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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0일 (일)

백은경원장의 진료실 이야기5

백은경원장의 진료실 이야기5

빈센트 반 고흐



작년 5월 <오르세 미술관>전을 했을 때, 당대의 여러 화가의 작품 중에서도 고흐의 그림은 群鷄一鶴으로 보였다. 그래서 올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있었던 고흐展에 몇가닥 없는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갔다. 사진과 비교할 수 없는 실제 그림의 강렬한 빛, 고흐가 고흐다운 색채를 낸 것은 그의 간질발작과 관련이 있다는 기사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물론 독성학에서는 고흐가 자주 마셨던 쓴쑥술의 독성이 서서히 그를 망가뜨렸을 것으로도 추정한다. 아무튼 고흐를 괴롭혔던 조울증과 간질발작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가던 중에도 고흐는 여전히 살아야할 이유를 그림에서 찾았던 것 같다.



한약과 양약을 같이 복용하는 아이들



작년에 본인이 근무하는 한의원에서는 아이들이 한약과 같이 복용하고 있는 양약의 종류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137명이 양약과 한약을 병행해서 복용하고 있었고, 1위는 ADHD치료약이었다. 두 번째가 간질발작에 대한 항경련제 복용이었으며 약 50명 정도였다. 항경련제로 복용하는 양약의 상품명은 오르필, 사브릴, 토파맥스, 테그레톨, 센틸, 라믹탈, 케프라, 바륨, 페니토인, 페노바르비탈, 엑세그란, 기타였다.



간질의 치료율



양약의 경우 간질이 약물로 완치되는 비율은 약 50%정도이며, 30%는 약을 복용하는 동안 경련이 억제되는 양상을 보이고, 약 15% 정도는 약을 복용해도 난치성간질로 치료가 어렵다고 한다. 최근에는 소아의 난치성간질 50%가 케톤식이와 뇌수술로 치료가 되며, 이 치료율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한약으로 치료하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통계를 내본 적이 없다. 뇌파검사가 주로 대학병원 소아신경과에서 이뤄지다보니 간질발작 초기부터 한의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는 난치성간질로 치료가 되지 않았을 때 4차 의료기관으로 알고 찾아오는 경우가 더 많다. 본인의 경험에 의하면 60여명의 경풍증 아이들 중 영아연축 2명과 대발작 1명, 실조성발작 1명을 포함한 4명은 한약으로 치료가 되지 않아 대학병원 소아신경과로 transfer한 적이 있으며, 이중 2명은 병원을 바꿔 처방을 받으면서부터 발작이 줄다가 하지 않게 되었고 2명은 여전히 모든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혀 차도가 없는 힘든 상황이다. 이들 외에는 대체로 치료경과가 좋았다. 10명 내외의 아동이 발작 초기부터 한약으로 치료를 했으며 그 외 다수는 한약과 양약을 같이 복용하면서 뇌파검사와 임상경과를 체크했다.



부모들의 스트레스



짐작하겠지만, 간질발작을 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자녀의 병이 완치가 되어 항경련제를 중단한 이후에까지도 재발할까 가슴을 졸이는 정도니 현재 치료 중인 아이들의 부모심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전 서울대 의대 소아청소년정신과에서 발표한 논문을 보면 부모스트레스가 가장 심한 경우가 자녀의 질환이 ‘간질’일 때였다. 오랜 기간 치료를 해야 되고, 치료를 해도 낫지 못하는 비율이 있으며 또 항경련제를 복용하는 동안 정상적인 발달이 되지 않아 지능과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사례들이 있다. 치료 후에도 재발하는 비율이 있다보니 이래저래 부모의 마음고생이 큰 질환이다.



한의학에서의 간질 이해



소위 부모들이 경끼라고 하는 것은 경풍증을 말하는데, 급경풍의 대부분은 소위 2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열성경련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만경풍과 만비풍, 전간, 간질 등은 모두 간질의 증상이며 발생률은 아동 200명당 1명 정도이다. 癎疾은 한의학에서 흔히 전간(癲癎)이라고 부른다. 전(癲)은 지랄병이라는 뜻인데, 머리를 뜻하는 전(顚)자에 병들었다는 의미를 가진 역( )자가 결합된 것이다. 간(癎)은 사이 간(間)자에 병들었다는 의미를 가진 역( )자가 합쳐져서 시지시발(時止時發)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기원전부터 간질이 머리의 병임을 인식하였고, 전간에 대한 분류와 치료기술을 전해오고 있다. 과거의 기록 중 오행으로 나누어 분류한 것은 다소 억지스러운 점이 있어서 차후에 더 연구를 해봐야 하겠지만, 치료약물의 효능 자체는 현대의학에서 항경련제의 기전과 같은 맥락이거나 간질발작의 위험도를 낮추는 것으로 실제로 경련억제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치료 약재



