랑프리 대회 예선 2, 3차전에 팀닥터로 폴란드와 일본에 다녀왔다. 성인 국가대표팀은 처음 맡는 까닭으로 이전의 청소년 대표팀보다도 책임감은 더욱 커지고, 귀국 후 당장 프로 시합을 뛸 선수들이라 심적 부담도 있었다.
출국 전에 FIVB에서 제공하는 도핑방지프로그램 교육을 받았고, 부산에서의 1차전에 수고해 주신 윤유석 원장님으로부터 부상 선수에 관한 인계도 마쳤다. 마침 한의계도 스포츠 도핑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동영상 교육자료를 소개하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www.fivb.org/RealWinner에는 배구 관계자가 아니더라도 visitor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실제 상황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영어·불어·스페인어로 제공되고 있으며 이만큼 잘 되어 있는 도핑방지교육이 있을까 싶다.
덧붙여 한국어 서비스가 제공되는 세계반도핑연맹(WADA)의 사이트도 들어가 봄 직하다(quiz.wada-ama.org). 선수가 투약 중인 약물이 해당종목의 금지약물인지 여부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사이트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www.kada-ad.or.kr). 한의약 도핑방지 교육자료가 활발하게 준비 중인 것으로 아는데 회원들의 보다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기장의 정중한 감사인사로 대표팀 사기충만
폴란드로 가기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경유하는 항공기에서의 일이다. 승무원들이 갑자기 바삐 움직이며 분위기가 술렁이더니 의사의 도움을 구하는 기내 방송이 영어·독일어·한국어로 흘러나왔다. 수차례 외국을 다녀봤지만, 말로만 듣던 기내에서의 의사호출을 겪는 것은 처음이었다. 환자는 기내 화장실 앞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50대 한국인 여성. portable oximeter(산소포화도 측정기)에 수치가 낮다는 이유로, 응급구조교육을 받았다는 승무원이 씌워준 산소마스크를 쓰고서, 하지거상을 한 채 드러누워 도움을 기다리고 있었다. 토하고 싶어 하는 환자와 발을 동동 구르는 보호자의 안정은 뒷전인 채 전자식 손목혈압계로 측정한 혈압과 부정확한 산소포화도 수치만 부지런히 옮겨 적고 있는 승무원부터 진정시켜야 했다.
치료를 위해 난생 처음 1등석으로 옮겨져서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줄곧 돌보게 되었는데, 과거력을 확인 후 순환계 문제를 다시 체크하고 제세동기에 달려있는 심전도로 계속 모니터링했다. 신경학적 이상 없이 복통, 오심 증상이 심하여 세 차례 구토를 시키고 식체(食滯)에 준하여 침 치료를 하니 증상이 개선되었다. 환자의 안정을 확인하고 나서, 식체와 미주신경성실신(vasovagal syncope)으로 소견을 기록해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을 현지의사에게 인계하였다.
승객들이 보는 앞에서 기장의 정중한 감사인사를 받고 대표팀 전체의 사기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독일 승무원들에게는 한국의 침술을 알릴 수 있어서 기쁨이었다. 구름보다 높은 상공에서 곤욕을 치룬 그 여성분은 물론이고, 응급상황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승무원들에게도 한의학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것이 두고두고 잘한 일로 기억될 추억이었다.
18시간의 여정으로 폴란드에 들어왔다. 수도 바르샤바 서쪽으로 네 시간 반 운전해야 한다는 지엘로나구라는 전형적인 유럽의 시골 풍경이다. 이 도시에는 한국교민이 없는데 시합 때마다 바르샤바에서부터 서울-부산 거리를 운전하고 와서 응원해 주는 열혈 배구팬도 있었다.
태풍으로 비행기가 결항되는 바람에 출국이 하루 늦어 시차 적응도 모자랐을 텐데 선수들은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 첫날부터 강팀 쿠바를 상대로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9년 만의 승리라는 이변을 보인데 이어, 홈팀 폴란드를 이겨버리고 마지막 날 아르헨티나까지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며 폴란드에서만 3전 전승을 거두는 바람에 응원 온 배구팬들도 보람이 있었고, 벤치에 앉아 응원하던 나도 감격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폴란드전에서는 홈팀 응원이 과열될 것은 예상되었지만, 한국 서브 때 polska(폴란드인을 칭함) 관중들의 야유와 심판들의 홈팀 편들기는 지나치다 싶었다.
경기 중 선수들이 마시는 생수에는 비타민과 마그네슘 정제가 녹아 있다. 경기 후반 체력이 고갈될 때면 포도맛, 오렌지맛 등 과일향이 첨가된 아미노산 젤을 빨아먹기도 한다.
