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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7일 (목)

정우열 명예교수

정우열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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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 앉아 환자를 보노라면 별의 별 환자를 다 만나게 된다. 내가 막 대학을 졸업한 20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환자가 진료실을 들어서더니 이리저리 누구를 찾는 듯 두리번 거리다 “아니, 여기 선생님이 안계세요?”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제가 선생인데요”하였더니 그 환자는 “그래요. 그러면 제가 잘못 들어 왔네요.” 하고 쏜살 같이 나가 버렸다. 그 환자는 한의원이니 지긋한 나이 많은 원장이 있으려니 하였는데 새파란 젊은 사람이 선생(원장)이라 하니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러한 일이 없지만 내가 대학을 나온 60년대만 하더라도 한의사는 나이가 많아야 환자들에게 믿음이 갔다. 어떤 경우에는 의사를 떠보러 오는 환자도 있었고, 또 어떤 환자는 의사의 말은 콧등으로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내세우는 환자가 있는가하면 까탈스럽게 꼬치꼬치 캐물으며 의사를 믿지 못하는 환자도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이런 환자들은 병이 잘 낫지 않는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의사를 신처럼 여기며 의사의 말이라면 무조건 순종하는 순종파 환자들도 있다. 이런 경우의 환자들은 치료 효과가 빠르다. 의학용어 중에 ‘인사이트(insight)’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바꾸면 ‘병식’(병에 대한 인식), ‘깨달음’, ‘통찰’ 이다. 인사이트는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 환자에게 병증을 설명하면 “아하, 그렇구나. 이래서 내가 아픈 거구나. 맞아, 맞아.” 이렇게 환자의 깨달음으로 이어지면서 자신의 상태에 대한 전후맥락을 이해하게 되면 이런 환자는 치료 즉시 바로 치료효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가장 기초적이고 공이 드는 어려운 과정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두 마디로도 쉽게 이를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몇 번이고,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과정을 너무 서둘러 환자의 생각은 의식도 하지 않고, 의사의 말만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반발이 생겨서 환자가 도리어 화를 내기도 한다. 환자 개개인의 개성을 파악하여 환자의 말을 들어가며 치료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런 경우 의사의 말만 일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환자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서 다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기둥 같다고 할 것이고, 몸통을 만진 사람은 벽 같다고 할 것이고, 귀를 만진 사람은 얇고 평평하다고 할 것이고, 코를 만진 사람은 길다랗고 주름진 원통이라고 할 것이다.



이 때 누군가가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알려주고 그 장님이 어디쯤을 만진 것인지 설명해준다면, 이 사람에게는 코끼리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올바른 인사이트가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일단, 인사이트가 올바르게 성립되면 내 자신이 뭘 해야 할지를 깨닫게 된다. 남의 탓을 멈추고, 실용적인 해법을 찾아 움직이고 실천하게 된다. ‘아, 살을 빼야겠구나’, ‘그만 먹어야지’, ‘운동을 제대로 해 봐야겠는 걸’, ‘등을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해야겠어’, ‘ 속상한 생각은 그만 잊어야지’ 등의 이런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의 변화로 연결되게 된다.



환자들이 한의원이나 병원엘 갈 땐 반드시 의사를 믿는 마음을 가지고 가야 한다. “저 선생님이면 반드시 내 병을 고칠 것이다”하고. 더욱이 한의원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의사는 명의가 없어도 한의사에게는 명의가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양방의료는 이화학적 진단 방법에 따른 획일적 치료지만 한방 치료는 한의사의 주관에 따른 다양한 치료라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고 의사를 대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에리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어떤 눈먼 이가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고 그를 가까이 데려오라 분부하신 뒤 그가 가까이 오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러자 그가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다”하고 이르시니, 그가 곧 다시 보게 되었다(마태20,29-34).



그렇다. 바로 그의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그의 눈을 뜨게 한 것이다. 저 의사가 내 병을 낫게 해주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진료에 임하면 바로 병은 낫는다. 그러나 의사를 불신하고 치료를 받으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전전하다 재산도 다 탕진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병을 고친다.



-김포 허산자락 귀락당 낙우재에서 포옹 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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