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준 선생 일대기를 그림으로 표현하다
“허준 일대기는 한사람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아니다. 그의 굴곡진 삶이 오늘날 의술을 하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될 수 있는 헌신적이고 너무나 인간적인 자세에 감동하게 되었고, 이 부분을 특히 강조하려 했다. 동의보감을 완성하기까지의 고난이 이 그림의 주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근 허준 일대기를 그림으로 표현해 화제가 되고 있는 선(禪) 그림의 대가, 벽천(壁泉) 하영상 화백은 자신의 작품을 주제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의성 허준 선생 일대기’에는 허준 선생의 성장 과정과 내의원 생활, 혜민서 봉사, 임진왜란, 동의보감 집필 등 허준의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8폭 병풍으로 연출한 것이다.
산청에서 태어난 벽천 화백은 동의보감 엑스포 개최와 함께 허준의 일생의 관한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한방 관련 그림을 그릴 때마다 자료 수집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그는 허준 일대기를 완성하기 위해 인터넷을 샅샅이 검색했을 뿐 아니라 동의보감 서문의 기록, 심지어 동화책에서까지 다양한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처음 단순히 초상을 그리겠다고 생각했다가 드라마틱한 허준 선생의 생애에 매료되어 그의 일생을 병풍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는 벽천 화백은 “처음엔 세밀하게 한국화로 묘사하려 했으나 회화면에서 후퇴하는 것 같아서 문인화로 그리는 것이 더 품격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그림의 정확한 장르는 선묵화(禪墨畵)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는 외조부가 한의원을 운영했기 때문에 한의학의 도움으로 많은 치료를 받았고 서너 차례 큰 병을 앓았을 때도 한방 치료를 통한 완쾌를 경험했다고 한다.
현대 질환의 근원적인 치료는 한방으로 치료했을 때 부작용이 적다고 역설한 그는 “한의학은 그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나 양의학의 큰 발전에 비하면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고, 한의학에 대한 기반에 국가적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과적으로 보면 양의학의 발전은 확실히 뚜렷하다. 그러나 한방으로 치료를 하는 내상이나 현대병에 대한 시간이 필요한 치료에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한의학이 동양인의 체질에 맞는 치료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생약제제에 따른 우수성을 양방과 비교 차별하여 이것을 문화 행사와 병행하면서 활용한다면 한의학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벽천 화백은 산청 지리산 물 맑은 곳에 살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약초의 보고인 지리산이 가까이 있고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선묵화를 구상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그는 지금도 풍욕, 냉온욕, 등산, 철저한 채식 등을 통해 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벽천 화백은 약령시를 주제로 24폭(1200호)의 대작 병풍을 작업하고 있다.
자신이 태어난 지리산 아래 덕산시장을 배경으로 제천 약초시장의 부분을 한의학 자료에서 얻은 것으로 창작된 ‘약초시장’ 그림은 한의학에 대한 그의 신뢰와 관심을 보여주는 작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벽천 화백은 “약초시장의 단면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전 약초 한방 시장의 재현을 위해 이 그림을 완성할 계획”이라며 훌륭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의성 허준 선생 일대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동국의 하늘에 도규로 이름 높은 한의성을 내었으니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으로 허준이시다.
2. 영남땅 산청에서 뜻을 키워 방장산 온갖 풀을 맛보아 이 땅 이 겨레 맞는 신토불이 장생의 의학을 닦았네.
3. 내의원에서 임상을 익혀 불세출의 인술로 이름이 높더니 모든 사람을 하늘로 대접하여 음양오행 건곤을 꿰뚫었네.
4. 혜민서 봉사를 거쳐 왕가의 두창 치병에 큰 공을 세워 어전에 들어 벼슬을 더하더니 성삼품 통정대부에 올랐네.
5. 왜적놈 노략질에 조선팔도 어육이 되어 참담한 때에도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피해 충심으로 내의원을 이끌었네.
6. 태의 양예수가 눈을 감으니 동방의 의술 잠시 어둡더니 조선의 어둔 의학을 밝히려 지성으로 태의를 이었네.
7. 선조 어명으로 조선 땅에서 흔하게 자라는 온갖 약초로 조선의 아픈 민초를 구하고자 구급방 여러 책 펴내었네.
8. 광해군에 이르러 의주로 귀양가서도 백성을 잊지 못해 조선골 아픈 백성을 구하고자 동의보감을 완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