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90세… 내 건강을 지키는 비결은 ‘한의약’
“그림을 그릴 땐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없어야해”
사군자(四君子) 중 가장 그리기 어렵다는 난, ‘우란 30년, 좌란 30년’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오른쪽으로 뻗은 난을 그리는데 30년, 그리고 왼쪽으로 뻗은 난을 그리는데 30년이 걸린다는 뜻으로, 평생 동안 그려야만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난화에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는 바로 ‘난 잎이 세 번 자연스럽게 휘어져 돌아가는 모습’을 붓으로 묘사하는 ‘삼전지묘’ 기법이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시작되어 석파 흥선대원군, 차강 박기정 선생으로 내려오는 삼전지묘 기법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서화가는 현재 화강 박영기 선생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영기 선생은 1922년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8세부터 조부인 서화가로 명망 높은 차강 박기정 선생으로부터 서화를 배웠다.
“8살이 되던 해에 할아버지께서는 손자들을 모두 불러놓고 서화를 가르치셨어.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가 서화가가 될 소질이 있다며, 나를 두고 ‘이놈이 내 뒤를 이을 놈’이라고 찍어 놓으시고는 그 뒤로 종아리를 때려가면서 서화를 가르쳐주셨지. 당시엔 할아버지가 원망스럽기도 했었어. 하하.”
차강 박기정 선생은 늘 ‘난을 그릴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며 엄격하게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그림에 파묻혀 살았다는 박영기 선생.
“할아버지께서는 부처가 되지 않고서는 난을 못 친다고 하셨어. 지금 사람들은 사군자 중에서 난을 제일 그리기 쉬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 반대야. 난화가 너무 어려워가지고 배울 사람이 없어. 배우러 왔다가도 3개월만 지나면 못하겠다고 하고 나가버리니깐. 그래서 ‘난자는 난야라’라는 말이 있어. 난초하는 놈은 어렵다는 뜻이지.”
박영기 선생은 1964년, 이율곡 선생 경축제 백일장 휘호대회에서 장원을 하면서 서화계에 입문한다. 그때가 서른셋, 그 길로 그는 도를 틀 때까지 나오지 않겠다며 강원도 원주 치악산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면서 서화 공부에 매진한다. 그 후 박영기 선생은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988년에는 대한민국종합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서화는 내 운명’이야. 하루에 2~3시간밖에 안자고 그림만 그렸으니깐. 사실, 다른 공부를 해보려고 한 적도 있었는데, 그땐 졸리면 잠을 자야지 영 못하겠더라고. 하하.”
그렇게 그는 지금까지 80년이 넘는 세월을 난과 함께 보냈다. 박영기 선생은 현재 ‘삼전지묘’의 대가이며, 독자적인 ‘화강체’를 구축한 서화가로 평가받고 있다.
박영기 선생이 직접 그린 난화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이 그림을 정신일도로 하고 그렸기 때문에,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머리가 맑고 깨끗해질 수밖에 없어. 그림을 그릴 땐, 마음을 비우고 욕심이 없어야해. 마음을 온전히 비울 때야 비로소 잡초가 아닌 살아있는 난 이파리를 완성할 수 있는 거야.”
그는 1년에 1000작품 정도 그린다고 한다. 물론 크기가 작은 작품도 많지만, 상당한 양이다. 100호짜리 상당한 크기의 작품을 그리고 나면, 1주일 정도는 몸져눕는다고 한다. 작품을 그리는 시간동안 온 기를 불어넣어서 난을 그리기 때문에, 기력이 딸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올해로 90세를 맞은 박영기 선생이 아직까지 이토록 대단한 필력을 자랑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렇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매일 아침 2시간씩 산책을 하는 것과 한의약의 도움 덕분이라고 답한다.
특히 지난해 5월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왼쪽 다리를 다쳤었는데, 한방병원에 입원해 한방치료를 받고 회복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해 가을 갑자기 인대가 늘어나 걸음을 걸을 수 없는 정도가 됐다. 그래서 다시 한의원을 찾아 한방진료를 받았더니 다리의 붓기도 빠지고 걸을 수 있게 됐다고.
“한의약은 늘 내게 친숙하고 가까운 의학이었지만, 얼마 전 한의원에서 한방치료를 받고 다리가 금방 낫는 것을 보니 새삼 신기하더라고. 앞으로도 한의약을 애용하면서 한의약을 내 건강을 지키는 비결로 삼을 거야.”
활발한 작품 활동 외에도 매년 가을 열리는 봉평 이효석 축제에서 무료로 가훈 써주기, 강릉 단오제에서는 부채에 서화를 그려주는 등의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화강 박영기 선생이 앞으로도 그가 지금의 건강한 모습 그대로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