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속초18.1℃
  • 맑음21.7℃
  • 맑음철원19.1℃
  • 맑음동두천18.3℃
  • 흐림파주18.0℃
  • 맑음대관령17.2℃
  • 맑음춘천21.8℃
  • 맑음백령도16.1℃
  • 맑음북강릉19.2℃
  • 맑음강릉20.7℃
  • 맑음동해17.7℃
  • 맑음서울19.0℃
  • 맑음인천19.2℃
  • 맑음원주21.8℃
  • 맑음울릉도17.4℃
  • 맑음수원19.4℃
  • 맑음영월21.5℃
  • 맑음충주21.8℃
  • 맑음서산18.7℃
  • 맑음울진17.2℃
  • 맑음청주22.3℃
  • 맑음대전22.9℃
  • 맑음추풍령20.7℃
  • 맑음안동23.0℃
  • 맑음상주22.8℃
  • 맑음포항19.3℃
  • 맑음군산18.1℃
  • 맑음대구24.0℃
  • 맑음전주19.8℃
  • 맑음울산19.2℃
  • 맑음창원19.5℃
  • 맑음광주21.5℃
  • 맑음부산18.6℃
  • 맑음통영19.1℃
  • 맑음목포18.1℃
  • 맑음여수18.0℃
  • 맑음흑산도17.3℃
  • 맑음완도18.8℃
  • 맑음고창18.0℃
  • 맑음순천19.2℃
  • 맑음홍성(예)19.8℃
  • 맑음20.7℃
  • 맑음제주18.8℃
  • 맑음고산17.2℃
  • 맑음성산18.6℃
  • 맑음서귀포19.3℃
  • 맑음진주19.7℃
  • 맑음강화16.4℃
  • 맑음양평20.3℃
  • 맑음이천20.8℃
  • 구름많음인제20.4℃
  • 구름많음홍천21.8℃
  • 맑음태백17.8℃
  • 맑음정선군21.1℃
  • 맑음제천20.7℃
  • 맑음보은21.7℃
  • 맑음천안19.8℃
  • 맑음보령16.9℃
  • 맑음부여20.4℃
  • 맑음금산21.7℃
  • 맑음20.7℃
  • 맑음부안18.2℃
  • 맑음임실20.9℃
  • 맑음정읍20.0℃
  • 맑음남원22.5℃
  • 맑음장수19.7℃
  • 맑음고창군18.6℃
  • 맑음영광군18.3℃
  • 맑음김해시20.1℃
  • 맑음순창군23.0℃
  • 맑음북창원20.6℃
  • 맑음양산시21.1℃
  • 맑음보성군19.6℃
  • 맑음강진군19.8℃
  • 맑음장흥20.1℃
  • 맑음해남19.1℃
  • 맑음고흥18.7℃
  • 맑음의령군21.6℃
  • 맑음함양군23.7℃
  • 맑음광양시19.3℃
  • 맑음진도군17.2℃
  • 맑음봉화21.2℃
  • 맑음영주21.0℃
  • 맑음문경21.9℃
  • 맑음청송군19.8℃
  • 맑음영덕16.7℃
  • 맑음의성23.5℃
  • 맑음구미23.9℃
  • 맑음영천20.6℃
  • 맑음경주시20.3℃
  • 맑음거창23.3℃
  • 맑음합천23.2℃
  • 맑음밀양22.8℃
  • 맑음산청21.2℃
  • 맑음거제18.0℃
  • 맑음남해18.2℃
  • 맑음20.1℃
기상청 제공

2026년 05월 09일 (토)

김남일의 儒醫列傳 108

김남일의 儒醫列傳 108

B0112008082637009-1.jpg

鍼醫로서 이름을 떨친 儒醫



‘備邊司謄錄’의 숙종 15년 기록인 1689년 윤 3월12일에 權聖徵의 鍼術이 정묘하다고 하니 軍職에 붙여 本院에 소속시키기를 청하는 內醫院의 청원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또 權聖徵이라는 인물이 누대에 걸쳐 鍼을 활용한 집안 출신으로서 鍼에 뛰어난 인물로 기술하고 있다.



權聖徵의 생몰연대를 밝혀주는 구체적 기록이 없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위의 기록은 그의 젊은 시절의 기록이기에 그가 젊은 시절부터 鍼醫로서 이름을 떨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렇듯 權聖徵은 젊은 시절부터 鍼으로 이름이 난 인물이었지만 관직이 높아지면서 시련이 시작되었다. 각종 의학적 책임에 대해 御醫로서 총체적 책임을 지워 각종 처벌을 감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처벌 후에 그의 능력과 공적이 인정되어 여러 차례 복권되게 되었다.



그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 ‘備邊司謄錄’, ‘承政院日記’ 등의 자료를 분석해 보면 그의 인생은 수많은 질곡이 있었다. 숙종 27년(1701) 숙종비 민씨가 죽게 되자 御醫로서 죄를 입어 관직이 박탈되었고, 1710년에는 왕의 치료를 잘못하여 처벌되었다.



그럼에도 1714년에는 공을 인정받아 관직이 올라가게 되었다. 그의 치료에 대한 공로는 크게 인정되어 이후로 숙종과 경종의 치료를 담당하게 되었다. 영조 때에 이르게 되어서는 孝章世子의 치료에 책임을 지고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영조 6년(1730) 용서가 되어 다시 등용되게 되었다.



이렇듯 鍼醫로서 수대에 걸쳐 궁중에서 봉직하면서 인생의 우여곡절 속에서도 당대의 名醫로 이름을 떨친 權聖徵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기억되어야 할 儒醫의 한 사람이다.
 

관련기사

가장 많이 본 뉴스

더보기

최신뉴스

더보기

뉴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