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金 南 一 / 慶熙大 韓醫大 醫史學敎室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韓藥은 補藥이고 精力 관리가 주 치료 대상이라고 여기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한약은 몸을 보해주는 것이기에 먹어도 별로 해가 없고 음식과 같은 것이기에 먹으면 먹을수록 몸에 보탬이 되며, 특히 남성의 정력 관리에 있어 가장 효과가 있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한의학이란 학문 자체의 존립기반이 보약이기에 치료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생각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에 의료인으로 분류되어 있는 한의사란 직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 혼란을 초래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한다고 할 것이다.
한의계에서는 치료의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을 경주하여 왔고 그러한 결실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침과 뜸, 부항, 추나 등 치료기술을 중심으로 한 치료의학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경주하여 온 여정을 돌아볼 때 그 시작이 일제시대라는 기간과 잇닿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아연질색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우리의 전통의학은 그토록 긴 왜곡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일까?
전통의학인 한의학의 주 치료대상이 精力이었던 시대는 일제시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일부 정력을 관리하여 자신의 남성성을 과시하려고 한 유한계층 가운데 전통의학을 활용한 경우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醫書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정력관리는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미미한 비중을 차지한다.
게다가 대부분의 醫書에서 補藥이 차지하는 비중도 예상외로 크지 않고 치료약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補하는 개념의 약이라도 치료제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계절이 되면 한번씩 몸보신을 위해 먹는 보약으로 접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시대에 들어와 갑자기 한의학이 몸보신, 정력 관리의 전문 의학인 것처럼 사회적인 담론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 시기에 나온 한약을 선전하는 전단지와 신문 광고 등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각종 통속적 잡지에 나오는 한약에 대한 선전, 치료효과에 대한 선전문구 등에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게 한다.
1968년에 창간호가 나온 대중실화사의 ‘月刊 黑幕’이라는 대중잡지에는 음란한 스토리의 각종 이야기와 기사들로 가득차 있는데, 군데군데 한의학 치료에 대한 선전 문구가 보인다.
그리고, 매독과 임질 같은 성병들뿐 아니라 위장병, 신경 쇠약 등의 질병도 전문 분야로 선전하고 있다. 특별히 눈에 띠는 것은 양기 부족을 주요 주치증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도 있다는 점이다.
일제시대에 한의학은 식민지 백성들에게 여전히 호평받는 중심의학으로서 질병치료의 우선적 선택을 받는 의료로 자리잡고 있었음에도 한의학은 일제 당국에 의해 주변부 의학으로 떠밀리게 되었다. 이러한 소외는 한의학의 설자리를 잃게 만들게 되었고, 점차 치료의학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해가는 과정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권력에 의해 신장된 월등한 힘을 가진 서양의학은 치료의학으로서 점차 제도적·이념적·인식적 틀을 완비해나가게 되었지만, 이러한 과정의 반대편에서 한의학은 민간요법, 주술적 의술로서 특효가 있는 몇몇 비방에 의지하여 몇몇 파트에서만 대안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주변부 의술인 것처럼 인식화되게 된 것이다.
해방 후 한의계는 치료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하게 되었고, 이러한 노력들은 결실을 맺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