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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9일 (토)

KAIST에 578억원 기부한 한의학자 류 근 철 박사

KAIST에 578억원 기부한 한의학자 류 근 철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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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낙원이자, 전당을 만들고 싶다”

KAIST가 잘못된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



침 시술, 뜨네기 목수가 판자집 짓는 식으론 안돼

한의학계에 기부하지 못한 나 자신도 섭섭함 느껴



“기부란 축복의 나눔이다. 축복받은 것을 모든 사람과 나누는 행위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에도 좋은 일이 있을 때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곤 했다. 그것이 축복의 나눔 정신이라고 본다. 이런 정신을 갖고 있는 한 세계 어딜 가도 성공한다.”



지난 14일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인 578억원 상당을 KAIST 기부한 류근철(柳根哲·82) 한의학 박사. 그는 큰 꿈을 꾼다. 척박한 우리나라 과학 환경에 과학자의 낙원이자, 전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꿈은 현실로 차곡 차곡 이뤄지고 있다.



KAIST가 류 박사의 기부금으로 충남 연기의 행정중심복합도시에 땅을 매입해 ‘KAIST 류근철 캠퍼스’를 세우고, 경북 영양의 약 30만㎡에 과학기술인 휴양관, 연구시설, 과학유공자 묘역을 조성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류 박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KAIST발전재단 명예이사장을 맡아 1000억원을 추가 모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결코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축복의 나눔을 같이하자는 캠페인을 벌여 나가고, 기부 문화도 개선하겠다. 기부자들에게 섭섭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가령 생전에는 과학자들의 연구 몰두에서 오는 희열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죽어서는 과학자 묘역에 함께 안장될 수 있도록 하는 등 협력과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부 풍토를 만들어 나가면 많은 분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한의대가 아닌 KAIST에 기부했는가. “과학이 발전해야만 나라가 부강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 출연기관인 KAIST가 잘못된다면 이는 국가적 손실이다. 그것이 KAIST를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그 자신도 한의계에 기부하지 못한 마음을 섭섭하다고 표현했다. “나의 모교인 경희대에도, 내 삶의 큰 기류였던 한의학에도 기부하지 못하게 돼 나 자신 스스로도 섭섭함을 느낀다.”



처음부터 기부 대상에서 한의계가 배제됐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기부의 손길을 KAIST로 돌리게 된 이유는 개업 일변도의 한의계 현실이 크게 작용했다.



“한의계는 한의사 대부분이 개업의다. 여타 연구자들보다 유복하다. 그렇기에 내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사람들의 기부 내지 찬조가 계속 있을 수 있다. 이에 반해 KAIST는 어렵게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KAIST의 발전이 곧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끈다는 생각에서 그곳을 선택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여러 번 부모님의 은혜를 강조했다. 고인이신 부친 류기중(柳基重) 옹과 모친 한성녀(韓姓女) 여사의 삶을 말했다. 일제 치하인 1919년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펼치다 일본 경찰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했던 부모의 강건함과 소외된 이웃을 무척이나 위했던 따뜻한 배려가 그의 삶 전체에 축복을 불어 넣은 본보기였다는 것이다.



류 박사는 이전에도 이번과 같은 대중의 높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있다. 1972년 경희의료원 재직 당시 마취약 없이 침술로 제왕절개 수술 마취에 성공해 유명세를 탔었던 장본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침술마취 시술법은 제대로 전수되지 못했다. “침술마취 시술은 음악과 같다. 주어진 악보와 건반이 같다 해도 연주자의 기술에 의해 천차만별의 음이 나오듯 침술 마취는 바늘 끝에 시술자의 온 신경이 집중돼야 가능하다. 오랜 시간을 갖고 신중히 연구해야 한다. 뜨네기 목수가 판자집 짓는 식으론 절대 안된다. 침을 시술하고 30분 이상을 환자 곁에서 지켜보며 침의 효능을 직접 확인해야 한다. 물론 발침 역시 한의사 본인이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한 사석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소개했다. “침술 수가가 워낙 낮아 거기에 충분한 시간을 소비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침 시술은 그래선 안된다.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려하지 말고, 적은 환자라도 많은 시간에 걸쳐 꼼꼼히 보려고 해야 한다. 의사가 얼마만큼 열과 성을 다했느냐는 환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는 또 학문의 자세를 말했다. “한의학을 하건 다른 의학을 하건 의학을 충실히 하는 사람들은 인류보건을 위해 태어났고, 인류보건을 위해 노력하다가, 인류보건을 위해 이 세상을 뜬다고 생각하고 평생을 바쳤으면 한다.”



한의학 발전을 위한 제언도 했다. “우리 영역만 갖고서는 현재 영역 이상으로 발전할 수 없다. 현대의학과 한의학이 협력할 필요가 있다. 요즘 한의사들은 초·중·고등 교육을 정상으로 배웠고, 한의대도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을 했기 때문에 충분히 타 분야 학문과의 협력을 통해 좋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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