부모들이 한의원에 내원하는 이유 중에는 간질발작의 완치를 위해서일 때도 있고, 항경련제의 부작용을 완화하려는 이유도 있다. 본인이 근무하는 한의원에서는 아동의 체질특성의 과불급을 조절하면서 발작을 억제하는 치료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양간(陽癎)에는 서늘하게 하기 위해 생지황 죽여 같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약재를 사용하며, 음간(陰癎)에는 따스한 성질을 가진 건강 부자 인삼 같은 약재를 처방하고, 급경풍의 경우 화(火)를 발산시키기 위해 강활 방풍의 약재가 사용되며, 만경풍은 원기가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인삼 황기 백출 등의 약재를 사용한다. 화를 직접 다스리기 위해서는 황금 황련 치자를 사용하고 발작 자체를 줄이기 위해서는 천마 전갈 조구등 세신 등의 약재를 사용한다. 그리고 양약 복용으로 인해 지능이 떨어지는 아이들에게는 뇌발달에 대해서는 한약으로, 간질억제는 양약으로 하거나 혹은 양방향 처방을 합방하기도 한다.



간질 치료의 궁극적인 목표



우선은 경풍(驚風)안정이다. 간질발작을 계속 하는 동안에는 아이의 정상적인 발달을 보장할 수 없고 생활에서의 제약과 스트레스가 너무 크기 때문에 경풍에 대한 직접적인 치료가 필수적이다. 두 번째로는 최대한 정상발달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아이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과불급을 살펴 조절해줘야 한다. 또 먹고 자고 배변하고 활동하는 등의 기본생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도록 도와야 한다. 양약의 항경련제 중에는 아이들의 운동발달이나 지적인 발달, 오장육부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종류들이 여럿이다. 이 경우 간질을 치료하는 도중 혹은 치료 이후에 발달지체, 학습장애와 허약함으로 곤란을 겪을 수 있다.



주의할 점



양약의 항경련제는 그 자체로도 독성이 다른 약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아 간독성은 물론이고 신장독성에 관련된 약제들이 있다. 한약복용 이전에 간수치가 상승한 아이들이 있었으며, 또 양약만으로는 간수치 상승이 없었더라도 한약을 병행했을 때 간에서 대사되는 과정에서 한약과 양약이 경쟁적으로 효소와 결합하게 될 경우 간손상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다행히 본인이 근무하는 한의원에서는 이런 경우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한약자체가 독성이 낮고 또 항산화효소를 워낙 많이 갖고 있어서 간에서의 대사에 무리가 없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복합투여한 아동이 불과 50여명이었기 때문에 모집단이 적어서 발견이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본다. 두 번째 주의할 사항은 약물상호작용에 대해서이다. 복합투여의 결과가 항경련제의 적정량 유지에 방해가 되거나 혹은 역으로 과잉될 가능성에 대해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약만으로 간질을 치료할 때 아쉬운 점은 약재사용의 제한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광물성약재들이나 동물성약재들까지 사용범위가 넓었으나 현재는 중금속의 위험성과 동물보호법에 의한 제한 때문에 과거에 비해 사용가능한 약재가 1/3정도로 줄었다.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처방 그대로를 사용할 수 있는 경우가 드물 정도다. 위의 세가지 사항들을 인식한 토대위에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투여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치료 중인 아이들이 1년 이상 무탈하게 잘 지내다가도 어느 날 고열로 인해 열성경련이 발생하면 간질발작이 아님에도 힘이 빠진다. 물론 잘 치료되어 뇌파에서도 간질파가 없어지고 발작이 몇 년간 없어서 치료를 종결하게 되면 남다른 보람을 느끼지만 그 과정이 수월치만은 않다. 한번은 A대학병원에 뇌파검사를 의뢰했는데 검사결과를 들으러 간 날 예정시간을 2시간이나 지나도록 차례가 되지 않아 머리끝까지 화가 난 아이엄마가 있었다. 드디어 자기차례가 되어 인상을 팍팍 구기고서 들어갔더니 의사 曰‘오늘따라 아이와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겠다는 엄마가 둘이나 있네요. 간신히 말리고 모든 치료를 다 해보자고 설득해서 돌려 보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엄마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핑 돌더란다. 동병상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간질에 대한 치료는 종결시점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질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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