이들 스포츠보충제(ergogenic aids)를 챙겨주는 한의사 팀닥터의 마음 한켠이 먹먹해 온다. 국가대표선수들이 챙겨 먹는 보충제가 한약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할까. 하다못해 배구에서만이라도, 국내는 물론 나아가 전 세계 스포츠인들이 언젠가는 게토레이 대신 한방스포츠음료, 빨아먹는 젤 형태의 한약을 경기 중에 꺼내 먹는 모습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서전트 점프를 높이만으로 따지자면 하체근력이 좋은 역도선수가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높이보다도 오래 반복하여 점프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 종목이 바로 배구다. 결국은 근지구력이 관건이 되는 운동이자 jumper’s knee라고 불리는 슬개건염을 훈장처럼 간직해야 하는 종목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볼 연습이 없을 때는 각 구단 트레이너들이 알려준 대로 각자 주어진 근력운동과 체력운동을 수행한다. 연봉을 받는 프로선수들이기 때문에 몸 관리를 위한 정성은 대단하다.
침 치료를 경험한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한방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모두 선배 한의사들이 훌륭하게 역할을 해내오신 덕택에 선수들이 신뢰하고 몸을 맡기는 것이다.
다음날의 시합을 위해서 지친 근육을 회복하고 피로 누적을 막기 위해 하루라는 제한된 시간이지만 한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다.
허리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매 시합 단 한 번의 교체도 없던 세터 포지션의 주장 선수는 공진단을 매일 복약해 가면서 쿠바, 폴란드, 아르헨티나, 러시아를 상대로 4연승을 주도 했다. 일본 도쿄에서의 첫 상대 러시아와의 5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얻은 승리는 2004년 이후 7년만이라고 하니 이번 경기는 여자배구 역사에 남게 된 선전이었다. 러시아의 세계 랭킹은 5위 한국은 18위였다.
스포츠 경기에서의 승리는 많은 것을 덮어 준다. 사실 배구팬들이 까페나 SNS에 올리는 응원과 악플에 선수는 물론 코칭 스탭까지도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런 이유로 아예 특정 팬 까페는 들어가지 않는 선수들이 많다.
기대 이상의 선전으로 연승을 할 때만 해도 잠잠하던 독설이 일본과 세르비아 전에서의 2패 이후에 다시금 악플이 난무하더라는 것. 피로의 누적과 부상으로 인한 상황을 모르는 팬들이 키보드로 독설을 풀어놓는 상황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팀이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팀닥터는 선수들이 신체적으로 다음 시합을 뛸 수 있게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토닥여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왔다.
** 한의학 세계에 알리는 민간외교사절
신체접촉이 적으면서도 팀웍이 강조되는 배구는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타 종목에 비해 선수 각자가 대체로 감수성이 예민하다. 경기 중에 실수를 하면 손을 들고 팀에게 사과하고, 동료의 범실을 적극적으로 위로하고, 매 득점 순간마다 한마음으로 기뻐하며 기운을 나누는 광경의 연속이다. 배구경기 촬영하는 카메라맨들이 좋아하는 바로 그 드라마 같은 장면들이다. 교체되어 들어가 실책을 하거나 경기결과가 나쁘면 선수들 중 누군가는 자신을 위로해 줄 온전한 내편이 필요하기에, 팀닥터는 엄격한 코치진과 선수들 사이에서 미묘한 가교 역할을 하게 된다.
배구 팀닥터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배구협회 산하의 의무위원회에 소속되어야 하며, 국제배구연맹에서 인증하는 FIVB-doctor card를 받아야 국제시합에 참여할 수 있다. 의사, 한의사, 물리치료사로 구성된 대한배구협회 의무위원회에 이미 십여 분의 한의사 선배님들이 귀중한 진료시간과 수입을 포기해가며 국제경기 현장에서 봉사해오고 있다.
스포츠 분야뿐 아니라 KOMSTA, 국제협력의, 정부파견의, 종교단체의 의료봉사 등 다양한 형태로 한의학을 세계에 알리며 민간외교사절을 자처하는 한의사님들 모두가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2주간의 팀닥터 출장은 국가대표팀에 봉사한다는 보람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숨을 고르고 뒤 돌아 볼 수 있는 자기성찰의 기회를 주었다.
앞으로도 이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모든 선배님들이 그래 왔듯이 누구보다도 배우자(님)의 든든한 후원과 이해가 필요하다. 12월 25일 결혼을 앞두고 이번 출장을 허락해 준 예비신부에게 영화 대사를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한다. “김희정, 나로 하여금 더 좋은 남자가 되고 싶게 만든 당신을 나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